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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 청주 개농장서 구조
칼집·핏자국 선명 도축 탁자 옆, 꼬리 치는 개들
이번에 구조된 개들 미국으로 보내져 입양 예정
단체들 "개농장 남은 31만5,000마리 대책 필요"
지난 8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개농장에서 배우 다니엘 헤니가 뜬장에서 구조된 개를 이동장에 넣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구조된 개들 중 51마리는 먼저 미국으로 건너가 입양 가족을 찾게 된다. 청주=박시몬 기자




지난 8일 오전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개농장.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
활동가 20여 명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해 3월
단체가 이 농장에서 구조한 개 67마리
가운데 29마리를 이날 오후 미국행 비행기에 태우기 위해서였다. 나머지 개들 중
청주 시보호소에서 보호하던 22마리도 이날 함께 출국길
에 올랐다. 이들은 단체가 운영하는 미 메릴랜드주 재활센터로 이동해 입양 가족을 찾게 된다. 구조 현장에는 개식용 반대에 강한 목소리를 내왔던
배우 다니엘 헤니
도 참여했다.

이곳에서는
40년간 불법으로 개 사육과 도축
이 이뤄져왔다.
올해 2월 불법 도축을 한다는 시민의 신고 뒤에야 죽음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 발이 빠지는 뜬장(땅에서 떠 있는 철창) 바로 옆에는
들을 도살했던 탁자와 도구, 사체를 걸었던 십여 개의 갈고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탁자는 얼마나 많은 개들을 죽였는지 보여주듯 칼집과 핏자국이 선명했다.
뜬장 속 개들은 다른 개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봤어야
했다. 가축분뇨배출시설 등을 신고하지 않은 것은 불법이고, 개 식용이 허용되던 때에도 다른 개들이 보이는 앞에서 개를 도살해왔기 때문에 동물보호법 위반이다.

이 농장 개들은 대부분
진도 믹스로 세 살 이하 강아지들
이었다. 질병으로 겁이 있는 개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낯선 사람들을 반겼다.

헤니 “개농장서 구조된 줄리엣, 너무 자랑스러워”

8일 충북 청주시의 한 개농장에서 배우 다니엘 헤니가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청주=박시몬 기자


개식용 금지에 적극적이었던 헤니는 이날 구조 현장에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헤니는 구조활동에 동참한 소감을 묻자 "만감이 교차한다"며 "구조활동에 참여하면 특히 일부 개들과 유대감을 쌓게돼 헤어짐이 아쉽기도 하지만
이들에게 새로운 여정이 펼쳐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행복
하다"고 밝혔다.

헤니는 또 법 제정으로 개식용이 금지된 것에 "매우 흥분된다"며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2027년 완전 금지된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발전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
마음의 문을 열어준 시민들, 또 이를 위해 노력한 단체들에 매우 고맙다
"고 덧붙였다.

배우 다니엘 헤니가 8일 청주시 개농장 구조 현장에서 본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청주=박시몬 기자


줄리엣은 2020년 충남 홍성군의 한 개농장 한편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다 구조(왼쪽 사진)돼 다니엘 헤니에게 입양됐다. 헤니가 2020년 8월 18일 줄리엣을 입양한 당일 촬영한 모습.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 제공


헤니는 한국 개농장에서 구조한
반려견 망고, 로스코, 줄리엣
을 입양한 바 있다. 망고와 로스코는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줄리엣과 지내고 있다. 그는 "수시로 한국을 오가는데 개들을 위한 일을 하러 간다고 하면 줄리엣이 이해를 해주는 편이지만, 광고 등으로 간다고 하면 가지 말라고 한다"며 웃었다.

헤니는
줄리엣의 놀라운 변화
도 소개했다. 그는 "줄리엣이 지난해 말 미국에서
도우미견 자격증
을 땄다"며 "아내와 함께 매주 줄리엣과 초등학교에 가서 학생들과 책을 읽는 수업에 참여한다"고 전했다. 학생들이 줄리엣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자신감을 얻게 되는 효과가 있어서다.

헤니는 "줄리엣이 내 인생을 바꿨다"며 "줄리엣이 매우 자랑스럽다. 나는 자랑스러운 아빠"라고 강조했다.

"괜찮아" 다독이며 한 마리씩 조심스레 구조

8일 충북 청주시 개농장에서 배우 다니엘 헤니와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 관계자들이 구조한 개를 출국을 위해 이동장으로 옮기고 있다. 청주=박시몬 기자


"괜찮을 거야. 집에 가자." 이날도 헤니는
구조 전 농장 속 유일한 핏불에게 말을 건네며 안심
시켰다. 구조 작업은 조심스럽게 이어졌다.
이상경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 캠페인 팀장
이 뜬장 안으로 들어가 개들을 다독이며 안심시킨 뒤 목줄을 걸고 안아 들어 이동장(크레이트)으로 옮겼다. 헤니도 뜬장 속 물과 사료 그릇을 치운 뒤 개들을 이동장으로 옮기고, 차량 탑승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참여했다.

