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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사무관 기피하는 ‘정·조·구·미’
“업무 많지만 권한 없다” 볼멘소리
과거 ‘정책 핵심’이란 프라이드도 사라져
구조국→민생국 ‘조직 개편’ 구상… 해답 될까

차관보 라인, 왜 인기가 없습니까?


최근 윤인대 기획재정부 차관보가 소위 ‘차관보 라인’이라 불리는 4개국 소속 과장 스무여명을 소집했습니다. 그는 별안간 과장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자”고 했다는데요. 경제 정책이 아닌 인사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과장들을 모두 불러 모아 회의를 진행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질의를 듣던 도중 굳은 표정으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뉴스1

부총리도 거친 차관보 라인, 지금은 ‘정조구미’ 신세
기재부 조직은 크게 업무 성격에 따라 예산·세제·정책·국제·재정 등으로 계통이 나뉩니다. 그중에서도 차관보실은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곳입니다. 차관보는 경제정책국·정책조정국·경제구조개혁국·미래전략국 등 4개국 그리고 그 소속 22개 과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윤 차관보는 오는 3월 중순 사무관 정기 인사를 앞두고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사무관들 사이에서 차관보 라인은 ‘기피 부서’로 꼽힌 지 오래입니다. 4개국의 이름을 하나씩 딴 ‘정·조·구·미’라는 신조어도 공공연하게 쓰입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평소에도 고민이 깊었다고 하는데요. 더 이상 개인적 고민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획재정부 차관보 라인 조직도. /기재부 홈페이지

그도 그럴 것이, 차관보 라인은 한때 기재부의 ‘핵심’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틀을 짜고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이기 때문이지요. 1년에 상반기·하반기 두 차례 발표되는 ‘경제정책방향’, 경제 관련 국가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경제관계장관회의’ 안건도 이곳에서 만들어집니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60년대 이후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을 주도했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차관보 라인 내 경제정책국의 모태인 경제기획원 종합기획국 작품입니다.

기재부 장관까지 할 만한 인물은 이곳을 거친다는 불문율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현재 기재부 수장인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정책조정국장’·‘경제정책국장’ 등 이곳 차관보 라인 출신이지요. 이 때문에 경제 쪽에 몸담은 관료에 차관보 라인은 최고의 자리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신화는 옛 세대 선배들에게만 유효한 것 같습니다. 최근엔 경제정책국 종합정책과에 있던 막내 에이스 사무관의 이탈도 화제가 됐습니다. 그는 재작년 5급 공채에서 재경직 수석으로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당시 서울대 로스쿨에도 동시 합격했지만 기재부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다시 시험을 치러 결국 로스쿨행을 택했다고 합니다. 그가 거친 자리는 경제정책국 소속 물가정책과와 종합정책과인데요. 당초에도 그의 인사 배치를 두고 ‘첫 자리가 쉽지 않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고 하네요.

아무튼 이 회의에 불려 온 수십명의 과장들은 한명 한명 돌아가면서 다양한 의견들을 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비교적 젊은 과장일수록 의욕적으로 의견을 얘기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뾰족한 대책을 찾을 만한 의견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당사자들인 사무관들의 얘기를 여과 없이 들어봤습니다.

2021년 7월 5일 세종시 아파트 단지가 보이는 정부세종청사 옥상 공원에서 공무원들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무관들 “삼라만상 다루는데 권한 없다, 쉴 틈 안 준다”
먼저 ‘업무 성격’ 측면입니다. 차관보 라인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무관들은 “정부 전체의 브레인 역할을 요구받지만 ‘권한이 없다’”는 점을 가장 먼저 문제로 꼽았습니다. A 사무관은 “타 기관에 전화하면 ‘그게 왜 필요하신데요?’라고 쏘아붙이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과거에는 기재부, 차관보실의 파워가 강해서 협조가 원활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국장 이상 간부들은 옛날 생각만 하고 왜 부처에 제대로 지시하지 않았느냐고 화를 내고, 사무관 이하 실무자들은 슈퍼 ‘을’(乙)로서 싹싹 빌면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들은 분야·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삼라만상’(森羅萬象)의 현황과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수립하는 일을 하는데요. 여기서 오는 자괴감도 있다고 합니다. B 사무관은 “소관 부처나 다른 부서에 비해 전문성과 정보가 부족한 데다 시간도 많지 않은 상태에서 정책을 만들다 보니, 일하는 것보다 ‘일하는 척’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업무 효능감이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C 사무관은 “예산·세제 같은 실질적인 정책 수단은 없는데, 정책 아이디어만 계속 짜내야 한다”며 “얕은 지식으로 계속 정책을 발굴하라고 하니 굉장히 괴롭고, 위에서 시키는 방향대로 밀어붙여야 하니 자괴감이 든다”고 했습니다.

‘업무 강도’ 측면에서 불만도 쏟아졌습니다. D 사무관은 “수시로 각종 이슈가 기사화되기 때문에 주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결돼 있어야 한다”며 “업무량이 많은 것으로 차관보실과 경쟁하는 예산실도, 기본적으로 연간 스케줄이 정해져 있다”고 했습니다. E 사무관은 “오후 6시 이후, 주말에도 마치 평일인 듯 업무 지시를 하는 경우가 많아,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은 그림의 떡”이라며 “‘칼퇴’(정시 퇴근)는 바라지도 않는다. 쉴 시간을 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적절한 보상’이 없었다는 것도 이들의 불만입니다. F 사무관은 “높은 급여를 기대하고 행정고시를 친 것이 아니라서 돈에 목숨 거는 사람은 없다”면서 “초과근무 수당이 시급 1만4000원 수준인데 일별·월별 초과근무 상한 시간이 정해져 있어 결국 공짜로 노동하는 셈”이라고 했습니다.

G 사무관은 “기재부 차원에서 유학·승진 등으로 보상을 해주긴 하지만, 중고참 일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고, 저연차는 아무런 이득이 없다”며 “그저 ‘차관보실 해봤으니, 차관보실에 다시 보내지 않는다’ 밖에 인센티브가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기사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많은 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 어쩌면 윗분들도 다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원인만 분석하지 말고 이제는 대책을 내놔야 합니다. 윤 차관보는 현재 차관보실 조직을 뜯어고치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합니다. 경제구조개혁국을 ‘민생경제국’으로 개편하고, 물가·고용·부동산·청년·복지·소상공인 등 관련 정책을 이곳에서 담당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아이디어입니다.

한 사무관은 기자에게 “기재부, 공무원의 인기가 떨어지는 원인들이 차관보실 조직에 가장 극명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차관보의 진지한 고민과 해답이 공직의 위기를 탈피할 시작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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