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27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국 의대 교수들이 집단사직에 나선 가운데, “환자를 떠날 수 없다”며 병원에 남겠다고 선언한 교수의 사연이 전해졌다.

28일 의료계에 따르면 ‘빅5’ 병원 소속 A교수는 “제가 치료한 환자가 울면서 떠나지 말아 달라고 하더라. 한두 명씩 사라지니 버림받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라며 “그런(사직) 마음이 생길 수 없다”고 중앙일보에 말했다.

A교수는 “환자들에게 ‘난 (사직서를) 안 낼 것이다. 다 나가고 한 명 출근하면 그게 나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도 전했다.

그는 사직서를 내지 않는 이유로 정부 정책 방향에 일부 동의하는 마음이 있어서라고 고백했다.

A교수는 ‘2000명 증원 규모가 적당한가’에 대해 “정확한 규모는 내가 잘 몰라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오느 순간 의사 수가 부족할 것이고, 의사 증원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설명을 내놨다.

그는 지난달 전공의들이 먼저 병원을 떠날 당시에도 “면허는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A교수는 “(EMR·전자의무기록시스템) 로그인이라도 한 번 하고 증거를 남겨 달라고 했지만 한 명도 응하지 않았다”며 “이런 제자들을 나중에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빅5’ 병원의 B교수도 사직서를 내지 않을 생각이다.

B교수는 “환자한테는 5년 후, 10년 후에 와도 이 의사가 병원에 있을 거란 믿음이 있어야 한다”며 “어린 환자가 군대 갈 때, 취직할 때까지 내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는데 내가 지금 그만두면 아이를 잘 아는 의사가 병원에 남아있지 않는 게 된다”고 강조했다.

B교수는 “1년 연수를 가더라도 훨씬 전부터 대책을 세워두고 가는데 지금 사직하면 대책 없이 그만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전국 40개 의대 소속 교수 일부는 지난 25일부터 집단사직을 시작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이들 병원에서 400여명이 사직서를 낼 계획이다. 울산대 의대애서도 433명이 사직서를 냈다.

전공의에 이어 교수마저 병원을 떠나며 환자들의 불안감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환자들 사이에서는 “아이 진료가 예정돼 있는데 웬 날벼락이냐” “교수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다른 병원으로 도미노처럼 번질까 두렵다” 등 호소가 쏟아지고 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등 7개 단체가 참여하는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전날 “‘번 아웃’ 문제가 안타깝지만, 생명이 걸린 입장에서 의사를 이해해 달라는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필수 의료 담당 교수가 단 한 명이라도 실제 병원을 나가면 환자 죽음을 방조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미정 충남 천안 단국대병원 소아청소년과장은 지난 22일 언론 기고에서 “아픈 환자를 버려두고 병원을 나서는 순간, 국민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지는 것”이라며 “전공의들이 중환자와 응급환자를 맡기고 갔는데 이들이 부재한 상태에서 교수들마저 떠나면 정말 의료대란이 올 것이다. 의사가 파업할 경우 응급의료와 암 수술 등 필수 의료는 중단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떤 의사 파업도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김지훈 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