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7월 패키지딜'···美, 원화절상 압박 본격화하나
구조적 약점 파고드는 전략가 분석
韓, 작년 환율 방어에만 115억弗
'조작국' 지정해 압박 강화 가능성
전문가 "인위적 절하 없다 강조를"
구조적 약점 파고드는 전략가 분석
韓, 작년 환율 방어에만 115억弗
'조작국' 지정해 압박 강화 가능성
전문가 "인위적 절하 없다 강조를"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23일(현지 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금융연구소(IIF)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서울경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헤지펀드인 ‘키스퀘어그룹’의 창립자이자 거시 분석 투자가로 35년 이상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베선트 장관은 특히 1992년 조지 소로스에게 영국 파운드화 공격 아이디어를 제시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소로스는 당시 불과 몇 주 만에 10억 달러(약 1조 500억 원)의 수익을 거두며 헤지펀드 업계의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국내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베선트 장관은 단기 투기보다 긴 호흡으로 구조적 약점을 포착해 들어가는 전략가”라며 “1992년 영국 통화 체제의 취약한 고리를 짚어 낸 것처럼 이번 협상에서도 한국의 환율 구조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갖고 접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4일(현지 시간) 종료된 한미 ‘2+2 통상 협의’에서 환율 문제가 공식 의제로 채택되면서 미국이 우리 정부에 의도적 원화 절상(원·달러 환율 하락)이나 외환시장 개입 축소 등을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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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 통화정책도 의제 포함 시켜
투자 등 4대 분야 좁혀 실무논의
트럼프 "방위비 별도 트랙" 언급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4월 2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주미대사관에서 한-미 2+2 통상협의 관련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기획재정부
한국과 미국이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 마감일인 7월 8일까지 관세 및 경제 협력 방안에 대한 ‘패키지 합의’를 추진하기로 했다. 미국의 관세 부과 폐지부터 양국 간 조선·에너지 협력, 환율 정책 등 주요 현안을 아우르는 일괄 타결을 시도하되 최종 협상은 한국의 차기 대통령 선거(6월 3일) 이후에 마무리 짓는 방식이다. 하지만 미국의 요청에 따라 한국의 환율 문제가 공식 의제에 포함되면서 우리의 환율 주권이 미국 측의 협상 카드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주미대사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미국의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진행한 2+2 통상 협의에서 이같이 합의했다고 밝혔다.
최 경제부총리는 “양측이 7월까지 합의안을 내놓는 패키지 딜에 합의했다”며 “관세·비관세 조치, 경제안보, 투자 협력, 환율 정책 등 4대 분야를 중심으로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방위비와 미국의 대(對)중국 제재 동참 등은 이날 협상 의제에서는 제외됐다.
하지만 환율이 향후 협상의 공식 의제에 포함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양자 간 무역 협상에서 환율이 단독 의제로 협상 테이블 위에 오르는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환율이 시장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환율을 특정 목표 아래 관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환율은 당초 우리 측 논의 안건에 없었지만 베선트 장관의 요구로 막판에 의제로 포함됐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향후 미국 측의 원화 절상(원·달러 환율 인하) 압박이 본격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공개된 시사 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한국에 군사 비용으로 수십억 달러를 지불하고 있다”며 “(다른 나라가) 우리를 어떻게 대우하는지에 따라 관세를 설정할 것이다. 군사 비용은 별도로 처리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사흘 전인 22일 진행됐다. 방위비가 이번 협상 의제에서는 빠졌지만 미국이 언제든지 꺼내 들 수 있는 압박 카드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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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선트, 과거 파운드화 공매도 주도
구조적 약점 파고드는 전략가 분석
韓, 작년 환율 방어에만 115억弗
미국은 과거부터 환율조작 문제를 비관세장벽의 하나로 규정해 각종 협상에서 지렛대로 활용해왔다.
스위스와 베트남이 과거 미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대표적 국가다. 두 나라는 2020년 미 재무부로부터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바 있다. 스위스는 스위스 프랑의 절상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점, 베트남은 대미 무역흑자액이 급격히 늘면서 동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절하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환율조작국에 포함됐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 기업의 투자나 미 연방정부 조달시장의 진입이 제한되고 통상 압력을 받게 된다. 당시 스위스는 환시장 개입 규모와 빈도를 축소하기로 합의한 뒤 조작국에서 해제될 수 있었다. 베트남 역시 관리변동환율제는 유지하되 변동 목표 밴드를 넓히는 방식으로 미국의 제재에 백기를 들었다.
전문가들은 향후 한국도 이 같은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 재무부는 환율조작국을 지정할 때 △지난 1년간 150억 달러 초과의 현저한 대미 무역흑자를 올렸는지 △국내총생산(GDP)의 3%를 초과하는 상당한 경상수지 흑자를 보였는지 △8개월간 GDP의 2%를 초과하는 외환을 지속적으로 순매수했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우리나라는 3가지 중 달러 순매수를 통한 외환시장 개입 요건은 충족하지 않아 아직은 환율 관찰대상국으로만 지정돼 있는 상태다. 우리나라 외환 당국은 지난해 환율 방어를 위해 115억 5800만 달러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지난해부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올해까지 원·달러 환율이 상승세(원화 가치 하락)를 나타내고 있어 미국이 지목하는 고의적 화폐 가치 절하 국가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도리어 환시장에서 달러를 내다파는 방식으로 원화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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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국' 지정해 압박 강화 가능성
전문가 "인위적 절하 없다 강조를"
하지만 미국 측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원화가 다른 국가 통화 대비 유독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들어 향후 통상 협상에서 환율조작국 카드로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후 미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2.41% 절하됐다. 엔화(7.61%), 유로화(5.62%), 파운드화(3.11%) 등 주요국 통화가 달러화 대비 절상된 것과 대조적이다. 또 우리나라는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해당 분기로부터 3개월 지나서 공개하는데 미국 측이 이러한 늑장 공시가 불투명하다는 점을 걸고 넘어질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원화 약세가 당국의 인위적인 조치가 아니었음을 충분히 피력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외환 당국의 시장 개입은 과도한 평가 절하에 따른 시장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점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과거 플라자합의와 같은 인위적 환율 절상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사이 외환시장 개방의 폭이 크게 확대됐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국이 일본과의 협상에서는 주요 7개국(G7) 차원의 ‘외환시장 불개입 원칙’을 다시 꺼낸 만큼 상대국을 향한 환율 정책 압박 강도가 예상보다 약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현재로서는 미국이 외환시장에 직접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메시지는 없다고 봐야 한다”면서 “다만 미국이 달러 강세를 제한하는 각종 조치들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