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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박혜진 '퍼니 사이코 픽션'



게티이미지뱅크


사이코
. 괴짜, 기인, 미치광이의 동의어다. 속된 말로는 또라이. 한껏 부정적 의미였던 사이코라는 말의 쓰임이 어느샌가 변했다.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이 인터넷 밈을 넘어 일상에서 회자될 정도로 광기는 "보편적으로 사람을 설명해줄 수 있는 키워드"가 됐다. 박혜진(39) 문학평론가가 주목한 대목. "주변을 돌아보면 모두가 은은하게 광기를 풍기거나 잔잔하게 미쳐있다!"

픽션.
너도 나도, 알고 보면 다 아픈 사람들끼리 상처를 주고받는다. 사람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박 평론가는 소설로부터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문학은 인간을 탐구하는 장르이고, 소설이야말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치열하게 저마다 답을 내왔던 인간문제연구소"라는 것.

이참에 다채로운 사이코들이 등장하는 소설을 한데 모아봤다. '82년생 김지영', '한국이 싫어서' 등을 발굴해낸 민음사 편집자이기도 한 그는 소설을 읽고 평하는 게 업이다. 특히 오래된 한국소설 읽기를 즐긴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발표된 단편소설 중 7편을 엄선해 묶고, 해설을 덧붙였다. 재미는 기본. 이른바
'퍼니 사이코 픽션'
이다.

퍼니 사이코 픽션·박혜진 엮음·클레이하우스 발행·292쪽·1만7,000원


'찐 광기' 뒤틀린 인물들



최근 출간된 '퍼니 사이코 픽션'의 문을 여는 작품은 송경아 작가의 '정열'이다. 1998년 출간된 소설집 '엘리베이터'(문학동네)의 수록작. 매사 동요하지 않는 남자 성준과의 나른한 관계에서 정열을 부르짖는 여자친구가 나온다. 여자는 급기야 정열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며 불길이 돼 타버린다. "나한테 몰입해 줘" "성준씨를 태워버리고 싶어" "성준씨에게는 정열이라는 게 없단 말이지?"라며 성준을 내모는 부분은 읽는 것만도 숨이 차다. 광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 소설의 사이코가 단지 이 여자뿐일까.

박 평론가는 나르시시스트 성준에게도 주목한다. 남자의 나른함은 "병적인 자기애"에서 기인하기 때문. 성준은 "끝내 자신에게만 집중했지 자기라는 담장 너머 연인에게로 다가가는 데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요구가 다 귀찮기만" 하다. 여자가 불길로 변하기 전, 남자에게는 상황을 바꿀 기회가 여러 번 주어졌지만 그는 "반응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타인에 대한 몰이해 이상의 무관심, 퇴행적 자기애로 똘똘 뭉쳐 분노를 유발하는 나르시시스트를 적잖게 만나게 된다. 자, 여자와 성준, 누가 더 병들었을까.

박혜진 문학평론가. 현대문학 제공


이상한 시대에는 이상한 사람들 있다



또 다른 수록작인 박성원 작가의 '댈러웨이의 창'(2000)에는 따로 암실까지 두고 사진 찍는 취미가 있는 '나'가 등장한다. 2층에 세입자를 들였는데 공교롭게 세입자 역시 사진을 찍는다. '나'는 세입자로부터 전설로 추앙받는 사진작가 '댈러웨이'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된다. 댈러웨이에 대해 공부하던 '나'는 곧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댈러웨이에 대해 하는 말이 2층 남자의 말과 똑같았던 것. 알고 보니 댈러웨이는 세입자가 꾸며낸 가상의 인물이었다.

책에 수록된 작품 중 가장 평범한 축에 든다. 그럼에도 박 평론가는 "이 소설을 읽는 시간이 가장 그로테스크한 악몽 같았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어떤 시대가 사이코적"이라는 점에서다. "가짜를 진짜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사람들, 진실이 아니라 진실을 닮은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들이라는 징후적 표현들이 (오늘날)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 됐기 때문"이다.

한 세대 건너 우리 앞에 당도한 피폐소설 7편

게티이미지뱅크


평생 고기만 먹다 갑자기 출가하겠다며 채식주의자가 된 언니('식성'·김이태), 나비를 먹는 여자를 보았다고 주장하곤 자기가 나비 떼를 먹고 기도가 막혀 죽은 초병('나비'·안성호), 색광 정신병자로 미쳐가는 외과의사('마녀물고기'·이평재), 직장 동료를 장롱 속에 가두는 바람에 정신병원에 온 가구 디자이너('상자 속으로 사라진 사나이'·채영주), 뜬금없는 분노에 사로잡히곤 하는 남자('그녀는 죽지 않았어'·이응준) 등 각양각색의 사이코들이 나온다.

세기말 쓰여진 이 소설들은 한 세대가 지난 오늘날 완결성을 획득한다. 당대에는 현실과 거리를 둔 징후적 상징으로 읽히는 데 그쳤을 테지만 오늘의 눈으로 바라볼 때는 "더할 나위 없는 현실의 재현"으로 "다시, 새롭게" 읽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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