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중국 베이징 즈진청(자금성)을 주민들이 둘러보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아적쾌락 북경생활
나의 베이징 이야기
박현숙 지음 l 후마니타스 l 1만7000원
경계의 사람들은 대개 예리해진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감각은, 이쪽과 저쪽을 모두 살피는 부지런함이 된다. 경계엔 기준이 없기에 이들의 시각은 필연적으로 비판적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중국 정치를 공부하고 인생의 절반을 중국에서 살아온 박현숙의 책은 중국을 ‘혐오의 대상’으로 요약하지 않는다.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부터 광장의 춤바람까지를 아우르는 생생한 이야기들을 보고 있노라면,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 딱 떨어지는 결론을 내릴 순 없어도 제목처럼 즐겁게(쾌락) 읽어나갈 수는 있다. 다채로운 모습을 전하면서도 ‘이것이야말로 진짜 중국’이라는 식의 으스대는 태도가 없는 것 또한 미덕이다.
한국 독자에겐 타국인 중국 이야기에 ‘쾌’를 더하는 건 ‘사람들’이다. 반혁명 분자로 몰려 17년을 감옥에 갇혀 있다 나온 뒤 누드모델이 된 교사 출신 할아버지, 낡은 자동차 한 대를 이끌고 가출 여행을 떠난 56살 여성, “내 조국은 어디야?”라고 묻는 저자의 고등학생 딸(한국 출생, 중국 거주)까지…. 흥미로우면서도 눈물 나는 삶들 덕분에 길지 않은 글이 두텁게 느껴진다.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억울한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이들은 베이징의 ‘행복로’에서 맹물에 끓여낸 국수를 먹으며 산다. 저자는 이곳의 이름에서 ‘난쏘공’의 무대였던 가상의 낙원구 행복동을 떠올린다. 불법 개조 쪽방에서 살다 쫓겨난 청년의 “백 번을 다시 태어나도 이 월급으로는 절대 베이징에 작은 집 한 채도 못 살걸요”라는 말은 베이징을 ‘서울’로 바꾸어도 위화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