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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개교한 경기도 파주의 한민고등학교는 이사가 잦은 군인 자녀들에게 안정적인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입학생의 70%는 군인 자녀, 30%는 경기도민 일반 자녀로 구성됩니다. 국방부가 학교 설립 계획을 세우고, 정부 예산을 투입해 만든 학교입니다. 그런데 한민고는 국립도, 공립도 아닌 사립학교입니다. 홍두승 한민학원 이사장은 한민고를 이렇게 규정합니다.

"국방부가 만든 사립학교"


앞뒤가 안 맞는 말입니다. 국가가 세운 학교인데 사립학교라는 게 가능한 걸까요?

초·중등교육법은 설립 주체에 따라 학교 형태를 이렇게 구분합니다.

「국립학교: 국가가 설립·경영
공립학교: 지방자치단체가 설립·경영
사립학교: 법인이나 개인이 설립·경영」
- 초·중등교육법 제3조 -


한민고가 사립학교가 되기 위해선 법인이나 개인이 설립해 경영해야 합니다. 사립학교법에는 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규정이 나옵니다.

「학교법인은 그가 설치·경영하는 사립학교에 필요한 시설·설비와 그 학교의 경영에 필요한 재산을 갖추어야 한다」
- 사립학교법 제5조 -

「학교법인을 설립하려는 자는 일정한 재산을 출연하고… 교육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 사립학교법 제10조 -


위의 법 조항에 따르면, 한민고가 사립학교가 되려면 학교법인에 설립자가 일정한 재산을 투입해야 하고, 학교법인은 재산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한민고가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지 따져보겠습니다.

한민고 개교 1년 뒤인 2015년 12월, 감사원이 한민고 설립과 관련해 감사보고서를 내놓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한민고에 얼만큼의 돈이, 누구에 의해 투입됐는지 상세히 드러나 있습니다.

2015년 감사원 감사보고서

2011년 경기도교육청에 제출된 학교법인 설립허가 신청서의 소요자금 조달계획서. 이 계획서는 소요재원을 총 550억 원이라고 밝혔습니다. 550억 원은 어디서 지급됐을까요? 국고보조금으로 350억 원, 호국장학재단에서 200억 원이 지출됐습니다. 호국장학재단은 국방부가 군인 자녀 장학금 명목으로 설립한 기관입니다. 즉, 한민고 설립자금 550억 원은 전액 국가가 부담했습니다. 이미 학교법인 설립허가 신청서 자체를, 학교법인이 아닌 국방부가 작성했습니다.

한민고 설립 예산(감사원 보고서 中)

한민고에 투입된 정부재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550억 원은 학교 부지 매입과 학교 건물 신축 등에 사용됐습니다. 한민고는 기숙학교입니다. 550억 원으로는 기숙사까지 다 짓기에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국방부는 300억 원을 추가로 지원합니다. 서울 송파지역 군부대를 이전하면서 생긴 돈이었는데 이걸 그대로 한민고에 준 겁니다.

이 과정에서 학교법인과 개인 누구도, 한 푼도 부담하지 않았습니다. 학교법인이 가진 재산은 애초 전무했습니다. 설립자가 출연한 자금도 없었습니다. 감사원은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학교법인 한민학원 설립을 위한 소요자금 전체를 실질적으로 국방부에서 출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가가 직접 사립학교 법인을 설립하게 되었다"
"단순히 학교를 설립하는 자에게 지원한 것이 아닌 학교법인 설립행위 중 하나인 재산출연행위이므로 이는 설립 주체에 따라 국·공립, 사립학교로 구분한 초·중등교육법 제3조의 규정을 위반한 행위라 할 것이다"

한민고를 만든 건 온전히 국가였습니다. 그런데도 국민 세금을 들여 세운 학교를 난데없이 사립학교로 만들어 태생부터 불법인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그럼 대체 왜, 법을 어기면서까지 사립학교로 만든 걸까요? 국방부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국·공립 학교는 전국 단위에서 학생 모집이 불가능해 파주에 학교를 세울 경우 경기도에 거주하는 군인 자녀들만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학교 발전에 사립학교가 더 유리하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먼저, 국·공립학교는 전국 단위에서 학생 모집이 불가능한 게 사실입니다. 반면 사립학교는 전국 단위에서 학생을 모집할 수 있습니다. 언뜻 국방부의 설명이 타당해 보입니다. 국방부도 학교 설립 계획 단계에서 이 부분을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교육부의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적었습니다.

