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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오후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동 전주종합경기장 주경기장. 초·중학교 육상부 선수 등이 트랙 위를 달리고 있다. 김준희 기자


우레탄 트랙 뜯기고 관중석 색 바래
지난달 27일 오후 3시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동 전주종합경기장 주경기장. 전주 덕진초·문학초·전라중 육상부 선수 30여명이 트랙 위를 달리거나 장대높이뛰기 등을 연습했다. 우레탄 트랙을 들여다보니 곳곳이 뜯겨 있고, 관중석 노랑·파랑·빨강 의자는 대부분 색이 바랬다.

분침이 없어진 전광판 시계 시침은 10시와 11시 사이에서 멈췄다. 덕진초 육상부 코치 A씨는 "이곳은 너무 노후화해 경기뿐 아니라 훈련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며 "4월부턴 전북대에서 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전주종합경기장 전경. 전북도가 44회 전국체육대회를 치르기 위해 1963년 지었다. 사진 전주시


철거비 110억…컨벤션센터·호텔·백화점 짓기로
1일 전주시에 따르면 전주종합경기장은 이달 초 해체를 시작하는 이른바 '철거 예정지'다. 우범기 전주시장이 공약한 'MICE(회의·전시·박람회 등 행사) 복합단지 개발 사업'을 하기 위해서다. 철거비만 110억원이다.

전주종합경기장은 44회 전국체육대회를 위해 1963년 지었다. 전북도가 2005년 12월 전주종합경기장 부지를 전주시에 무상으로 넘긴 후엔 시장이 바뀔 때마다 개발 계획이 바뀌었다.

결국 전주시는 ㈜롯데쇼핑과 손잡고 전주종합경기장을 헐고, 그 자리(12만715㎡)에 오는 2028년까지 민간 투자 등 1조800억원을 들여 컨벤션센터·호텔·백화점 등을 짓기로 했다. 지난해 5월 먼저 철거한 야구장(5571㎡) 부지엔 전주시립미술관과 한국문화원형 콘텐트 체험·전시관을 만들 예정이다.

인부들이 지난해 중장비를 동원해 전주종합경기장 내 야구장을 철거하고 있다. 사진 전주시


전북 최초 마라토너 '박용상' 동상 남아
이날 주경기장 밖에선 김종영(80·전주시 중노송동)씨 등 6명이 성화를 든 남성 동상 근처에서 생활 체조를 하고 있었다.

이 동상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손기정·남승룡 선수 등과 겨뤄 4위를 기록한 고(故) 박용상 전 전북일보 사장이 모델이다. 전북 최초 마라토너로 알려진 그는 44회 전국체전 개회식 최종 성화 주자였다.

전주종합경기장 내 성화 봉송 주자 동상. 1936년 베를린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손기정·남승룡 선수 등과 겨뤄 4위를 기록한 고(故) 박용상 전 전북일보 사장이 모델이다. 전북 최초 마라토너로 알려진 그는 44회 전국체전 개회식 최종 성화 주자였다. 김준희 기자
김종영(80·전주시 중노송동)씨가 지난달 27일 전주시 덕진동 전주종합경기장 내 동상 기단에 적힌 글귀를 읽고 있다. "우리 전라북도의 온 도민은 (중략) 마음을 모으고 힘과 정성을 기울여 이 종합경기장을 마련함이니 이 땅의 아들과 딸들이여 우리의 뜻을 영원히 저버리지 말라. (후략) 1963년 10월 4일 전라북도지사 김인"이라고 적혀 있다. 김준희 기자


준공식 본 박정희 "'티끌 모아 태산' 봤다"
전주시에 따르면 전주종합경기장 건설비 8100만원 중 80%가량은 초등학생 1원, 중·고등학생 3원, 직장인 50원 등으로 시작된 도민 모금 운동이 발판이 됐다. 짜장면 한 그릇이 3원이던 시절이었다.

1963년 10월 전주종합경기장 준공식을 보고 놀란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하더니만 이곳에서 그 실체를 봤다"고 치사했다고 한다.

전주종합경기장 주경기장 입구. 전주시는 2018년 전주종합경기장을 100년 후 전주 보물이 될 '미래유산 1호'로 지정했다. 김준희 기자
전주종합경기장 주경기장 관중석. 분침이 없어진 전광판 시계 시침이 10시와 11시 사이에서 멈췄다. 김준희 기자
지난달 27일 전주종합경기장 주경기장 내 복도. 4월 철거를 앞두고 이곳에 사무실을 둔 체육발전연구원 등이 전주월드컵경기장 등으로 짐을 옮겼다. 김준희 기자


"건설비 8100만원 중 3000만원 쾌척…수당문 만들어"
전주종합경기장은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 제2구장, 쌍방울 레이더스 홈구장, 프로축구 현대모터스 홈구장이었다.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를 비롯해 전국체전만 다섯 차례(1963·1980·1991·2003·2018년) 열렸다. 전주시는 2018년 전주종합경기장을 100년 후 전주 보물이 될 '미래유산 1호'로 지정했다.

이 때문에 전주종합경기장엔 사료로서 가치가 있는 상징물이 즐비하다고 한다. 경기장 정문 입구에 있는 수당문 상량(지붕 밑 마룻대)이 대표적이다. '수당(秀堂)'은 삼양사를 설립한 고창 출신 고(故) 김연수씨 아호다. 그는 동아일보·고려대를 세운 김성수씨 동생이자 김상협 전 국무총리 아버지다. 전북도는 경기장을 지을 때 3000만원을 쾌척한 김씨 공로를 기리기 위해 그의 호를 따 수당문을 만들었다.

전주종합경기장 정문 입구에 있는 수당문 상량(지붕 밑 마룻대). '수당(秀堂)'은 삼양사를 설립한 고창 출신 고(故) 김연수씨 아호다. 전북도는 경기장을 지을 때 3000만원을 쾌척한 김씨 공로를 기리기 위해 그의 호를 따 수당문을 만들었다. 김준희 기자


"역사적 가치 담긴 유산 보존해야"
그러나 친일 잔재 청산 운동이 확산하면서 2015년 4월 19일 김완주 당시 전주시장은 수당문 현판을 뗐다. 일각에선 "수당문 현판은 친일 잔재물이 아닌데도 전주시가 충분한 여론 수렴 없이 국민 정서에 편승했다"는 반론이 있었지만, 철거는 막지 못했다.

전주시는 지난 1월 경기장 자료 조사와 디지털 자료화, 철거 후 잔존물 활용 등을 위한 9200만원 규모 '기록화 사업' 용역에 착수했다. 장희광 전주시 체육시설조성팀장은 "전문가 의견 등을 모아 무엇을 남기고, 어떻게 활용·보존할지 결정하겠다"고 했다.

전북도가 1980년 10월 8일 열린 61회 전국체전을 치르기 위해 17년 만에 전주종합경기장을 증개축할 때 세운 탑. 비문엔 당시 조철권 전북지사 이름이 새겨져 있다. 김준희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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