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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국방컨벤션서 '체제 수호 결의대회'
"정권 뺏기면 사회주의 국가 된다" 이념 갈등 조장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 시스템·사법부 판단 불신 여전
김형석 교수, 진보 정권 비판하면서도 "대화와 공존" 강조
청년 보수, 尹·부정선거론 옹호보다 반민주당 정서 강해
"청년 극우화 아닌 정치색 드러낼 판 깔렸을 뿐"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14일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한미자유안보정책센터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체제 수호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CHTV 유튜브 캡처


지난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국방컨벤션. 전투를 앞둔 군인들의 출정식을 방불케 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죽을 작정으로' 맞서야 한다며 '힘을 모으자'고 세를 규합했고, '싸우자'는 구호
가 울려퍼졌습니다.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온 예비역 군인 단체인 한미자유안보정책센터(KAFSP)가 주최한 '대한민국 체제 수호 결의대회'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참석했습니다. △노철학자인 105세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정치권의 부정선거론 기수인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민경욱 전 국회의원 △윤석열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 △박정희 정권 때 유신 반대 시위를 하다 2000년대 이후 뉴라이트의 핵심 인물로 자리 잡은 김진홍 두레교회 원로목사 △청년들을 위한 정치·역사 연구소를 표방하며 구독자 80만 명을 보유하고 있는 보수 유튜브 채널 '그라운드씨'의 김성원 대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반대 서울대인 연대'를 주도한 김은구 트루스포럼 대표 등
정계와 학계, 기독교계, 미디어 분야에서 보수의 스피커로 손꼽히는 이들이 차례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 한미 양국에서 부정선거 주장을 확산시키는 가교로 통하는 애니 챈(김명혜) 한국보수주의연합 회장은 영상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행사장에는 어림잡아 수백 명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현장에선 한국의 부정선거와 6·25전쟁을 각각 다룬 책 2권을 배포했습니다. 중절모를 쓴 백발의 노인들을 비롯해 기성세대들이 주를 이뤘지만, 대학생을 비롯한 2030세대 청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 역시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의 충격적 장면들을 지켜봤을 겁니다. 그런데 왜 이들은 종북좌파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부정선거 의혹을 규명하려 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주장을 '중대한 결단'이라며 추종하는 것일까요.

14일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대한민국 체제 수호 결의대회'에 행사장에서 배포한 부정선거 의혹 및 6·25전쟁을 다룬 책자. 김경준 기자


이들의 주장은 크게 3가지로 나뉩니다. △야당에 정권을 빼앗기면 친중·친북 사회주의 국가로 전락하게 된다 △야당은 정권을 잡기 위해 중국과 결탁해 부정선거를 자행하고 있으며 의혹 제기를 음모론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야당은 윤 대통령 탄핵과 수사를 위해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황 전 총리는 마치 1940년대 해방공간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말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에)
정권을 한 번만 더 빼앗기면 우리는 사회주의 국가로 간다
"고 수차례 강조하며 "빨갱이가 아니라면 대통령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 결집을 위해 이념 갈등을 증폭시키려는 것일 테죠. 이어 공안검사 경력을 내세우며 "종북 좌파의 전략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부정선거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 '혁명'을 꿈꿨던 종북 세력이 득세해 좌파 정책을 펼쳤고, 사실상 사회주의 정책을 만들었던 이들이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탄핵 심판이 이뤄지는 헌법재판소까지 장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14일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대한민국 체제 수호 결의대회'에서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CHTV 유튜브 캡처


김 목사는 "계엄·탄핵 정국에서 사법부 선관위 헌재 등에 숨어있던 친북·친중 세력의 마각이 드러났다"고 했고, 윤 의원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의결, 영장 청구와 발부, 집행까지 국회·사법부·수사기관에서 민주주의는 붕괴됐고 법치주의는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민 전 의원은 2020년 4월 15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직접 경험한 부정선거 정황들을 앞세우며 "부정선거는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기정사실화했습니다. 대법원은 민 전 의원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현장검증과 재검표, 투표지 감정 등을 실시한 결과 2022년 7월 기각 결정을 내렸는데도 그런 설명은 쏙 뺐습니다.

대한민국이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가치를 강변하면서도, 현실에서 작동하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근간인 선거의 공정성, 사법부의 독립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셈입니다. 현 야당이 장기간 부정선거를 일삼았다면, 윤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서 떨어졌어야 상식적이지 않을까요?

물론 자유민주주의 공론장에서 이뤄지는 주장은, 합법적인 선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보장받고 있습니다. 다만 이념 신분 성별 출신 등에 따라 편을 가르고 세를 규합하려는 주장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정치의 영역에서 이런 주장들을 보듬어 해결해 나가기는커녕 더 극단적으로 증폭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14일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대한민국 체제 수호 결의대회'에서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격려사를 하고 있다. CHTV 유튜브 캡처


이날 김 교수의 격려사에도 이런 아쉬움이 묻어났습니다. 김 교수는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정부로 이어지는 보수 정권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성장 주도 시장 경제, 권력국가의 종지부를 찍고 법치국가로 거듭나는 성과를 거둔 반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서는 퍼주기식 대북 정책의 실패로 인한 좌파 세력의 유입으로 국민 분열이 극에 달했다고 비판하면서도 "
이제는 냉전시대와 달리 좌우가 서로를 척결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아래 진보와 보수가 공존하며 대화를 통해 올바른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
"고 강조했습니다. 정권을 잡기 위해 싸울 것이 아니라 더 살기 좋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인을 향한 충고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정치권에서 결코 흘려들어선 안 될 것은 청년들의 목소리입니다. 진보의 산실로 여겨졌던 대규모 거리 집회에 보수세력이 등장한 것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던 태극기 집회가 시초 격입니다. 당시 보수 집회 참가자 대부분이 노·장년층이었지만,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정국에서 열린 보수 집회에는 2030세대가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행사에서 김 목사는 "계엄령은 계몽령이 됐다"며 청년들에게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 공로가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의식화 조직화 사회화를 거쳐 청년들을 전사로 동원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고려대에서 21일 '윤석열 퇴진 긴급 고려대 행동을 준비하는 모임' 소속 학생과 동문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교문 밖에서는 이들과 정반대 주장을 펴는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고대인들' 소속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보수 청년들의 생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좀 더 유심히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 상당수는
윤 대통령을 지키는 전사가 되려는 것도, 부정선거론을 옹호하는 국가불신론자도 아닙
니다. 지난 10일 연세대를 시작으로 서울대, 경북대, 고려대에서 잇따라 열린 '탄핵 반대' 시국 선언에서 나온 청년들은 민주당이 △거대 야당으로서 협치 대신 공세를 택했고 △이재명 대표를 지키려 사법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으며, 과거엔 △지나친 북한·중국 밀착 외교를 펼치며 안보를 위축시켰고 △양극화와 갈등을 조장하는 정책을 폈으며 △부동산·경제 정책들은 실패를 거듭했기 때문이라며 '반민주당 정서'가 자신들을 행동으로 이끈 근본적인 이유라고 설명합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청년들의 보수 집회 참여 증가에 대해 "
청년 세대의 극우화로 치부하기보다는 과거에 비해 보수적 가치를 가진 청년들도 자신을 드러내놓고 얘기할 수 있는 판이 깔렸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고 분석했습니다. 김 목사가 얘기한 계몽령과는 다르다는 것이죠. 청년은 우리의 미래라면서도 서로 자기편인 청년만 찾는 정치권은 각성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지만, 적어도 대화하고 설득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 최선의 방향을 찾는 것이 정치의 본질일 테니 말이죠.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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