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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순 자연다큐멘터리 감독
27년 찍은 맹수 사진, 구리시에서 전시회
'시베리아 호랑이' 다큐 등으로 각종 수상도
"사람·자연 공존 필요성 계속 알리겠다"
최기순 자연다큐멘터리 감독이 지난 12일 강원 홍천군 숲 뮤지엄 '나는 숲이다' 표범극장에서 자신이 카메라에 담은 시베리아 표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홍천=이종구 기자


"한국의 표범과 호랑이는 왜 사라졌을까."

지난달 5일 경기 구리시의 갤러리 카페 '카페비니'에서 열린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이런 의문이 피어올랐다. 아마도 금방 튀어나올 것처럼 시선을 압도하는 생생한 야생동물들의 사진이 색다른 감흥을 끌어올렸을 것이다. 그럴 만도 했다. 푸른 에메랄드빛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표범과 설원(雪原)을 뛰어다니는 호랑이 모습에서는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전시회를 연 최기순(62) 자연다큐멘터리 감독을 지난 12일 강원 홍천군 본인의 숲 뮤지엄 '나는 숲이다'에서 만났다. 최 감독은 이름난 1세대 자연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야생동물 사진작가다. 구리 전시회에는 27년간 촬영한 러시아 시베리아 맹수들의 사진을 모아 내놨다. 한국에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는 호랑이를 비롯해 야생 표범과 반달곰 사진 등 50여 점이다. 그는 "더 많은 사람에게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춘 호랑이와 표범, 곰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1994년 삼성그룹 계열사인 제일기획 뉴미디어팀에 입사한 최 감독은 1996년 MBC 제안에 광복절 특집 '남극점을 가다' 제작팀에 합류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생태 다큐 촬영에 빠져 지내다 결국 휴직하고 남극대륙 횡단 프로젝트에서 프로듀서와 촬영을 맡았다. 그는 "극한의 추위 속에 68일을 꼬박 걸어 1997년 2월 21일 남극점에 도달하니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고 회상했다. 실력을 인정받아 그해 EBS로부터 "한국에서 건너간 시베리아 야생동물의 생태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다.

최기순 자연다큐멘터리 감독이 지난 12일 강원 홍천군 숲 뮤지엄 '나는 숲이다' 표범극장에서 자신의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숲이다'의 주인공인 시베리아 표범 희망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천=이종구 기자


복직과 자연 다큐 감독의 길이라는 기로에 선 최 감독은 퇴사를 결심했다. 그는 "시베리아에서 한국 맹수들의 발자취를 탐사하고 기록하는 일이 더 가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듬해인 1998년 백두대간과 이어진 러시아 시호테알린산맥으로 갔다. 최 감독은 "영하 30도의 극강 추위에서 한 달 가까이 텐트 생활을 하며 무작정 기다리던 어느 날, 설원 속 야생 호랑이와 마주했다"며 "음식 조절로 사람 냄새를 없앤 뒤에야 호랑이가 곁으로 다가왔다"고 벅찼던 당시 감정을 떠올렸다. 대한민국 최초로 시베리아 호랑이 촬영에 성공한 그의 다큐 '시베리아 호랑이'는 그해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방송국과 손잡고 '잃어버린 한국 야생동물을 찾아서'(EBS) '반달곰 미샤와 마샤의 홀로서기'(MBC) '캄차카의 제왕, 불곰'(KBS) '하산 계곡의 포효, 한국 표범'(EBS) 등을 잇달아 내놓았다.

그중에서도 스스로 꼽는 인생작은 2001년부터 21년에 걸쳐 완성한 6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숲이다'이다. 이 영화는 표범의 땅이라 불리는 시베리아 서식지의 암표범 마야와 수표범 뜨리 사이에서 태어난 희망이, 그리고 희망이가 낳은 새끼까지 3대 표범가족의 삶을 온전히 담아냈다. 지구상 유일한 호랑이 서식지에서 살아가는 호랑이 10여 마리의 활동 모습 또한 담았다. 러시아 국립공원의 허가를 받아 시베리아 표범연구소의 자문과 검증도 거쳤다.

최기순 자연다큐멘터리 감독이 지난달 5일 경기 구리시의 갤러리 카페 '카페비니'에서 전시한 시베리아 호랑이 사진 작품들. 이종구 기자


그는 "표범가족 3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는데, 희망이가 태어나 5년 만에 새끼를 입에 물고 내 앞에 나타났을 때 감동은 말로 표현이 힘들 정도였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20년간 제작비 20억 원을 쏟아부은 이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최 감독은 대학 강단에 서며 자금을 마련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나는 숲이다'는 그가 만든 동명의 숲 뮤지엄 '나는 숲이다' 내 표범극장에서만 볼 수 있다.

야생과 혹한의 땅 시베리아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온 최 감독의 바람은 하나다. "1900년대 초 한반도 전역에 서식했던 표범과 호랑이가 왜 멸종했는지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다.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알리는 작업을 이어가겠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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