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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사진=연합뉴스


한국 반도체 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SK하이닉스에 수년간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 장비를 독점적으로 공급해 온 한미반도체와 SK하이닉스 간 8년 동맹이 흔들리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그동안 시장 주류이자 HBM 5세대인 ‘HBM3E 12단’ 제조 공정에 한미반도체 장비를 전량 사용해왔으나 최근 한화세미텍을 신규 협력사로 삼고 공급망 다변화에 나섰다.

한미반도체는 이에 반발해 SK하이닉스 HBM 생산 라인에 배치한 자사 유지보수(CS) 인력을 철수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한미반도체의 행보를 ‘슈퍼 을(乙)의 반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번 갈등이 반도체 장비 생태계 재편의 신호탄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미반도체, 독점 깨지자 ‘폭발’


한미반도체와 SK하이닉스 간의 갈등은 HBM 제조에 필수적인 TC본더 장비를 둘러싼 공급 문제로 촉발됐다. TC본더는 인공지능(AI) 반도체용 HBM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핵심 장비다.

HBM은 D램을 여러 개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만드는데 D램에 열과 압력을 가해 고정하는 공정에 TC본더가 쓰인다. 한미반도체는 2017년부터 HBM 시장의 글로벌 1위인 SK하이닉스에 TC본더를 단독 공급하며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SK하이닉스가 최근 싱가포르의 ASMPT, 후발주자인 한화세미텍 등과의 계약을 통해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본격화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특히 한미반도체가 한화세미텍과 특허 침해 의혹을 두고 법정공방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과 지난 3월 420억원 규모의 TC본더 수주 계약을 체결하며 독점 지위가 깨지자 한미반도체의 불만이 폭발했다.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 'HBM3E'. 사진=연합뉴스


한미반도체는 8년간 동결해온 TC본더 장비 가격을 28% 인상하고 무상으로 제공하던 CS 서비스 중단을 통보하고 SK하이닉스 이천공장에 파견했던 CS 엔지니어 전원을 철수시키는 초강수를 뒀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에 발주한 TC본더 장비 가격이 한미반도체보다 높아 한미반도체 측의 감정이 상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에 타 고객사보다 30% 가까이 할인된 가격에 TC본더를 공급해왔다.

한미반도체는 TC본더를 SK하이닉스에 1대당 20억원 후반에 납품했으나 마이크론에는 30억원대, 중국 기업에는 40억원대에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세미텍 장비는 대당 35억원으로 추정되며 한미반도체는 25억원 수준으로 전해진다.

한미반도체는 한화세미텍을 상대로 기술 유출 및 특허침해를 주장하며 법적 대응에도 나선 상태다. 2021년 한화세미텍으로 이직한 전 직원을 상대로 제기한 부정경쟁행위금지 소송에서는 1·2심에서 승소했고 지난해 12월 법무법인 세종을 선임해 한화세미텍을 특허침해 혐의로 제소했다.

한화세미텍은 “특허침해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선임해 대응하고 있다. 소송 결과가 향후 한미반도체와 SK하이닉스 간 갈등에 변수가 될 수도 있다. 한화세미텍은 최근 자사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를 중단하라며 한미반도체 임원을 상대로 내용증명도 발송했다.

한미반도체 4공장 전경. 사진=한미반도체


‘脫한미’ 시동 건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공급망 안정화와 HBM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공급사 다변화를 준비해왔다. HBM3E 12단 양산을 앞두고 SK하이닉스는 TC본더 장비 수급 안정화를 위해 ‘듀얼 벤더’ 전략으로 전환했다. 싱가포르 ASMPT와 한화세미텍 등 신규 업체에도 TC본더를 맡기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 장비 전량을 한 업체로부터 단독으로 공급받는 ‘솔벤더’ 체제는 품질이나 생산능력 부족 등 문제가 발생할 경우 리스크가 있고 가격 협상력 측면에서도 불리하다. 주력 공급업체의 기술 업그레이드 실패나 오류 발생 시에도 즉각 대체가 가능한 백업 벤더가 필수적이다. 벤더 간 기술 경쟁으로 성능과 수율 개선을 유도할 수도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장비 생산업체 한 곳과 독점 계약을 하면 가격 협상에서 불리할 수 있는 만큼 공급선을 다변화해 업체들 간 품질·가격 경쟁 구도를 만들어 리스크를 낮추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한미반도체 측이 가격 인상과 엔지니어 철수 카드까지 꺼내들었지만 오히려 이번 갈등을 계기로 SK하이닉스의 공급사 다변화 전략은 더 확고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관계자는 “TC본더 장비는 칩 메이커와 장비업체가 밀접한 협업을 통해 수율을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슈퍼을’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며 “아직 SK하이닉스 장비 이원화가 안 된 상황이어서 기존에 쓰던 한미반도체 장비를 쓰기 위해 한미 측에 먼저 손을 내밀 수밖에 없지만 이원화가 완료되고 대체재가 생기면 상황이 바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화세미텍의 TC본더 'SFM5-Expert'. 사진=한화세미텍


한화세미텍, 한미 대체할까


한화세미텍의 전신은 삼성테크윈이다. 삼성으로부터 한화가 인수한 업체다. 지난해 상반기 SK하이닉스에 테스트용 장비를 제공해 지속적으로 검증을 진행해오다가 올해 3월 SK하이닉스의 퀄테스트를 최종 통과하고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갈등 구도에서 한화세미텍의 기술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TC본더 시장 1위인 한미반도체의 독주를 깨뜨리고 SK하이닉스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1989년 설립된 한화세미텍은 국내 최초로 칩마운터를 개발하는 등 반도체 장비, 공작기계, 산업용 설비 등을 제조하고 있다.

한화비전의 자회사로 지난 2월 한화정밀기계에서 한화세미텍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3남인 김동선 부사장이 미래비전총괄로 합류해 직접 사업 전반을 챙기고 있다. 보통 새로운 장비를 들일 때 검증을 위해 기존보다 더 엄격한 테스트를 주기적으로 거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화세미텍은 SK하이닉스의 강화된 퀄테스트를 통과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굳이 기존보다 더 높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신규 업체를 선정한 데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이라며 “향후 소송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 외에 또 다른 대체재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닌 상황”이라고 말했다.

‘10년 전 앙금’ 삼성과 손잡을 가능성은


일각에서는 한미반도체가 삼성전자와 다시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미반도체가 2011년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를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양사의 관계는 사실상 10년 넘게 끊겨 있었다.

최근 한미반도체가 삼성전자와 TC본더 등 주요 제품 납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양사 협력 가능성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23년 한미반도체 창업자인 고(故) 곽노권 회장 별세 당시 삼성전자 임원들이 조문한 것으로 알려져 양사의 앙금은 해소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다만 한미반도체와 삼성전자의 협업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단시일 내에는 어렵다는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모두 웨이퍼 투 웨이퍼(W2W), 다이 투 웨이퍼(D2W) 기술을 사용한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을 개발 및 적용하고 있지만 한미반도체 TC본더 장비는 SK하이닉스 패키징 방식에 더 최적화돼 있어 삼성전자에 당장 장비를 납품하기에는 공정에 추가 커스터마이징이 필요하다.

이 작업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 업계는 양사가 다시 손을 잡는다면 향후 차세대 공정인 ‘하이브리드 본딩’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한미반도체가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번 SK하이닉스와 갈등이 향후 평판 리스크로 작용해 글로벌 기업들과의 수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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