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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검은 커넥션
등록 선거여론조사기관 규모 첫 공개
직원 5명만 채운 영세 사업장이 37%
전화·ARS 방식 따라 규모 천차만별
"이익 남기려면 정치권 영업은 필수"

편집자주

의심은 가는데 확신은 할 수 없다. 수상한 여론조사 얘기다. 민심의 바로미터라던 여론조사는 불법계엄 사태 이후 미심쩍은 결과물로 신뢰성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과연 여론조사는 조작이 가능한 것일까. 한국일보는 지난 두 달 여론조사 시장의 실태를 파헤치며 정치권과 조사기관의 불법 편법 공생 관계를 확인해봤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지는 21대 대통령 선거가 6월 3일로 확정된 지금, 각종 여론조사의 결과를 다시금 경계하고 조사 이면을 냉철하게 들여다볼 때다.
잘못된 선거여론조사 결과는 유권자의 눈을 가린다. 게티이미지뱅크


선거여론조사기관과 정치권 커넥션은 어떻게, 어떤 고리로 맺어지는 것일까. 업계에서는 이를 '생존'의 문제로 단언한다. "
부실하게 운영되는 영세 조사기관
"에게 "
선거 물량은 생존의 동아줄
"이고, "동아줄을 잡으려면
정치권에 매달려야 한다
"는 것이다.

본보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각종 자료를 종합하면,
여심위에 등록된 선거여론조사기관 54곳 중 20곳(37%, 2월 기준)은 직원 5명으로 운영되는 '영세 사업장(근로기준법 기준)'
이었다. 정부는 2017년부터 '관련 업무를 5년 이상 수행한 사람 3명 이상을 포함, 5명 이상의 상근 직원'을 조건으로 여론조사기관 등록을 의무화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난립을 막기 위한 것인데, 등록기관 3곳 중 1곳이 간신히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는 얘기다.

조사기관 규모 따져봤더니...대세는 ARS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집계한 올해 2월 기준 주요 선거여론조사기관의 규모다. 그래픽=이지원 기자


여심위는 개별 조사기관의 평판을 비교할 만한 규모나 매출액 등을 상세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주로 수행하는 조사 방식에 따라 규모에서 꽤 큰 차이를 보인다는 건 확인할 수 있다.
여론조사 방식은 전화면접(CATI), 자동응답(ARS), 웹 조사 등으로 크게 구분한다.

선거여론조사기관 등록 현황에 따르면,
전화면접 시스템을 사용하는 조사기관은 15곳(28%)
이다. 전화면접은 가장 전통적인 여론조사 기법으로 꼽힌다.
평균 직원 수는 96명
으로, 조사원이 전화로 응답자와 면접을 하기 때문에 인력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고 업계는 설명한다. 한국갤럽(1974년 설립), 한국리서치(1978년), 입소스(1997년), 메트릭스(1999년), 엠브레인퍼블릭(2015년)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정부 정책 관련 연구용역을 주로 수행한다.


'대세'는 ARS 조사기관이다.
ARS 시스템을 갖춘 곳이 절반 정도인 25곳
(46%)이다. 직원수는
평균 7.6명
. 이 가운데 17곳은 여심위 등록 요건인 5명을 겨우 채우고 있다. ARS는 기업 콜센터처럼 기계가 전화를 걸어 응답을 도출하기 때문에 인력이 많지 않아도 된다는 특성이 있다. 전화회선을 자체적으로 갖춰도 되지만, 필요할 때 임대해 사용할 수도 있어, 시설 투자 비용이 적은 편이다. 대표 업체는 리서치뷰(2006년), 우리리서치(1994년), 여론조사공정(2018년) 등이다.

전화면접과 자동응답(ARS) 시스템을 함께 갖춘 곳도 있다. 총 14곳(26%)으로 평균 직원수는 12명이다. 이들도 선거여론조사를 할 때는 ARS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리얼미터(2005년), 조원씨앤아이(2011년), 여론조사꽃(2023년) 등이 있다.

싼값에 선거 여조 물량 확보한 ARS… 매출은 미미

지난해 등록 선거여론조사를 가장 많이 수행한 기관이다. 그래픽=이지원 기자


ARS 조사기관의 영향력 확대는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전화면접 기관보다 훨씬 싼값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할 수 있어, 물량을 따내기 수월하다. 예컨대 1,000명을 조사할 경우 전화면접은 1,000만~1,500만 원 정도 들지만, ARS는 200만~500만 원가량이면 된다.

지난해 4월까지 수행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관련 공표 여론조사 2,646건을 분석한 결과는 이 같은 추세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ARS 방식은 1,613건(61%)으로 전화면접 941건(35.6%)을 압도한다. 제8회 지방선거를 위해 2022년 6월까지 진행된 공표 조사 1,899건도 크게 다르지 않다. ARS방식이 1,473건(77.6%)으로 전화면접(377건·19.9%)보다 월등하다. 제20대 대선과 관련해 2022년 3월까지 수행된 1,460건의 공표 조사에서는 ARS가 702건(48.1%)인 반면 전화면접은 497건(34.0%)에 불과하다.

조사방법은 또한 매출액을 좌우한다. 지난해 선거 여론조사를 가장 많이 수행한 10곳을 비교하면,
전화면접 기관 4곳의 평균 매출액(선거여론조사 관련만 집계)은 8억 원
정도로 나타났다. 반면
ARS 조사를 주로 한 상위 6개 기관의 평균 매출액은 1억6,000만 원이다
. 단순 비교상 5배 정도 차이를 보인 것이다. 여심위 등록 유지 요건(연간 매출액 1억 원 이상)을 감안한다면 나머지 10곳 이상의 기관은 1억 원 정도로 추정이 가능하다. 인건비나 조사 비용 등 추가 비용을 고려하면,
ARS 조사는 '별로 돈이 안 되는 장사'인 셈
이다.