군인 자녀를 위한 '기숙형 고등학교' 설립 추진계획(안), 국방부 2010


군인 자녀를 위한 '기숙형 고등학교' 설립 추진계획(안) 中

그리고 실제로 특례규정을 만들었습니다. 이 특례규정에 따라 군인 자녀 학교의 경우 교육부장관과 협의 시 전국 단위 모집이 가능해졌습니다. 한민고 개교 1년여 전이었습니다.

「군인자녀 학교의 장은 교육과학기술부장관과 미리 협의하여 정한 범위에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을 학생으로 모집할 수 있다.
① 해당 군인자녀 학교가 있는 지역 외의 지역에 있는 중학교에 재학한 군인자녀」
- 군인자녀학생모집 규정 제4조(2012년 12월 20일 제정) -


한민고의 학교 설립 인가가 떨어진 건 2013년 10월이었고 개교는 2014년 3월이었습니다. 국방부가 말하는 법적 제약이 이미 개교하기 한참 전 해소됐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국방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민고를 사립학교로 지정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같은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특례규정을 만드는 실무작업을 했던 당시 국방부 학교설립 TF의 한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연히 공립으로 가니까 (특례규정을)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만들어 놨더니 사립으로 가서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두 번째, 학교 발전에 사립학교가 더 유리하다는 건 사실일까요? 일반적인 사립학교라면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교 이래 채용부터 횡령까지 온갖 사학비리의 전형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한민고의 모습은 이 말이 한민고에 적용될 수 있는지 의문을 낳게 합니다.

"교육청이 지적한 한민고 비리 백태‥학교 차량 사적 사용에 횡령까지"(2025년 4월 3일 뉴스데스크)
https://imnews.imbc.com/replay/2025/nwdesk/article/6702859_36799.html

"전직 방첩사 대령까지 투입‥비리 입막음 위해 제보자 색출도?"(2025년 4월 3일 뉴스데스크)
https://imnews.imbc.com/replay/2025/nwdesk/article/6702860_36799.html

그럼 이렇게 무리를 하며 만들어진 '사립' 한민고를 책임진 학교법인은 누가 참여해 만들었을까요? 학교법인 한민학원의 초대 이사장은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입니다. 한민고에서는 설립자로 기리는 인물입니다. 김태영 초대 이사장은 국방부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한민고 설립을 직접 기획·준비한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국방부는 김태영 전 장관이 재직 중이던 2009년 9월 '학교 설립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별도의 TF까지 조직했습니다.

김태영 초대 이사장을 소개하는 한민고 강연

2010년 12월 퇴임한 김태영 전 장관은 2011년 10월 한민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합니다. 이후 이사장에서는 물러나지만 지난 2월 숨질 때까지 한민학원의 명예이사장으로 남았습니다.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김태영 초대 이사장의 뒤를 이은 2대 이사장은 조정환 예비역 육군 대장이었습니다. 육군 참모총장을 역임했습니다. 현 3대 이사장은 홍두승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입니다. 이사장 3명에겐 '이명박'이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의 국방부 장관, 이명박 정부의 육군 참모총장, 이명박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분과위원이었습니다.

한민학원 1대·2대·3대 이사장(왼쪽부터)

앞서 밝힌 것처럼 한민고에서는 개교 이후 온갖 종류의 비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기도교육청 감사관 출신인 한 인사는 한민고에 대한 감사자료를 살펴보고선 취재진에게 "80, 90년대 수준의 회계"라고 말했습니다. 기사에 미처 다 쓰지 못할 만큼 교육청이 밝혀낸 비리는 다양하고 많았습니다. 교육청이 3년이란 제한적인 기간이 아니라 감사 범위를 더 넓힌다면 비리의 규모도 더 커질 것입니다.

하지만 비리를 밝혀내려고 해도, 비리의 이유를 물어도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습니다.

"한민고는 사립학교다."


사립학교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식입니다.

시작은 군인자녀를 위한 학교를 만든다는 좋은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1천억 원 가까운 세금을 들여 만든 한민고는 불법적으로 '사립학교'가 됐습니다. 학교는 아무 권리도 없는 이들에 의해 사유화되었습니다. 감사원이 법을 어겼다고 지적했지만 10년이 지나도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비리와 성범죄가 횡행해도 '사립학교'임을 내세워 외부 감시를 피하고 있습니다. 한민고를 세운 당사자인 국방부도, 학교를 관리감독할 주체인 교육당국도 '사립학교'라며 소극적인 모습입니다.

세금으로 세운 학교가 '사립학교'가 되는 게 맞는 건지부터 따져보는 것이 한민고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인 이유입니다. 태생부터 불법이었던 '사립' 한민고를 바로잡는 데 이제라도 국방부와 교육당국이 나서길 기대합니다.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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