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모두가 원하지만 전광훈만 가능한 광화문 집회, 어떻게 가능한가
모두가 원하지만 전광훈만 가능한 광화문 집회, 어떻게 가능한가
(왼쪽)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지난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통일당 당사에서 내란 선동 혐의 관련 입장을 말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오른쪽) 2025년 2월19일 오후 서울 종로경찰서 앞 전경. 집회신고를 위한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자유통일당 천막이 설치돼 있다. 류석우 기자
2025년 2월19일 밤 10시 서울 종로경찰서 민원실 앞. 적막한 로비에 두 사람이 있었다. 두꺼운 담요를 덮고 있는 한 여성은 플라스틱 의자에, 그 옆의 한 남성은 바닥에 깔개를 펴고 앉았다. 3월15일 토요일에 열릴 예정인 집회신고를 하러 온 이들이다. 집회신고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상 720시간 전부터 할 수 있기에 2월20일로 넘어가는 자정이 되면 바로 신고하기 위해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 365일 24시간 있어요”
의자에 앉은 여성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을 위한 국민대회’ 광화문 집회를 신고하러 온 장아무개씨다. 그 옆의 남성은 윤석열 탄핵을 촉구해온 ‘촛불행동’에서 나온 박아무개씨다. 박씨는 안국역 앞 집회를 신고하러 왔다. 누가 먼저 도착했는지를 묻자 장씨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여기 365일 24시간 있어요.” 자신보다 그 어떤 단체도 빨리 올 수 없다는 얘기다. 종로서 민원실 앞 ‘집회신고 안내’ 표지판엔 ‘집회신고의 우선순위 기준은 신고인의 정문 통과 시간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밤 11시가 넘자 다른 단체의 집회 신고인들도 하나둘씩 경찰서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밤 11시59분, 경찰서 안쪽에서 직원 2명이 나왔다. 민원실 앞에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자연스럽게 줄을 섰다. 가장 앞에 줄을 선 건 장씨였다. 그 뒤로 촛불행동에서 나온 박씨가 섰다. 가장 뒤엔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에서 일하고 있는 심규협 사무국장이 섰다. 그는 밤 11시50분께 도착했는데, 신고 장소는 경복궁역 앞이었다.
2025년 2월19일 오후 서울 종로경찰서 앞 전경. 집회신고를 위한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자유통일당 천막이 설치돼 있다. 류석우 기자
각자 준비해온 집회신고서에 경찰서 직원은 순서대로 시간을 기록했다. 장씨의 신고서엔 ‘2.20 00:00’라는 글자가 기재됐다. 7개 단체가 신고를 마치는 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신고서를 낸 이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그런데 한 명만 경찰서에서 나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장씨였다. 그는 신고 전에 앉아 있던 플라스틱 의자로 돌아가 편안한 표정으로 다시 담요를 덮었다.
한겨레21은 제1550호 표지이야기를 통해 전광훈 목사의 사업과 정치세력화 과정을 다루며 전 목사가 광화문광장을 ‘플랫폼’처럼 활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 목사는 2018년부터 광화문에 자리를 잡고 집회를 연 이후 2025년 2월 현재까지 주말마다 집회를 열고 있다. 그는 “광화문에 하나님의 촛대를 세워놨다”며 이곳을 거점으로 고집했고, 세력을 모았다. 한국에서 집회와 시위는 누구나 원하는 장소에서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집회·시위의 상징적인 장소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하나의 단체만 매 주말 집회를 열 수 있었을까.
‘오픈런’ 어쩔 수 없다는 경찰, 아무 책임 없나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겨레21은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서울경찰청에서 광화문역 인근 4곳(동화면세점 앞, 교보빌딩 앞, 광화문역, 대한문)의 2022년 이후 집회신고 전체 내용을 확보했다. 주관단체명과 집회명, 장소와 시간 등이 나와 있는 3343건의 신고 내용을 분석한 결과, 전 목사가 주도한 집회는 4분의 1(24.8%)에 이르는 828건이나 됐다. 집회 이름에 ‘자유 통일’이나 ‘자유 대한민국’이 들어가거나, 주관단체명이 ‘자유통일당’ 혹은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인 것만 추렸다. 다른 집회신고는 촛불행동이나 비상행동 등 주관단체 이름이 명시돼 있었지만, 전 목사가 주도하는 집회신고는 대부분 개인 이름으로 기록돼 있었다.
