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아 수 늘었다지만…"육아에 다양한 사회적 장애물 있어"
불편한 대중교통·확산하는 노키즈존·치솟는 사교육비 등
"임산부와 출산을 진심으로 환영·응원하는 게 우선 과제"
불편한 대중교통·확산하는 노키즈존·치솟는 사교육비 등
"임산부와 출산을 진심으로 환영·응원하는 게 우선 과제"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서울=연합뉴스) 김유진 인턴기자 = 지난 7일 오후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의 한 출구에서 한 남성이 유모차를 들고 계단을 오르려 하고 있다. 2025.4.25
(서울=연합뉴스) 김유진 인턴기자 = 지난 7일 오후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의 한 출구에서 한 남성이 유모차를 들고 계단을 오르려 하고 있다. 2025.4.25
(서울=연합뉴스) 김유진 인턴기자 = 지난 7일 오후 지하철 광화문역.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외출에 나선 한 부부가 유모차를 끌고 출구를 향했다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엘리베이터는 없고 계단만 끝없이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엄마가 유모차에 타고 있던 작은 아이를 안아 들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는 걸었고, 그 뒤를 아빠가 유모차를 들고 따랐다.
엄마 한유정(36) 씨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엘리베이터가 없을 줄은 몰랐다"며 "계단이 꽤 많았는데 (남편 없이) 혼자였으면 난감했을 것 같다"고 멋쩍게 웃었다.
같은 날 지하철 1호선 열차 안. 칸마다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은 거의 예외 없이 중년 여성과 남성이 앉아 있었다. '초기 임산부도 앉을 수 있도록 임산부 배려석을 양보해달라'는 안내 방송이 무색했다.
혼인 증가 등 영향으로 올해 2월 출생아 수가 11년 만에 증가세로 전환했지만,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웃돌면서 한국 인구는 2019년 11월 이후 64개월째 자연 감소하고 있다.
지난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인구동향'을 보면 2월 출생아는 2만35명으로 1년 전보다 622명(3.2%) 늘었다. 그러나 2월 합계출산율은 0.82명에 그쳤다. 부부가 평생 낳는 아이가 1명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불편한 대중교통·확산하는 노키즈존·치솟는 사교육비…. 저출산을 걱정한다면서도 정작 아이를 낳아 키우는 데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산부 배려석? 그냥 앉지 뭐
(서울=연합뉴스) 김유진 인턴기자 = 지난 7일 오후 서울 지하철 내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에 임산부가 아닌 한 중년 여성이 앉아 있다. 2025.4.25
(서울=연합뉴스) 김유진 인턴기자 = 지난 7일 오후 서울 지하철 내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에 임산부가 아닌 한 중년 여성이 앉아 있다. 2025.4.25
'배려 없는' 임산부 배려석…산부인과도 감소
지난 15일 지하철 2호선에서 만난 임산부 배모(32) 씨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오늘도 배려석에 앉지 못했다"며 "임산부 배지를 달고 있어도 아예 못 본 척하거나 자는 척하면서 자리를 양보해 주지 않는 분들이 많다"고 하소연했다.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공유된다. 네이버 이용자 '배***'는 "괜히 비켜달라고 말했다가 칼부림이나 해코지라도 당할까 봐 무섭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임산부 배려석에 남자가 앉아 있는 경우도 왕왕 목격된다.
25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임산부 배려석과 관련해 들어온 민원 건수는 6천286건에 달하며, 올해는 3월까지 1천437건이 접수됐다.
서교공 관계자는 "비임산부의 착석으로 인한 안내 방송 요청 사례가 가장 많이 접수됐다"며 "임산부 배려석을 없애야 한다는 민원도 소수지만 들어온다. 또 임산부 배려석 착석을 두고 임산부와 일반 승객 간 약간의 다툼도 간혹 있다"고 밝혔다.
빈자리 없는 임산부 배려석
(서울=연합뉴스) 김유진 인턴기자 = 지난 8일 오후 서울 지하철 내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에 임산부가 아닌 남성들이 앉아 있다. 2025.4.25
(서울=연합뉴스) 김유진 인턴기자 = 지난 8일 오후 서울 지하철 내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에 임산부가 아닌 남성들이 앉아 있다. 2025.4.25
산부인과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특히 진료만 하고 분만은 하지 않는 산부인과가 증가 추세다.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박희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분만 의료기관은 425곳으로 2018년 555곳보다 130곳이나 줄었다.