"ARS로 이익 남기려면 '정치권 영업'은 필수"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업계에서는 "결국
ARS 조사로 이익을 남기려면 선거철 정치권 영업이 필수
"라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여론조사와 선거컨설팅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첫손에 꼽는다. 선거 경험이나 지원 인력이 부족한 정치 신인의 선거 전략을 설계해주고 여론조사에 웃돈을 얹거나, 다른 컨설팅 업체에 연계해주는 대신 수수료를 받는 식의 '맞춤형 서비스'가 주된 '영업 포인트'라고 지적한다. 정치브로커 명태균씨처럼 선거컨설팅 업체, ARS 조사기관, 언론사를 동시에 운영하는 곳도 적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단가가 정해져 있는 여론조사와 달리 선거컨설팅 비용은 '부르는 게 값'이다. 후보를 알리기 위해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할지, 머리는 어떻게 손질해야 할지, 현수막 문구는 뭐라고 써야 하는지 등의 항목을 모두 비용에 넣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전체 비용은 2,000만 원부터 통상 시작한다고 한다.

물론 이때 여론조사는 대부분 비공표다. 정치인 의뢰 공표 조사 자체가 불법인 데다 정치인 고객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컨설팅 내용과 여론조사 결과를 노출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경쟁 상대는 물론이고, 수도권 등 여야가 팽팽하게 맞부딪치는 격전지의 경우 상대당의 잠재 후보에게조차 자신의 지지율에 대한 정보가 흘러들어가는 걸 원치 않는다는 이유도 있다.

선거컨설팅 경험이 많은 여론조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내 지지율이 높게 나온 여론조사라면 여기저기 알리겠지만 창피한 결과가 나오면 숨기고 싶은 게 당연하다"면서 "비밀을 지켜줄 수 있는 업체를 찾아 지지율을 높이고 선거를 이길 방법을 고민하는 게 컨설팅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의뢰자 몰래 서로 하청주고 '가짜 직원' 세우기도

선거여론조사가 범람하면서 조사기관끼리 경쟁이 치열해지자 이익을 내기 위해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조사기관도 늘어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편법과 불법
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일도 반복된다. '하청에 재하청' 등
의뢰자 몰래 선거 물량을 서로 주고받는 일이 벌어진다.
조사 마감에 쫓겨
응답률이 높은 통신사 회신만으로 조사를 진행하는 등 사실상 표본에 손을 대는
일도 적지 않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귀띔한다. ARS 주력의 한 여론조사기관 대표는 "이름난 ARS 기관이어도 보유한 전화 회선이 많지 않아 의뢰자가 요구한 시간까지 조사를 마치기가 쉽지 않다"며 "급하면 다른 ARS 기관에 아예 하청을 주거나 일부 표본만 채워달라고 한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ARS 기관 대표 역시 "조사 시간 안에 표본을 채우지 못했는데 채운 것처럼 결과를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면서 "조사 원칙을 지키지 않았지만 명태균처럼 작정하고 조작한 건 아니다"고 해명했다.

비용 절감 차원에서 '가짜 직원'을 세우는 일도 빈번하다. 여심위 등록 기준에 맞게 서류를 조작하는 건데, 이는 여심위 조사에서도 반복 적발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여심위는 지난해 11월 여론조사기관 점검 내용에 "직원 5명 중 1명을 제외하면 배우자, 자녀인 가족 회사" "가정집을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음" "분석전문인력이 상근을 하지 않음" "분석전문인력으로 등록된 ○○○ 교수는 고문 역할만 함" 등의 지적 사항을 적시했다. 이 같은 지적을 받은 곳은 모두 직원 5명의 ARS 기관이었다.

선거여론조사 수행 실적이 전혀 없으면서 등록 기관 간판을 걸어놓기도 한다. 실제 등록기관 54곳 중 10곳 정도는 지난해에 공표용 선거여론조사를 단 한 차례도 실시하지 않았다. 비공표 선거여론조사만 하거나, 선거와 무관한 기업 마케팅 관련 조사만 한 것으로 보인다.

"등록 제도 탓 오히려 사이비 업체 홍보"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선거여론조사기관 등록 제도가 편법과 불법을 오히려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공신력을 보장한다는 긍정적 측면 못지않게 조사결과에 대한 검증 없이 단순 지지율을 알리는 경마식 보도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등록제가 조사 역량이 부족한 업체를 오히려 홍보해주는 꼴이라는 비판도 있다.

박종희 서울대 정치데이터센터장은 "유권자들은 전문성을 갖춘 곳이나 이름만 그럴싸하게 만든 기관이 내놓는 조사 결과물에 담긴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다 보니 여론조사 시장이 혼탁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상황이 계속된다"고 짚었다.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1. ① 1화
    1. • "600만원이면 돌풍 후보로" 선거 여론조사 뒤 '검은 커넥션'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0516040002864)
    2. • 여심위, 불법 실태 파악 못한 채..."심증만으론 조사 어렵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012300002753)
    3. • 美에서 퇴출된 ARS 여론조사 韓에선 대세...이유는?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016240000592)
    4. • ARS 기관 대부분 연 매출 1억 남짓..."선거 물량 잡아야 산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0510400004131)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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