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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 “한쪽 쏠린 헌법재판관 거르려면 독일처럼 국회 3분의2 찬성 필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한덕수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다.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은 “권한도 논란이지만, 내용 자체가 논란을 부추긴다”고 말했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선고를 앞두고 우리 사회는 극도의 대립과 갈등에 휩싸였다. 서울서부지법이 폭도들에게 습격을 당했고 헌법재판관이 협박당해 특별 경호에 나서야 했다. 재판관 8명의 전원일치 파면 결정 이후 우려했던 대혼란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탄핵심판 과정에서 제기된 많은 논란이 조기 대선 흐름 속에서 답을 찾지 못한 채 갈등 요인으로 잠복할 우려가 제기된다.

혼란의 시기에 길을 찾고자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을 모두 지낸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을 9일 만났다. 이 전 소장은 “헌재 결정선고가 갈등의 끝이 아니라 더 큰 분열과 대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위기일발 상황에서 8명 전원일치의 결정주문을 이끌어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 전 소장은 민감한 사안은 미리 원고를 적어와 그대로 읽을 만큼 신중했다. 그러면서도 현안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답을 주려 노력했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클라스한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은 “탄핵 국면에서 헌재가 정치적으로 영향받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지명한 재판관도 탄핵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김경록 기자

Q : 헌재가 조용해지나 싶더니 한덕수 권한대행이 재판관 두 명을 지명했다.

A :
“권한에 대해서는 학자들도 논란이다. 이번 경우는 그 내용에 있어서 납득할 수 있는가가 문제로 보인다.”

Q : 이완규 법제처장이 12·3 계엄 직후 ‘안가 회동’ 멤버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

A :
“대통령이 임명했다면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번은 권한대행으로서의 권한 행사인데다 내용 자체가 문제가 돼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Q : 앞서 한 권한대행과 최상목 권한대행이 마은혁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다.

A :
“마 재판관은 국회 선출 몫이니까 임명하는 게 맞다. 권한대행이 임명을 보류한 건 잘못이며 헌재도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Q : 앞으로도 재판관 임명 때마다 대립할까 걱정스럽다.

A :
“독일의 예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연방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 때 의회 과반수 출석에 3분의 2의 찬성을 받아야 한다. 정치적 편향성이 강한 사람은 통과하기 힘들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헌법재판관은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건으로 할 필요가 있다.” 끊이지 않는 재판관 임명 논란 대통령·국회·대법원장 3·3·3 지명 대신
헌재소장이 의견 내는 방안도 있어
마은혁 임명 보류, 헌재 말대로 잘못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연합뉴스]

Q : 대통령과 국회·대법원장이 세 명씩 지명하는 방식이 정치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A :
“대법관의 경우 대법원장 제청을 거친다. 편향된 인물이 걸러진다. 헌재도 소장이 그 시점에 필요한 전문가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는 방식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독일연방 헌재도 그렇게 한다.”

Q : 윤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기간이 길어졌다.

A :
“헌재 재판관들이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논의하고 헌재 결정문의 수위를 조절하느라 늦어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보다 워낙 쟁점이 많았다.”

Q : 재판관 의견이 5대 3으로 교착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A :
“만약 5대 3이었다면 마은혁 재판관을 배제해 놓고 5대 3으로 결론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중대한 사건일수록 헌재는 일치된 의견으로 결정한다. 내가 헌재소장을 하던 당시 8인 체제였던 적이 있었다. 가평의로 의견을 들어 5대 3이 되면 그 사건은 선고를 미뤘다.”
이번 탄핵심판 과정에서 형사소송 절차 준용 문제를 두고 법조계와 학계의 대립이 심했다. 재판관 전원일치로 결정이 이뤄졌지만, 이 부분에선 네 명의 재판관이 보충의견을 냈다. 그만큼 치열한 논쟁이 있었고 재판관들이 끝까지 양보 못 한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질문에 이 전 소장은 우회적인 답변을 내놨다.


Q : 형사 절차 준용 때문에 각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A :
“헌법재판소법 제40조(준용규정)에 따르면 ‘탄핵심판의 경우에는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한다’고 돼 있다. 규정의 해석과 관련해 법리적 논쟁이 가능하고 그로 인해 결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도 오랜 재판 경험과 경륜이 높은 재판부가 이를 법리적 정면충돌로 확대하지 않고 우회하는 현명한 방법으로 비켜가면서도, 법리적 논쟁의 일부를 결정문에 녹여냈다. 그렇게 해서 전원일치 결정주문을 끌어냈다.” 헌재의 윤 파면 선고 왜 늦어졌나 박근혜 탄핵 때보다 워낙 쟁점 많아
8명 전원일치 결정 이끌어내 다행
형사절차 준용 공방 현명하게 우회


Q : 계엄 사태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많다.

