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에 앞서 카 퍼레이드를 하던 중 차량에서 내려 세월호 참사 유가족 김영오씨를 위로하고 있다. 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 제공
‘빈자들의 성자’로 불리며 평등하고 포용적인 교회 개혁,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세계로의 변화에 앞장선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간) 88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2013년 세계 가톨릭교회 수장으로 즉위한 지 12년 만이다. 교황의 마지막 메시지는 ‘폭력·살상 중단'과 '이주민 탄압 반대’였다. 중증 폐렴 등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최근 퇴원한 교황은 20일 부활절 메시지를 통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상황을 개탄하며 휴전을 촉구했고, JD 밴스 미국 부통령을 만나 트럼프 정부의 반(反)이민 정책을 비판했다.
아르헨티나의 이민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교황은 유럽을 벗어난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이자 가톨릭 비주류인 예수회 출신 교황으로서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교황에 어울리는 성품은 타고나지 않았으나 부끄러움을 아는 수치심을 하느님 선물로 받았다”고 자서전에 쓴 교황은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빈민 사목을 하며 힘없는 자들을 돌봤다. 대주교 시절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고 교황 즉위 후에도 방탄차량을 사양할 정도로 소탈했다.
교황은 60여 개국을 다니며 물신주의와 양극화를 비판하는 등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거침없이 냈다. 2014년 한국 방문 당시 대화를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촉구했고, 세월호 참사 유족과 충북 음성 꽃동네 장애인들을 만나 위로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을 두고 “사람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트럼프 정부를 향해선 “증오 없는 사회를 이끌라”고 촉구했다.
“하느님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신다”고 역설한 교황은 교회 개혁을 주도했다. 성소수자 환대와 동성애자 커플에 대한 사제 축복 허용, 교황청 장·차관급 고위직에 최초로 여성과 수녀 임명, 여성과 평신도에게 주교회의 투표권 최초로 부여 등의 업적을 남겼다. 선교국 원주민 학대, 성직자의 성폭력 등 교회의 과거사 사과와 청산도 외면하지 않았다. 2013년 취임 미사에서 교황은 “짙은 어둠이 닥쳐와도 희망의 빛을 찾아야 한다”고 연설했고, 그 뜻을 지켰다. 세계가 전쟁, 혐오, 분열, 국가 간 이기주의로 신음하는 지금, 세계는 교황의 유산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