장씨는 자유통일당원이고 전 목사를 지지하지만 누가 시켜서 집회신고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당원이라서 하는 게 아니에요. 일단 우리나라를 살려야겠다는 막중한 사명이 있어서 자발적으로 하는 거예요. 전 목사님도 애국하시잖아요. 우리 다 같은 마음이니까 협력해드리는 거죠. 돈 받고 하는 것도 아니고요.” 장씨의 상의엔 전 목사가 주도하는 집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호인 ‘STOP THE STEAL’(스톱 더 스틸)이라고 적힌 배지가 달려 있었다. 메신저 프로필 사진엔 ‘자유마을’ 조끼를 입은 사진과 전 목사 일가가 식료품 등을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사업을 운영하는 ‘광화문온(ON) 앱’의 로고 사진이 올려져 있었다.
장씨를 비롯해 경찰서에서 집회신고를 하는 이들은 서로를 ‘지킴이’라고 불렀다. 지킴이들은 주로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과 교보빌딩 앞, 대한문 앞 등 3곳으로 나눠 집회신고를 했다. 동화면세점과 교보빌딩 앞은 종로경찰서 관할이지만 대한문 앞은 남대문경찰서 관할이라 남대문서에도 지킴이들이 상주한다. 장씨는 2인1조로 하루 3교대로 나눠 대기한다고 했다. 장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여성이 옆으로 다가왔다. 장씨와 같은 조 동료다. 이 여성은 종로경찰서 앞에 있는 자유통일당 천막에서 담요 등을 챙겨왔다.
2025년 2월20일 새벽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집회신고를 마친 장아무개씨와 그의 동료가 한겨레21 취재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장지남 한겨레 피디
종로서 앞엔 자유통일당 천막이 설치돼 있다. 장씨는 보통 한 명은 천막에 대기하고 한 명은 경찰서 민원실 앞에 상주한다고 했다. 경찰서 바로 앞에 설치된 천막은 사실상 집회신고 대기를 위한 베이스캠프다. 이 천막에 대한 민원도 여러 차례 제기됐다. 그러나 경찰은 관할이 아니라는 이유로, 종로구청은 천막이 설치된 구역이 일부 사유지라는 이유로 철거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천막이 핵심이 아니라 365일 24시간 대기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집시법상 신고를 720시간 이전에 하게 돼 있는데 그 전에 와서 ‘오픈런' 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며 “경찰로서는 실무적으로 누가 먼저 와 있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남대문서 관계자도 “매일 1층 로비에서 (집회신고를 위해) 밤새워 대기하는 분들이 있다”며 “전열기구를 쓴다거나 취사를 해서 다른 민원인에게 불편을 주면 모를까 그냥 앉아서 기다리기 때문에 딱히 경찰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도 책임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집시법상 관할 경찰서장은 집회 또는 시위의 시간과 장소가 중복되는 2개 이상의 신고가 있는 경우 시간을 나누거나 장소를 분할해 개최하도록 권유하는 등의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 이런 권유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뒤에 접수된 집회에 대해 금지 통고를 할 수 있다.
집회 및 시위 업무를 잘 아는 경찰 간부 ㄱ씨는 “집회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적당한 수준에서 자기가 원하는 집회를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게 집시법의 기본 원칙”이라며 “그런데 지금은 경찰의 행정편의상 선순위 원칙을 강하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중복되는 집회가 있으면 양쪽과 협상도 해봐야 하는데 워낙 집회가 많고 그러니까 모든 절차가 다 생략돼버렸다”고 덧붙였다.
12·3 내란사태 이후 매일 집회 신고하며 알박기
장씨가 2월19일에서 20일로 넘어가는 자정 집회신고를 마치고 다시 민원실 앞에 앉은 것도 이 때문이다. 먼저 왔다는 것만 증명되면 한 장소를 독점할 수 있기에 바로 기다리는 것이다. 장씨는 한 번도 1순위를 놓쳐본 적이 없다고 했다.
2022년~2025년 2월까지의 집회신고 내용을 보면, 장씨를 비롯한 ‘지킴이’들이 2024년 11월까지는 매일 집회신고를 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 번, 한 달 뒤의 주말 집회만 주로 신고했다. 그런데 12·3 내란사태 이후부터는 하루도 빠짐없이 광화문 동화면세점과 교보빌딩(자유통일을 위한 국민대회), 대한문 앞(자유 평등 정의를 지키는 애국 국민대회) 집회를 신고하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날인 12월4일에는 향후 한 달치 집회를 신고했다. 이후부터는 매일 자정 같은 장소에 집회신고를 새로고침 하고 있다.