이날 출국하지 못한
산모견과 출국 연령이 되지 않은 강아지 16마리는 올해 안 추가로 미국으로 이동
해 입양 가족을 찾게 된다. 이번 구조는 불법 개농장 적발 뒤 정부와 청주시, 단체가 손을 맞잡으면서 가능했다는 게 단체 측이 설명이다.

8일 충북 청주시 한 개농장에서 개를 도살한 뒤 걸었던 갈고리들이 그대로 걸려 있다. 바로 옆에는 개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청주=박시몬 기자


개농장 안에 있던 도축 시설에는 칼집과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바로 옆에 개들을 길렀던 뜬장이 배치돼 개들은 다른 개들이 죽임을 당하는 걸 그대로 지켜봐야 했다. 청주=고은경 기자


단체는 2015년부터 개 농장주의 전업을 지원하며 식용으로 길러지던 개 2,700마리 이상을 구조했지만
이번에 전업 지원은 제외
했다. 지난해 8월부터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개식용 종식법) 시행
으로 폐업 농가에 대해 정부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어서다. 이 농장은 가축분뇨배출시설 미신고로 마리당 지원되는 폐업이행촉진지원금은 받지 못하는 대신 시설물 잔존가액과 철거비는 지원받았다. 농장주는 인근 밭에서 고추 농장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헤니
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이곳에서 40년 사육과 도살이 이뤄지며 셀 수 없는 개들이 죽었다"며 "
67마리가 새 삶을 살 기회를 얻은 것은 기적
"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개식용이 금지됐지만
여전히 개농장에 개들이 남아 있다
"며 "이들이 남아 있는 한
끝까지 노력하겠다
"고 덧붙였다.

폐업한 농장이 키우던 15만1,000마리는 어디로

8일 충북 청주시 개농장에서 구조를 앞둔 개들이 뜬장에 앉아 있다. 왼쪽 두 마리는 구루병을 앓고 있어 치료가 시급한 상황이다. 청주=박시몬 기자


이혜원(왼쪽) 한국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 미디어 팀장과 이상경 캠페인 팀장이 식용으로 길러지던 개 진저와 시나몬을 뜬장 안에서 꺼내고 있다.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 제공


농림축산식품부
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전국적으로 신고된 농장은 1,357곳. 사육 중인 개는 46만6,000마리였다. 이 가운데 올해 2월 6일 기준 폐업 농장은 전체의 40%인 623곳으로 집계됐다. 이들 농장에서 키우던 개는 지난해 8월 기준 15만1,000마리였다. 농장주들의 신고에 기반한 것이라 실제 얼마나 개들이 줄었는지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계산대로라면
금도 31만5,000마리가 남아 있는 것
이다. 농식품부는 올해까지 70%까지 폐업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농장이 폐업하면서 사육됐던 개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데 있다. 폐업한 농장들이 키우던
15만1,000마리 중 일부는 국내외로 입양됐지만 대부분은 도살돼 고기로 유통되거나, 아직 폐업하지 않은 개농장으로 넘겨졌을 것
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이른바 '잔여견'에 대해서는 정부나 동물단체들이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충북 청주시 개농장에서 구조를 앞둔 개들이 철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개들은 대부분 세 살 이하 어린 편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았다.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 제공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 관계자들이 8일 충북 청주시 개농장에서 구조된 개들을 인천공항으로 옮기기 위해 차에 싣고 있다. 청주=박시몬 기자


법이 정한 폐업 기한인 2027년 2월에 폐업하겠다고 신고한 농장은 270여 곳이며 이곳에서 사육 중인 개는 지난해 8월 기준 10만 마리다. 하지만 먼저 폐업한 농장 개들이 흘러 들어갈 경우 그 수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손경문 농식품부 개식용종식추진단장
은 "2027년 2월 개식용 종식을 위해 동물의 추가 재생산이 되지 않도록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폐업 속도와 유통 상황 등을 고려하면 잔여견에 대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 동물 단체가 남은 개들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미금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 대표
는 "누구라도 섣불리 나서기 어려운 문제임은 맞다"면서도 "지금이라도 동물 단체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냉정하고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8일 충북 청주시 개농장의 뜬장 밑에 오물이 쌓여 있다. 이곳은 40년간 불법 개 사육과 도살을 해오다 지난 2월 시민의 신고로 적발돼 개들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문을 닫게 됐다. 청주=박시몬 기자


이 팀장도 "아직 개식용 산업이 끝난 게 아니라 죽는 개들이 남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정부는 법이 잘 이행될 수 있도록 꼼꼼히 점검하고, 정부와 단체는 입양캠페인 등을 펼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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