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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신력있는 대북제재 위반 감시수단 패널, 러시아 몽니에 사라져
미러갈등·북러밀착 지정학 변화 속 대북제재 체제 첫 '제도적 후퇴'


유엔 안보리 회의장
촬영 김슬기. 유엔 안보리 회의장 전경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가 잘 지켜지는지 감시하고 위반 사항을 추적해 온 '전문가 패널'이 러시아의 몽니로 창설 15년 만에 활동을 중단해야 하는 초유의 상황을 맞았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안보리 대북제재의 효과적 이행을 위한 중요한 제도적 수단을 잃게 됐다.

안보리는 뉴욕 현지시간 28일 오전 전체회의를 열고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이하 패널)의 임기를 내년까지 1년 연장하는 내용의 결의안 채택을 시도했으나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다.

이에 따라 패널 활동은 다음 달 30일로 종료된다.

한미 등 서방 이사국들은 당초 지난 22일로 예정됐던 표결을 미루면서까지 러시아와 협의를 계속하며 타협안 마련을 시도했으나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패널은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응한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 1874호로 창설됐으며 현재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과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 총 8개국에서 각각 파견한 전문가 8명으로 구성돼 있다.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위반이 의심되는 각종 상황을 유엔 회원국 등을 상대로 독립적으로 조사해 연 2회 보고서로 펴낸다. 이를 바탕으로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나 유엔 회원국에 제재 이행 관련 권고를 내놓는 역할도 했다.

패널은 북한의 정제유 밀수부터 사이버 공격을 통한 금전 탈취, 무기 제조를 위한 장비·부품 반입, 사치품 금수 위반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제재 위반 의심 행위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북한 제재 선박의 이동 경로를 쫓아 불법 환적 정황을 포착하거나 해외에서 제재 위반 행위를 벌이는 북한인 행적을 추적하는 등 수사 기관을 연상케 하는 활동도 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이 모두 참여하는 공신력있는 기관에서 대북 제재 이행 상황을 상시 감시하고, 위반 활동을 실체적으로 밝혀내 국제사회에 공개한다는 점에서 패널은 큰 힘을 가졌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경쟁으로 국제질서가 진영화되고, 안보리 내에서 서방과 중국·러시아의 분열이 심화하면서 패널 운영도 어려움을 맞았다.

최근 러시아는 북한과 군사 협력에 나서면서 안보리 결의를 노골적으로 위반하고 있다. 패널의 일원으로 제재 위반 조사에 참여하는 러시아가 대북제재를 정면으로 어기는 모순적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러시아는 이번 패널 임무 연장 관련 결의 문안에 전체 대북제재 결의 내용에까지 적용되는 소위 일몰 조항(특정 시한이 지나면 효력이 자동으로 사라지게 하는 조항)을 넣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패널은 임기가 끝나기 전에 결의를 채택하는 방식으로 1년마다 임무를 연장해 왔다. 즉 일몰 조항은 패널 임기에만 적용됐는데, 이를 대북 제재 자체에까지 적용하자는 게 러시아 제안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제안대로라면 1년 뒤에 새로운 결의를 채택해 기존의 안보리 대북제재를 갱신해주지 않으면 전체 안보리 대북제재가 무효로 되는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안보리 대북제재가 존폐 기로에 서는 것으로, 대북제재에 소극적인 최근 중·러의 태도를 감안하면 제재가 결국 사라질 가능성이 높았다.

패널 연장 결의안 작성국(penholder)인 미국을 비롯해 한국 등 서방 이사국들은 이런 러시아 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협상을 거듭해도 러시아가 뜻을 굽히지 않자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감수하고라도 표결을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패널과 대북제재 중 후자라도 살려야 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한미 등이 대북제재에 대한 일몰 조항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게 자명한데도 러시아가 이런 안을 내놓은 의도에도 관심이 쏠린다.

러시아는 지난해에도 패널 임기 연장안을 논의하면서 북한 주민에 미치는 제재 영향을 최소화하자는 내용을 포함할 것을 요구하는 등 최근 몇 년간 대북제재 흔들기를 시도해 왔다.

여기서 더 나아가 패널의 임기 연장 불발까지 상황을 몰고 간 것은 사실상 안보리 대북제재 체제를 무력화하려는 행동까지 서슴없이 한 것이다.

이를 두고 러시아가 다른 안보리 현안에서 미국을 압박할 협상수단으로 패널 임기 연장을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지만, 결국엔 북러 군사협력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패널이 러시아에 '눈엣가시'가 됐기 때문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가장 최근인 지난 20일(현지시간) 공개된 패널 정례 보고서에도 북러 무기거래 관련 정황이 집중적으로 담긴 바 있다.

이번 투표에서 기권표를 던진 중국도 패널 활동이 내심 달갑지 않았을 수 있다.

십수 년간 국제사회가 축적해 왔던 안보리 대북제재 체제가 '제도적 후퇴'를 한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지정학 대결 속에서 북핵 문제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기본적 공감대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신호여서 북한에도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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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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