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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 아파트 화재]
방화 용의자 복도서 숨진채 발견
유서에는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
노인 많은 임대아파트 대피 미흡
4층 거주 80대 2명 전신화상 입어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 과학수사대원들이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순간 아파트에 버스가 부딪힌 줄 착각할 정도로 굉음이 났어요. 쳐다보니까 연기가 나고 있더라고요.” (인근 아파트 주민)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21층 규모 아파트 4층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입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17분께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소방은 4분 뒤인 오전 8시 21분께 현장에 도착했고 소방대 등 인원 206명과 장비 63대를 동원해 오전 8시 30분 대응 1단계를 발령했다. 이후 소방은 오전 9시 15분께 초진을 완료하고 약 40분 뒤인 오전 9시 54분께 모든 불길을 잡았다.

유력한 방화 용의자 남성 A(61) 씨는 발화점인 4층 복도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경찰은 A 씨의 자택에서 유서를 발견하고 범행 동기를 수사 중이다. 현금 5만 원과 함께 놓인 유서에는 딸을 향해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 씨가 농약 분무기를 사용해 불을 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웃들의 증언에 따르면 2년 가까이 이 아파트 3층에 거주하던 A 씨는 아파트에서 자주 난동을 피우던 유명 인사다. 방화 피해를 입은 윗집 주민과는 층간소음으로 잦은 다툼을 벌였고 이유 없이 이웃들을 향해 욕설을 내뱉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지난해 9월에는 윗집과 쌍방 폭행을 벌여 경찰이 출동했지만 서로 처벌 불원서를 내 처벌 받지 않았다. A 씨를 향한 민원이 이어지면서 A 씨는 지난해 말 퇴거 조치를 당하고 근처 빌라로 이사 간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이사 간 빌라에서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거나 공사 책임자를 밀쳐서 벌금을 부과 받는 등 말썽이 이어졌다고 한다.

아파트 이웃 주민 B(59) 씨는 “평소 윗집과 층간소음으로 다툼이 잦았고 이사 간 뒤에도 한밤중에 몰래 들어와 난동을 부려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다”면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이상행동을 벌여 주민들이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두려움에 떨었다”고 전했다. 70대 C 씨도 “갑자기 집에 있는데 ‘XXX’이라고 욕설을 내뱉어 한동안 피해다녔다”고 말했다.

21일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60대 남성이 농약 살포기를 이용해 건물을 향해 불꽃을 발사하고 있다. 뉴스1,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A 씨는 아파트에 불을 지르기 전인 오전 8시 4분께 1.4㎞ 떨어진 빌라 인근에도 불을 질렀다. 이 빌라에는 A 씨의 모친이 거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경찰은 A 씨의 오토바이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견하고 조사한 뒤 4층에서 발견된 시신과 지문이 동일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오토바이 뒷좌석에서는 기름통이 발견됐다.

화재로 4층 거주자 80대 여성 2명은 전신 화상을 입고 건물에서 뛰어내렸고 다른 거주자 4명도 연기를 마시고 호흡곤란을 호소하거나 낙상을 입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밖에 주민 7명이 연기 흡입으로 현장에서 응급 처리를 받았다. 대피 과정에서 아슬아슬한 상황도 이어졌다. 화재 현장을 목격한 아파트 주민은 “아침을 먹다 ‘뻥’하는 큰 소리가 나서 나왔는데 4층에서 할머니가 불길이 나오니까 우왕좌왕하고 있었다”면서 “뛰어내리라고 소리 지르니까 안테나 줄 같은 걸 잡고 낙하산처럼 겨우 뛰어내렸다”고 설명했다.

화재가 발생하기 전 공사장을 방불케 하는 굉음과 비명이 들렸다는 인근 주민의 증언도 이어졌다. 이웃 아파트에 거주하는 40대 김 모 씨는 “‘사람 살려’라고 외치는 여자의 목소리가 5~10분 동안 들려왔다”며 “공사장처럼 ‘펑’ 소리가 나 버스가 부딪힌 줄 알고 커튼을 열어 바깥을 보니 불이 화르륵 하고 붙는 광경이 보였다”고 말했다.

사고가 발생한 아파트 단지가 노년층이 주로 거주하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 공공임대 아파트여서 대피가 늦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김 씨는 “화재가 발생한 곳은 임대 아파트여서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많이 산다”며 “어르신들에게 ‘대피하라’ 외쳤지만 움직임이 느려 더 큰 인명 피해가 걱정됐다”고 말했다. 실제 부상자도 70·80대가 4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화재가 빠르게 진압되지 않았을 경우 더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유추되는 대목이다.

화재로 관악구청과 인근 복지관에서 아파트 거주민에게 라면 및 식사를 제공하고 임시 대피소도 물색하는 등 피해 지원에 나섰지만 주민들의 우려는 깊어지고 있다. B 씨는 “진압 과정에서 소방이 호스로 물을 뿌리다 보니 집안에 잿물이 떨어졌을지, 어떻게 피해를 복구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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