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에 앞서 카 퍼레이드 도중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씨를 만나 편지를 건네받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선종 소식을 듣자마자 눈물이 터졌습니다. 세월호 진실 규명을 위해 싸우는 지금까지 11년 동안 가장 믿었고, 또 가장 큰 힘이 됐고, 위로가 됐던 분이에요.”
세월호 참사 희생자 김유민의 아빠 김영오씨가 21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2014년 8월 가슴에 노란 배지를 달고 나타났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떠올리며 울었다. 참사가 벌어진 지 꼭 4개월 되던 날,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34일째 단식 중이던 참혹한 순간에 그의 곁으로 교황이 왔다. 2014년 8월14~18일,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에 머문 동안 그의 가슴에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날 바티칸에서 선종했다는 소식에 세월호 참사 피해자, 용산참사 피해자,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 등 그에게 위로받았던 한국 사회 약자들은 “아직 할 일이 많은 분”이라며 안타까운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기간 소탈한 모습으로 한국 사회의 여러 약자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묵직한 방탄 차량이 아닌 기아 소형차 소울을 타고 움직였던 교황은 2014년 8월15일 대전에서 미사를 집전하기 전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을 따로 만나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았다.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천주교 순교자 시복 미사 땐 유가족들을 발견하고 차에서 내려, 단식 중이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와 악수를 했다. 18일에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쌍용차 해고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지역 주민, 용산참사 피해자 등과 함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했다.
당시 쌍용차 해고노동자였던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2014년 긴긴 투쟁을 하던 동지들이 돌파구를 못 찾고 있을 때,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야만의 질서에 경종을 울려주셨다”며 “교황님의 소중한 말씀 한마디에 절망을 딛고 일어섰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야만의 세계가 넓혀지는 시점에, 더 낮은 곳에서 힘들어하는 민중들의 손을 잡아주셔야 하는 분인데 너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용산참사 유가족인 유영숙씨는 모든 한국 사회의 약자를 위로했던 명동성당 미사를 떠올렸다. “그날 미사를 드리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됐어요. 너무 좋았던 기억이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슬프네요.”
한국 사회의 약자를 두루 돌본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세월호 유족들에게 다가가 위로했던 행동들이 정치적으로 오해될 것을 우려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인간의 고통 앞에 서게 되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됩니다.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