그럼 평일에도 집회가 신고한 대로 열릴까. 2월17일 오후 2시쯤,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으로 가봤다. 집회신고 내용상으로는 1만 명 규모의 ‘자유통일을 위한 국민대회’가 열리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동화면세점 앞엔 경찰관 한 명과 지나다니는 시민 외엔 아무도 없었다. 허위로 집회신고를 해놓은 것이다. 주말에도 동화면세점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평일에도 그냥 신고해두는 이른바 ‘알박기’ 수법이다.
집시법상 신고한 집회를 하지 않게 된 경우엔 철회 사실을 경찰에 알려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현실에선 이런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ㄱ씨는 “집회를 하지 않거나 신고한 인원만큼 모이지 않을 경우에도 과태료를 부과하게 돼 있는데, 하도 집회가 많다보니 경찰이 이런 일을 잘 못한다”고 말했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아무것도 없어 보여도 불시에 할 수도 있고 실제 하는 경우도 있다”며 “(매일 신고하는 이유는) 일단 한번 자리를 빼앗기면 다시는 못 잡는다는 그런 게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25년 2월17일 오후 서울 동화면세점 앞 거리. 1만 명 규모의 ‘자유통일을 위한 국민대회’ 집회신고가 돼 있지만 거리는 한산하다. 류석우 기자
집회 장소 알박기는 사실 오래된 문제다. 인권운동공간 활의 랑희 활동가는 “전광훈 집회뿐 아니라 이전에도 기업을 중심으로 알박기 집회를 하는 것이 문제가 돼왔다”며 “지금 탄핵 국면에선 전광훈 쪽이 광화문에서 매주 주말 집회를 하고 있는데, (집회신고를) 매일 갱신하면 사실상 그곳에서 다른 단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선착순으로만 따지게 되면 결국 어떤 장소를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의 문제로 가게 돼요. 사실 가능한 한 모든 집회가 열리도록 하는 방식이 돼야 하거든요. 또 집회를 하지 않으면 뒷순위 신고자가 할 수 있도록 넘겨줘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저희도 2024년에 대통령 관저 앞에 집회신고를 했는데 선점한 단체가 (집회를 하지 않으면서) 차만 박아놓고 넘겨주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해버리면 방법이 없죠.”(랑희 활동가)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이나 교보빌딩 앞은 집회·시위의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유동인구가 많고 도심 한가운데라 집회 인기 지역이다. 특히 광화문광장이 2022년 재구조화 공사를 거쳐 재개장한 이후 서울시에서 광장에서의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한 상태라 광화문역 사거리 주변에서 집회를 열 수 있는 공간은 동화면세점과 교보빌딩 앞 등으로 제한적이다.
“광화문 세종대로 사거리가 유동인구가 가장 많고, 박근혜 퇴진 집회 때도 그쪽에서 많이 했잖아요. 규모가 있는 큰 집회를 준비하는 단체라면 어디든 그쪽에서 하고 싶어 할 텐데 지금은 전광훈 쪽에서 계속 알박기로 하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거죠.” 매주 경복궁역 앞에서 윤석열 퇴진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비상행동의 심규협 사무국장이 말했다. 심 국장은 전 목사 쪽에서 경찰서에 24시간 대기한다는 것을 알고 애초부터 동화면세점 앞쪽은 포기했다고 한다. 서미화 의원은 “종교를 빙자해 내란과 폭동을 선동하는 전광훈은 국론 분열의 주범이며, 내란종사자들과 이미 한 몸”이라며 “수사당국은 지금까지 허위신고와 편법으로 시위 장소를 점거한 전광훈과 극우세력을 철저히 수사하여 엄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이미 장소를 선점한 상태에서 경찰서 앞에 24시간 대기하고 있는 만큼 선신고자에게 우선권을 주는 기조에선 전광훈 세력 외 어떤 단체도 광화문 사거리에서 집회를 열기 어렵다. 장씨에게 왜 이런 일을 하게 됐는지 물었다. “어느 날부터 광화문에 촛불집회가 열리고 그러면서 난잡한 행위들을 많이 했잖아요. 나라에 시급함을 느끼니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똘똘 뭉치는 거죠.” 장씨는 자신의 역할이 지닌 의미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이게 시발점이니까요. 집회신고를 하지 않으면 할 수 없잖아요? 진보들이 없어지는 순간까지 제 목숨을 다해서라도 지켜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