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경찰국 지적 논문 게재]
시행령 우회하고… 공청회 등 축소
이상민 전 장관 속전속결 추진에도
당사자 경찰, 눈치 보며 이견 안 내
시행령 우회하고… 공청회 등 축소
이상민 전 장관 속전속결 추진에도
당사자 경찰, 눈치 보며 이견 안 내
경찰 로고.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찰대 부설기관인 치안정책연구소가 최근 발행한 학술지에 '윤석열 정부의 경찰국 설치 과정과 결과'를 비판하는 논문이 게재됐다. 경찰의 중·장기 정책 수립을 주도하는 치안정책연구소가 이 논문을 실으면서, 6·3 대선을 앞두고 경찰 내부에서도 '경찰국 폐지' 관련 논의가 본격화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24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치안정책연구소 학술지(제39권 제1호)에 이은애 경기북부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총경)이 쓴 '행정안전부 경찰제도개선 경과에 관한 소고: 2022년 경찰국 설립 과정 당시의 문제점' 논문이 실렸다. 한국일보가 논문을 입수해 살펴보니, 이 과장은 '경찰국 신설' 논의 당시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이 과장은 수사와 기소 분리 등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를 다루는 경찰청 수사구조개혁팀장 출신으로 당시 경찰국 신설에 앞장서 반대했다.
이상민(오른쪽)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전 경찰청장이 2023년 12월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경찰 치안역량 및 책임성 강화를 위한 조직 및 인사제도 개선 방안 발표를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윤석열 정부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취임한 이상민 전 장관은 취임 첫날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방안'에 대한 논의를 꺼내 들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권력이 커졌으니, 그간 외청으로 존재했던 경찰청에 대한 지휘권을 행안부가 행사해야 한단 취지였다. 행안부가 경찰청을 지휘하거나, 경찰국을 설치하려면 경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입법 대신 시행령인 '경찰지휘규칙'을 제정해 경찰국을 출범시켰다. 지휘규칙에는 경찰청장이 행안부 장관에게 예산안을 보고하고 중요 정책을 승인받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총경 이상 경찰 고위 간부에 대한 임용 제청권 등도 새로 만들어진 경찰국 내 인사지원과에 부여됐다.
'시행령'이라는 우회로를 찾은 행안부는 통상 40일이 원칙인 입법예고 기간을 4일로 단축하는 등 경찰국 신설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였다. 이 과장은 이로 인해 외부위원 6명 주도로 회의가 4번밖에 열리지 않았고, 전문가 토론회나 공청회는 물론 당사자인 경찰청이나 국가경찰위원회와의 협의도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1991년 경찰법을 제정할 때 국회 논의에만 3년이 걸린 것과 달리 경찰국 설립과 지휘규칙 시행 기간은 고작 10주에 불과했다.
'행정안전부 경찰제도개선 경과에 관한 소고: 2022년 경찰국 설립 등을 중심으로' 논문 캡처
이 과장은 인사권자의 눈치를 본 경찰 수뇌부를 향한 쓴소리도 쏟아냈다. 입법예고 기간 중 관계기관은 의견을 낼 수 있는데도, '소극적 검토'에 그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 과장은 "경찰청은 공식적으로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 권한을 인정하면서, 최소한의 조문 변경 또는 법 기술적 사항에 대해서만 검토했다"며 "경찰청은 제출 의견이 일부 반영되자 차관회의와 국무회의에서 일절 이견을 내지 않았다"고 적었다. 아울러 행안부가 경찰국 설치 당시 자치경찰제, 경찰대학 개선, 국가경찰위원회 개선, 현장경찰 역량 강화 등 경찰 내 산적한 문제들을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과장은 "힘이 커진 경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한다는 명분으로 제도개선 논의를 시작했으나 법률적 한계에 봉착해 우회 전략을 택한 게 현재의 경찰국"이라며 "처음부터 특정한 목적성을 갖고 있었던 것 아니냐"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경찰국을 설치해 경찰의 독립성을 저해하려는 시도였을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