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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오전 세브란스병원 중입자치료센터에서 이종윤씨가 치료 준비 중이다. 의료진이 치료에 앞서 이씨의 자세를 잡아주고 있다. 장진영 기자
“후~하~. 후~하~.”
지난달 28일 오전 세브란스병원 중입자치료센터. 췌장암 투병 중인 이종윤(75)씨의 다섯번째 치료가 진행됐다. 이씨의 숨 쉬는 소리가 치료실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커다란 원통 모양의 치료기 가운데 환자가 누우면 중입자치료기가 빙빙 돌며 치료한다. 췌장암ㆍ간암ㆍ폐암 등 환자가 숨 쉴 때마다 움직이는 암에 이런 회전형 치료기를 쓴다. 전립선암 등엔 고정형 치료기를 쓴다.

중입자치료는 탄소 이온을 빛의 속도에 가까울만큼 가속시켜 만든 에너지빔을 암세포에 정확히 쏘아 없애는 방식이다. 초당 10억개의 탄소 이온이 환자의 몸을 통과하는데, 정상 조직은 건드리지 않고 암세포에 도달하는 순간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기존 양성자치료와 같은 원리지만, 그보다 더 무거운 입자를 사용해 효과가 훨씬 높다.

금웅섭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장(방사선종양학과)은 “환자가 숨을 내쉬는 순간 미리 설정한 좌표에 정밀하게 빔이 조사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씨의 몸에 빔이 쏘아질 때마다 “삐리리” 하는 신호음이 울렸다. 환자는 가만히 누워 규칙적으로 숨을 쉬면 된다. 실제 치료는 2분 가량 걸리는데, 치료에 앞서 환자의 호흡 리듬을 가다듬는데 7~8분 걸렸다.

29일 오전 세브란스병원 중입자치료센터에서 금웅섭 센터장(사진 오른쪽 서있는 사람)이 이종윤씨의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환자의 호흡 주기에 맞춰 숨을 내쉬어 몸이 완전히 정지된 상태에 중입자 에너지빔이 조사된다. 장진영 기자.
치료실에 들어간 지 10여분 만에 걸어나온 이씨는 “벌써 치료 끝이라니, 매번 신기하다. (치료시간보다)옷 갈아입는데 더 오래 걸릴만큼 빨리 끝난다”며 웃었다. “아프지 않냐”고 묻는 기자에게 그는 “피부에 뭔가 닿는 느낌 조차 없다”라고 답했다.

지난해 10월 췌장암 진단을 받은 이씨는 수술을 받았으나 올 3월 암이 재발했다. 항암치료를 받던 중 아내의 권유로 중입자치료를 선택했다고 한다. 이씨는 “항암제를 쓸 때마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구토 증상 등으로 고생했다”며 “일본 병원으로 가려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췌장암 중입자 치료를 한다고 해 찾아왔다”라고 밝혔다. 지난달 9일부터 이달 13일까지 총 12회에 걸쳐 치료를 받기로 했다.

세브란스병원은 2023년 4월 국내 최초, 세계 16번째로 중입자치료를 시작했다. 2년간 680명이 치료를 받았다. 중입자 치료는 이론상 혈액암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형암에 적용할 수 있다. 세브란스병원에선 초창기 전립선암을 시작으로, 지난해 5월부터 췌장암ㆍ간암ㆍ폐암 치료를 했다. 올해 하반기 두경부암ㆍ골육종으로 범위를 넓힐 예정이다.

수술, 항암제, 방사선 등 기존 치료로 어려운 난치성 암인 경우, 고령이나 심폐 기능 저하로 환자의 몸이 수술을 견디기 어려운 경우 유용하다. 난치성 암 환자가 치료 뒤 안정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사례가 쌓이고 있다. 40대 췌장암 환자 A씨, 수술 뒤 재발한 70대 간암 환자 B씨는 중입자치료 후 1년 가까이 재발 없이 관찰 중이라고 한다.

전립선암은 수술로도 치료가 되는 편이지만, 요실금 등 후유증을 우려한 환자들은 중입자치료를 택한다. 금 센터장은 “수술이나 항암을 견디기 힘든 상태의 환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생긴 것”이라며 “기존 치료와 병행해 효과를 높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가장 큰 장점은 환자가 편안하다는 점이다. 금 센터장은 “환자들이 첫 치료 때 ‘지금 치료받고 있는거냐’고 묻곤한다”라고 말했다. 치료 부위에 발적이 생기거나 복통, 설사 같은 이상반응이 생기기도 하나 기존 방사선 치료에 비해 가벼운 편이다.

단점은 비싼 치료 비용(6000만~7000만원)이다. 거대한 가속기·치료기 시설을 짓는데 3000억원 넘게 들었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전액 환자 부담이다. 일본·독일 등 10개국에서만 활용되다보니 양성자 치료 등과 비교하면 아직 임상 자료가 많이 쌓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의료계에선 비용 대비 치료 효과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치료 가능한 환자에 과잉 진료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웅섭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장이 29일 오전 세브란스병원 중입자치료센터 회전형 치료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장진영 기자

일본에선 20년 넘게 중입자치료를 이어오고 있다. 일본 지바 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NIRS)가 국제 학술지 랜싯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20년간 전립선암, 간암, 폐암 등에 8000명에 치료한 결과 5년 국소 제어율(재발없이 암이 억제된 비율)은 88%, 5년 전체 생존율은 86%에 달했다.

국내에선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이 각각 2027년, 2031년 가동 목표로 도입을 추진 중이다. 미국에선 아직까진 양성자치료가 대세다. 메이요 클리닉이 플로리다에 북미 최초의 중입자치료센터를 짓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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