또 전국 100병상 이상 종합병원 331곳 중 산부인과가 설치되지 않은 곳은 11.5%인 38곳이었다. 의료법상 100~300병상인 종합병원은 내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중 3개 진료과목을 갖춰야 하는데, 산부인과를 기피하는 병원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아이는 안돼요
(서울=연합뉴스) 김유진 인턴기자 = 지난 15일 오후 서울 연남동의 한 카페 입구에 노키즈존을 알리는 안내 스티커가 붙어 있다. 2025.4.25
(서울=연합뉴스) 김유진 인턴기자 = 지난 15일 오후 서울 연남동의 한 카페 입구에 노키즈존을 알리는 안내 스티커가 붙어 있다. 2025.4.25
"아이는 입장 불가"…유모차와 보행도 힘들어
아이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노키즈존'도 확산 추세다. '노 키즈'(No Kids) 스티커를 붙인 마포구의 A 카페 관계자는 "내부 계단에서 아이가 다치는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그 이후부터 약 10년간 노키즈존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며 "카페에서 아이를 방치하는 부모들이 너무 많다. 그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고자 운영 방식을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노키즈존으로 운영되는 성동구의 B카페 관계자는 "카페가 2층에 있다 보니 구조상 계단이나 계단 난간 등이 어린아이들에겐 위험할 수 있겠다고 판단해 출입을 막게 됐다"고 밝혔다.
유모차를 탄 아이와 함께 연남동 나들이에 나선 김지민(37) 씨는 "요즘 어딜 가든 노키즈존인 곳이 많아서 외출 전에 미리 알아보고 나온다"며 "한번은 노키즈존인지 모르고 갔다가 입장 저지를 당한 적이 있었다. 너무 억울했고, 우리나라에서 아이 키우기 참 힘들단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저희 카페는 '노키즈존' 입니다
(서울=연합뉴스) 김유진 인턴기자 = 지난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 입구에 노키즈존을 알리는 안내 스티커가 붙어 있다. 2025.4.25
(서울=연합뉴스) 김유진 인턴기자 = 지난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 입구에 노키즈존을 알리는 안내 스티커가 붙어 있다. 2025.4.25
온라인에는 노키즈존 캠핑장 관련 후기나 추천 글이 많이 올라와 있다.
네이버카페에 올라온 '슬슬 노키즈존 캠핑장 검색'이라는 글은 "오랜만에 남편과 단둘이 캠핑을 다녀왔는데 앞으론 노키즈존 캠핑장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캠핑하러 도착한 날엔 텐트 옆자리 아기가 계속 울어댔고 다음 날엔 이른 아침부터 뒷자리에 있던 초등학생들이 장난치는 소리에 잠에서 깨버렸다"는 내용이다.
홀로 캠핑을 즐기는 이효정(52) 씨는 "캠핑장에서 아이들이 뛰어놀면 시끄럽기 때문에 노키즈존 캠핑장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노키즈존 캠핑장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모차 탄 아이와 함께 이동해요
(서울=연합뉴스) 김유진 인턴기자 = 지난 7일 오후 서울 지하철 3호선 옥수역에서 한 여성이 유모차를 탄 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2025.4.25
(서울=연합뉴스) 김유진 인턴기자 = 지난 7일 오후 서울 지하철 3호선 옥수역에서 한 여성이 유모차를 탄 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2025.4.25
유모차를 끌고 이동하는 것도 곳곳에서 벽에 부딪힌다.
엘리베이터 없는 지하철과 건물, 식당은 물론이고 거리와 명소의 길이 울퉁불퉁하거나 턱이 있는 경우가 많아 유모차를 끌면서 진땀을 뺐다는 부모들의 경험담이 이어진다.
치솟는 사교육비…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
이런 가운데 치솟는 사교육비가 저출산의 가장 큰 이유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에는 '7세 고시'를 넘어 이제 막 기저귀를 뗀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입학시험인 이른바 '4세 고시'까지 등장했다.
'유아기부터 선행학습이 필수'라는 인식 속에 부모는 물론이고 조부모까지 달려들어 아이의 비싼 사교육비를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지난달 교육부가 발표한 '2024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6세 미만 미취학 아동의 1인당 사교육비는 월평균 30만원을 훌쩍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유아 영어학원의 월평균 비용은 154만5천원이었다. 소득 규모별 사교육비 격차는 7배에 육박했다.
또 통계청이 지난해 3월 발표한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약 27조1천억원으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중 초등학교 사교육비 총액이 12조4천억원을 차지했다.
서울 강남구 한 영어유치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보육시설에서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아동 학대 사건도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곳에 대한 고민을 키운다.
지난 1월 수원의 한 어린이집 학부모 10명이 40대 보육교사와 20대 교사를 아동복지법 위반(아동 학대) 혐의로, 원장은 아동 학대 방조 혐의로 고소한 일이 벌어지는 등 어린이집 학대 사건이 심심치 않게 이어지고 있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저출산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아이 키우기 힘든지를 보여주는 총체적 지표"라고 짚었다.
이어 "출산율은 그 사회 구성원들이 얼마나 절박함을 느끼느냐에 대한 바로미터로 해석되기도 한다"며 "앞서 지적된 문제들이 모두 출산을 더욱 공포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함 교수는 여성의 출산 기피 현상에 대해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장애물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임산부와 출산을 사회 전체가 진심으로 환영하고 응원하는 분위기 조성이 우선적인 과제"이며 "문화·의식·제도 등 다방면에서의 지속적인 사회적 노력과 변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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