A :
“일부 타당하다. 미국식 대통령제가 전 세계로 수출됐지만 대부분 제왕적 대통령제의 함정에 빠져 독재국가가 됐다. 독일의 뢰벤슈타인 교수는 대통령제가 미국에서만 성공할 수 있는 이유를 지적했다. 국가권력의 분산, 소속 정당의 방침에 기속되지 않는 독립된 의원, 표현의 자유를 가진 언론, 독립적인 사법권을 꼽았다. 우리나라도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Q : 개헌 방향을 제시한다면.

A :
“국민이 대통령만은 직접 뽑아야 한다고 열망하고 있다. 직선 대통령책임제를 당분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분권형 대통령제, 이원집정부제를 검토할 수 있다. 국회의원 선출 또한 승자 1인이 독식하는 소선구제가 아닌 중·대선거구제가 적당하다.”

Q : 윤 전 대통령은 계엄의 원인으로 민주당 등의 줄탄핵을 지적했다.

A :
“국회의 탄핵소추권 남용은 지나친 점이 있다. 그래도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했다.”

Q :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사건 결정이 4대 4로 나오면서 헌재가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다.

A :
“이진숙 위원장 사건은 취임한 지 이틀 만에 탄핵 결정이 됐다는 점에 비춰 조금 과한 부분은 있다. 그런데 합의제 기구인 5인 방통위를 2인만으로 의결하는 등 스스로 문제를 일으켜 논쟁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저는 헌재 재판관들 전원의 양심을 믿는다.”

Q : 헌재 탄생에 참여했는데, 설립 취지대로 잘 유지되고 있는가.

A :
“헌재가 걱정을 끼쳤다면 신뢰 제고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번 탄핵 국면에서 헌재가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지명한 재판관도 탄핵에 찬성했다. 재판관들은 자기를 임명해 준 기관의 대리인이 아니다.”

Q : 비상계엄이 선포될 때 뭘 하고 있었나.

A :
“다음 날 일정 때문에 일찍 잤다. 아침에 아내가 ‘비상계엄이 선포됐다’고 하기에 ‘어느 나라 얘기냐’고 물었다. 우리나라 얘기라는 걸 알게 됐고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Q : 왜 이런 무모한 일을 벌였을까.

A :
“대학원 때 통치행위로 논문을 썼다. 그때 몇 건 안 되는 판례를 보니 대통령 통치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이것이 바뀌었는데, 이번 계엄을 보면서 누군가 옛날 판례를 잘못 참고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Q : 일부 헌법학자와 법조인들은 탄핵 기각을 단언하기도 했다.

A :
“일부 학자들은 탄핵을 미국처럼 정치권에서 해결해야지 사법 절차를 거칠 게 아니라는 주장을 한다. 그렇다면 탄핵 재판이 그냥 의석수 싸움밖에 안 된다. 정쟁만 될 뿐 정당성을 확보하기 힘들다. 탄핵소추권과 탄핵심판권을 분리한 우리 제도가 훨씬 합리적이다.”

Q : 문재인 정부 때부터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에 검사 출신을 임명하지 않았다.

A :
“검사도 자격만 되면 헌법재판관이든, 대법관이든 임명되도록 하는 게 옳다. 검찰에서 쌓은 지식이나 경험이 실제로 평의나 재판에서 도움이 된다.”

Q : 탄핵 반대 진영에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선거관리위원회를 공격했다.

A :
“초임 판사 시절 선관위에서 선거 관리 업무를 해봤다. 생각 이상으로 철저하다. 부정선거 관련 사건은 대법관이 확대경을 가지고 일일이 투표지 검사까지 한다. 그런데 이번에 주변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부정선거를 믿고 있어 놀랐다. 그렇다면 선관위는 심각성을 깨닫고 국민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더 해야 한다.”

Q : 양승태·김명수 전 대법원장을 거치며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많이 표출됐다. 판결이나 결정이 나올 때마다 판사 성향을 의심하며 공격한다.

A :
“판사가 어떤 사람이라서 이런 판단을 할 것이라는 선입관은 잘못됐다. 판사나 재판관은 일평생 재판을 해야 하는데 올바르지 못하고 정치권의 영향이나 받는 사람은 버티지 못한다.”

Q : 대선 일정이 확정됐다. 차기 정부의 과제를 꼽는다면.

A :
“이번에 헌재가 전원일치 결정을 이끌어내면서 통합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차기 정부는 갈등과 대립을 넘어 대화와 타협으로 사회적 통합을 이뤄야 한다. 협치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 아니겠는가.”
☞이강국=1972년 판사로 임관해 대법관과 법원행정처장·헌법재판소장을 지냈다. 통치행위로 석사를 하고 독일연방 헌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헌법재판의 권위자다. 헌재소장 퇴임 후 2년6개월간 법률구조공단에서 무료법률 상담을 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초빙 석좌교수로 헌법 판례를 가르쳤다. 현재 법무법인 클라스한결의 고문으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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