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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4주기···‘신학철,기완을 부르다’ 전시
생전 아꼈던 ‘어머니’ 선보여
백기완 경향신문 연재 ‘하얀 종이배’
신학철 삽화 40점도 최초 공개
“백, 투사이지만 마음은 여려
그의 이야기 들으면 그림이 그려져”
신학철의 ‘어머니’(2006). 캔버스에 유채, 60×73㎝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제공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백기완 마당집에서 열린 백기완 선생 4주기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특별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신학철 화백이 ‘어머니’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백원담 교수, 신 화백, 명진스님, 유홍준 교수. 정지윤 선임기자


머리에 두건을 두른 어머니가 국수를 먹고 있다. 일하다 급히 끼니를 때우는 듯 부엌 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채 그릇도 아닌 바가지에 국수를 담았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1933~2021)의 책 <부심이의 엄마생각>을 읽고 신학철 화백이 그린 그림 ‘어머니’(2006)다.

백기완은 생전 “이 그림은 못 팔아, 억만금을 줘도 안 팔아”라고 말했다. 백기완이 생전 ‘노나메기 문화관’을 짓기 위해 그림을 판매할 때도 ‘어머니’만은 내놓지 않고 숨겨버렸다. ‘어머니’의 원화가 16년 만에 일반에 공개된다.

평생 불쌈꾼(혁명가)이자 통일운동가, 민중운동가로 살아온 백기완 4주기를 맞아 서울 대학로 ‘백기완마당집’에서 열린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전시에서다.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백기완과 오랜 우정을 나눈 동무이자 동지였던 신학철은 통일문제연구소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선뜻 그림을 내주었고, 백기완의 글을 위한 그림을 그리곤 했다. 이번 전시에는 신학철이 <부심이의 엄마생각>을 위해 그린 그림 30점(원화 4점·디지털 복사본 26점)이 걸렸다. 백기완이 2012년 경향신문에 연재한 어린이 통일이야기 ‘하얀 종이배’에 넣었던 신학철의 삽화 40점도 최초 공개된다.

“백기완 선생은 예술의 가치를 알아보고 제 몸처럼 아낀 분입니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나니’라는 글귀도 쓰셨죠.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오는 그분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냥 그림이 펼쳐져요. 강인한 투사이면서도 속마음은 굉장히 부드럽고 여린 사람이었습니다.”

5일 서울 종로구 백기완 마당집에서 열린 백기완 선생 4주기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특별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신학철 화백이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신학철 ‘땅에 떨어진 것은 먹는 것이 아니다 뱉어’(2024), 캔버스에 유채, 73×60㎝(2006년 원작은 53×45㎝)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제공


5일 백기완마당집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학철이 말했다. 그는 꼭 봐야 할 그림으로 백기완이 가장 아꼈던 ‘어머니’를 꼽았다. 백기완은 “국수를 먹는 잔칫날인데도 방 안이 아닌 부엌에서 쭈그리고 자시면서 우리를 낳아 기른 어머니의 정서를 표현했다”며 이 그림을 각별히 여겼다. 신학철은 “배고픔에 대해 백 선생처럼 잘 알고 표현한 작가도 없다. ‘어머니’를 그토록 아낀 것도 당신이 겪어온 삶과 가치관 때문”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학철이 그림 ‘모내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 갇혔다 풀려나자 백기완이 그에게 몸을 추스르라며 밥을 샀다. 이후 두 사람은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는 동료이자 함께 투쟁하는 동지로 연을 이어왔다.

전시를 기획한 노순택 작가는 “둘은 주고받는 사이였다. 백기완이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 신학철이 붓을 들 때가 있었고, 신학철의 그림에 백기완이 펜을 들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부심이의 엄마생각> 그림은 신학철이 먼저 제안했다. 처음엔 표지 그림만 그렸지만, 책을 다 읽은 뒤 감동받아 유화 30점을 추가로 그리게 됐다. 2011년 무렵 두 사람이 ‘노나메기 문화관’ 설립 기금을 마련하려 ‘어머니’ 한 점을 뺀 그림을 판매했다. 문화관 건립은 무산됐지만 판매액은 백기완노나메기재단을 세우는 기금으로 사용됐다. 이번 전시를 위해, 땅에 떨어진 엿을 먹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가 주인공인 ‘땅에 떨어진 것은 먹는 것이 아니다 뱉어’ 등 3점을 유화로 다시 그렸다.

신학철 ‘새뚝이’(2003), 나무판 위에 유채, 39×29㎝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제공


신학철 ‘부활도-산 자여 따르라’(2020), 캔버스에 유채, 116×91㎝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제공


전시장에선 신학철이 백기완을 그린 그림도 볼 수 있다. 백기완의 불끈 쥔 주먹을 그린 ‘새뚝이’(2003), 백기완 장례 때 썼던 ‘부활도-산 자여 따르라’(2020) 등이다. 백기완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본 신학철의 작품도 있다. 2020년 병원에서 투병 중일 때 작업한 ‘백두산 호랑이’(2020)이다. 백두산 정상에서 백기완이 목놓아 소리치는 모습을 콜라주로 그려냈다.

1층 백기완의 방을 복원한 곳에선 신학철의 ‘갑돌이’(1991)를 볼 수 있다. 백기완이 1992년 대선에 민중후보로 출마했을 때, 신학철이 ‘당장 팔아먹을 수 있는 그림’이라며 들고 온 것이다. 공장에서 일하던 농민의 아들이 프레스에 손을 다친 후 엿장수가 된 사연을 담은 그림이다. 백기완은 “연구소가 어렵다고 이 그림을 부잣집 벽에 걸어두고 낮잠만 자게 할 수 없다”며 팔지 않았다.

경향신문에 40회 연재된 ‘하얀 종이배’는 백기완이 젊은 시절 들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38선이 그어진 후 이를 넘어서고자 한 최초의 사람들을 담은 이야기다. 신학철 화백의 삽화 원본은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현재 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신학철의 대표작을 망라한 회고전 ‘시대의 몽타주’가 열리고 있다. 백기완 4주기 추모 일정으로 오는 14일 ‘윤석열 탄핵! 민주주의 대행진’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진행되며, 15일엔 마석모란공원에서 추도식이 열린다.

백기완이 2012년 경향신문에 연재한 어린이 통일이야기 ‘하얀 종이배’에 신학철이 그린 삽화.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제공


5일 서울 종로구 백기완 마당집에서 열린 백기완 선생 4주기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특별전시회에 경향신문에 연재되었던 ‘하연 종이배’ 삽화로 그린 신학철 화백의 작품이 걸려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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