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준(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장이 13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자체 추경안을 공개하고 구체적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어제 총 34조7,000억 원 규모의 자체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공개했다. 민생회복(23조5,000억 원)과 경제성장(11조2,000억 원)을 두 축으로, 이재명표 정책으로 불리는 전 국민 25만 원 민생지원금에 해당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13조1,000억 원)과 지역화폐 할인지원(2조 원) 등이 담겼다. 정부·여당이 난색을 표하면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철회 가능성을 시사했던 전 국민 25만 원 지원금이 포함된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정부·여당이 민생지원금 때문에 추경을 못하겠다면 포기할 수 있다"고 했다. 당시엔 내수 경기 진작에 시급한 추경 편성을 위해 자신의 대표 정책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졌다. 이 대표의 유연한 태도로 추경 논의에 물꼬가 트이는 듯했으나, 민주당의 추경안 공개로 협상 시작 전부터 난항이 예상된다. 국민의힘은 이날 "경제를 살리자던 추경은 결국 조기 대선용이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물론 민주당은 정부·여당과의 협상 여지를 열어두었다. 전 국민 25만 원 지원을 선별 지원으로 바꿀 수도 있고 더 좋은 사업이 있다면 포기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조기 대선에 앞서 이 대표의 대표 정책인 민생지원금을 조금이라도 얻어내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말로는 추경 논의의 걸림돌을 제거한 듯하다가 갑자기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난다. 협상 상대의 불신을 자초하는 것은 추경을 논의할 여야정 국정협의회 가동만 어렵게 만들 뿐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 몫이다. 최근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하고 있는 실용주의가 국민 다수의 울림을 얻지 못하는 이유도 이처럼 일관성이 결여된 태도와 무관치 않다.
국민의힘은 추경 논의를 반도체특별법 처리와 연계한다는 방침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부도 민생이 어렵고 글로벌 교역 불확실성이 있으니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논의하자는 입장"이라며 추경 편성에 공감했다. 정부와 야당 사이에 중재자가 되어야 할 여당이 오히려 추경 논의의 전제조건만 고집하는 것은 국민의 눈에 딴지를 놓는 모습으로 비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