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날 수 있다?
최근 여권과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꾸준히 흘러나온 ‘윤석열 대통령 하야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헌법재판소(헌재)의 탄핵심판 선고 전 윤 대통령이 하야할 수 있다는 전망인데, 당사자인 윤 대통령 쪽과 국민의힘이 강하게 부인하며 제동이 걸리긴 했습니다. 소설같은 이야기라는 거죠. 여기에는 조기 대선을 둘러싼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의 복잡한 심경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재로써 하야설은 조기 대선을 생각하는 이들의 ‘희망사항’에 가까워 보입니다.
발단: 윤 대통령 변호인단 ‘중대 결심’ 언급
하야론은 지난 13일 윤 대통령 변호인단이 “헌재가 탄핵심판을 지금처럼 한다면 대리인단(변호인단)은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밝히며 불거졌습니다. ‘중대 결심’을 두고 헌재 선고 불복, 변호인단 총사퇴 등의 해석이 나오던 가운데, 보수 논객 조갑제 ‘조갑제 티브이’(TV) 대표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면서 하야론에 불을 붙인 겁니다.
이어 조선일보·동아일보·문화일보 등 보수 언론 칼럼에서 헌재 결정 뒤 찬반 여론이 맞서며 극심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논지로 하야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며 하야론이 점차 ‘실체’를 갖춰가기 시작합니다.
15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경찰 버스로 만든 차벽을 사이에 두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찬성(아래쪽), 반대(위쪽)하는 집회가 각각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전개: 당사자와 대통령실, 여당의 강한 부인
윤 대통령 쪽과 대통령실, 국민의힘은 하야설을 바로 부인했습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인 석동현 변호사는 지난 14일 채널에이(A) 인터뷰에서 “자진하야는 절대 아니다. 하야를 운운하는 건 탄핵 공작하는 이들의 사악한 상상력이자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중대 결심은 변호인단 총사퇴라는 이야기입니다.
대통령실 쪽도 “실체 없는 이야기”,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일축하고 있습니다. 최근 보수층 결집으로 탄핵 반대 여론이 높아지면서 대통령실 내부 일부에선 ‘탄핵이 기각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흐르는데, 하야설이 터져 나오자 그 의도를 의심하는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그런 것은 현실적으로 고려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선을 그으며 하야설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위기: 조기대선 동상이몽
하야론에는 ①비상계엄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②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될 가능성이 크다 ③결국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것이다 등 세 가지 전망이 깔려있습니다. 현재 국민의힘은 헌재를 공격하며 윤 대통령 탄핵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보니, 하야는 물론 조기 대선을 입에 올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윤 대통령 파면 시 갑자기 대선을 준비할 경우 국민의힘에선 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탄핵 찬성 의견 비율이 높은 중도층의 마음을 갑자기 잡기도 녹록지 않습니다. 즉 하야는 불확실성을 해소해 국민의힘이 조기 대선을 준비하고, 또 대선에서 탄핵 찬반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조갑제 대표는 윤 대통령 하야를 거론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꽤 높지 않냐”며 “하야를 결단하면 그 동정심이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반이재명 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리한 여론을 만들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하야로 조기 대선에서 ‘희생양 이미지’를 부각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반감을 보이는 이들과 중도층 일부를 국민의힘 지지층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국민의힘 수도권 한 의원도 최근 “탄핵이 기각돼도 이전으로 돌아가기 쉽지 않다. 만약 조기 대선을 하게 되면 등 돌린 중도층이 문제”라며 “탄핵심판 결과와 상관 없이 윤 대통령이 당의 앞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면 나쁠 게 없다”고 조심스레 말하더군요. 모두 보수 진영과 국민의힘의 ‘생존’을 바라는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대통령임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 ‘열쇠는 윤 대통령이 쥐고 있다’, ‘윤 대통령의 마지막 결단’ 등 보수 언론의 칼럼 제목이나 내용에서도 이러한 기대가 엿보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월6일 오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6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절정: “이미 늦었다”, “사표 내면 끝나나”
하지만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이 하야를 선택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4일 “하야를 거부하고 탄핵심판을 선택한 것은 윤석열 자신이었다. 전직 예우라도 잠시 연장해 보려는 하야 꼼수는 꿈도 꾸지 말라”고 했고,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16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하야한) 이승만의 길을 가건 (파면된) 박근혜의 길을 가건 국민 관심 밖이며, 그 선택은 이미 늦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민의힘에서도 18일 “하야의 시기가 지났다고 본다. 하야를 하시려면 12월 3일, 4일 그때 이후에 즉시 하야를 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수가 있다”(김상욱 의원 라디오 인터뷰) 등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윤 대통령이 하야하면 탄핵심판 청구가 각하될 거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탄핵심판 중 대통령의 사퇴가 가능한지에 대해 헌법이나 법률에 명확한 규정은 없습니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탄핵)소추된 사람의 권한 행사는 정지되며, 임명권자는 소추된 사람의 사직원을 접수하거나 소추된 사람을 해임할 수 없다”는 국회법 134조를 들어 사퇴가 불가하다고 반박합니다. 다만, 윤 대통령은 임명권자가 없기에 이 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재반박도 있습니다.
결말: 헌정질서 회복을 위해서는
지난해 국회 탄핵소추 표결 전 여권에서 제기한 ‘질서 있는 퇴진론’을 걷어차고 “끝까지 싸우겠다”며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는 윤 대통령이 하야를 선택할 가능성은 현재로써는 낮아 보입니다.
중요한 건 하야 여부가 아닌 것 같습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12·3 내란사태의 위헌·위법성을 명확히 판단해,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헌정 질서 회복을 위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상계엄을 통한 쿠데타는 반복될 위험이 있다”며 “헌재 탄핵심판의 객관적 이익은 단순히 (대통령이) 직위에서 물러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을 넘어, 비상계엄의 위헌·위법 여부를 분명히 판단하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도 1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은 정확하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아, 그 판단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우리 헌정사에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며 “유야무야 있었던 듯 없었던 듯 넘어가 버린다면, 경우에 따라 다음 대통령이 되는 사람도 ‘또 그래도 되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선례를 남겨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