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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경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최복경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봄이 오고 있다. 곧 땅에서 지렁이가 기어가는 소리, 바람이 잎사귀를 스치는 진동, 먼 산 너머 번개가 치기 전의 낮은 울림이 자연을 채울 것이다.

창밖에서 들려올 풀벌레 소리에 “저 작은 곤충들은 어떤 소리로 서로의 마음을 전할까”라는 궁금증이 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가 듣는 자연의 소리는 이 세상 모든 소리의 관점에서는 ‘빙산의 일각’이다. 세상에는 인간의 귀로는 전혀 들리지 않는, 그러나 과학의 눈으로 포착된 수많은 소리가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소리 파동이 일상과 첨단 기술을 가로지르며 펼치는 경이로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어느 초등교실의 가상 상황을 생각해보자. 수업 중 뒷줄에서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는데, 선생님은 아무 반응이 없다. 그러나 아이들은 벨 소리를 알아차린다. 모기 날갯짓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공기를 가른다. 바로 ‘틴 버즈’ 현상이다. 청소년 이하 연령만 들을 수 있는 18㎑(킬로헤르츠) 이상의 고주파 소리가 난 것이다. 실제로 이런 틴 버즈 현상을 이용한 벨소리가 있다.

마치 시간이 흐를수록 사라지는 청춘의 특권처럼, 나이가 들며 우리 귀는 점차 이 신비한 소리 세계와 멀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막이 두꺼워져 고주파 소리 세계의 문이 닫히는 것이다.

개를 키우는 집이라면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멀쩡히 잠자던 강아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공중을 향해 짖어댄다. 그곳에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 개는 사람이 들을 수 없는 높은 소리인 40㎑의 초음파를 듣고 반응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양이는 더 높은 60㎑, 박쥐와 돌고래는 100㎑ 이상의 소리로 사냥을 하거나 의사 소통을 한다. 박쥐가 어둠 속에서 초음파를 쏘아 먹이의 위치를 계산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생체 레이더’다.

반대로 초저주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동물도 있다. 비둘기는 1㎐(헤르츠) 미만의 초저주파를 감지해 지진이나 폭풍을 미리 알아챈다고 한다. 지구의 숨소리를 듣는 그들은 자연재해의 신호수다. 동물들의 귀는 각자 생존을 위해 진화한 최첨단 도구다.

의료 현장에서는 초음파가 암세포만 골라 태우는 정밀 수술 도구로 진화 중이다. 방사선 위험 없이 소리의 힘만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시대가 다가왔다. 옛 선인들이 약초의 기운으로 병을 다스렸듯 21세기 과학은 소리의 에너지로 생명을 살린다.

초음파 기술은 이제 골다공증 진단, 암 조직 추출, 세포 분해까지 넘보고 있다. 초음파의 힘은 단순히 ‘관찰 수단’을 넘어 물리적인 에너지로 진화했다. 의료 현장을 떠나 일상으로 눈을 돌리면 주방에선 초음파로 음식을 저온 살균하고, 화장실에선 초음파 칫솔이 치아 사이 틈을 깨끗이 씻어낸다.

공장에서는 초음파로 세라믹을 정교하게 자르고, 옷 가게에서는 초음파 접착제가 천을 잇는다. 3차원(3D) 프린팅 기술도 초음파의 도움으로 더 정밀해졌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초음파는 현대 문명의 보이지 않는 손이 돼주고 있다. 과학은 소리를 보이지 않는 도구에서 적극적인 에너지원으로 승화시켰다.

어린 시절, 라디오에 귀를 대고 이리저리 주파수를 바꿔본 기억을 간직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라디오의 지직거리는 잡음이 우주 탄생을 뜻하는 ‘빅뱅’ 뒤 남은 우주배경복사의 전파 소음임을 알게 됐다. 지각이 흔들리는 깊은 울림, 우주를 가로지르는 장엄한 진동과 더불어 과학은 이제 다양한 소리의 의미를 하나씩 해독하고 있다. 들리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님을, 오히려 그 소리가 더 큰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임을 이해하게 됐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도 사실 공기의 떨림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 진동은 마음을 울린다. 보이지 않는 소리도 세상을 움직이는 견고한 실체다.

언젠가 우리가 지진의 속삭임을 직접 들을 수 있고, 돌고래와 노래를 주고받는가 하면, 우주의 탄생을 담은 소리 기록을 재생하는 시대가 오리라 믿는다. 그때 비로소 인간은 ‘듣는다’라는 행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것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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