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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연의 초고령사회의 질문들]
⑩고령층 ‘디지털 소외’ 막으려면
지난 3월26일, 서울 마포구 광흥창역 부근의 한 카페에서 이현주 강사(왼쪽)의 키오스크 실전 특강이 진행되고 있다. 황보연 기자

지난달 말 역대 최악의 산불이 영남 지역을 덮칠 때, 고령층 일부는 긴급 대피를 알리는 재난문자를 받을 수가 없었다. 구형 휴대전화인 3세대(3G) 폰은 ‘안전디딤돌 앱’을 깔아야 수신이 가능하고, 앱 설치를 할 수 없는 피처폰(2G)은 그마저도 안 된다.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고령일수록 확인이 늦어 무용지물이 되기도 했다. 재난 상황에서 심각성을 더한 디지털 활용도에 따른 격차는 노후 생활 전반에서 삶의 질을 가르는 중요한 문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2년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를 보면,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활용 수준은 저소득층·장애인·농어민 등 정보취약계층 중에서도 가장 낮다.
“아이고~ ‘연장하기’를 선택해야 하는데 ‘끝내기’를 누르셨네요. 첫 화면부터 다시 시작하세요.”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광흥창역 인근의 한 카페에선 60~70대 고령층 10여명이 차례로 키오스크(무인정보단말기) 주문법을 익히고 있었다. 총 5회차로 이뤄진 고령층 대상 키오스크 특강의 마지막 순서인 실전 연습 시간이었다. ‘끝내기’를 잘못 누른 어르신은 커피 주문을 하다가 ‘핫’(hot)과 ‘아이스’(ice)를 어디에서 고르는지 몰라 우물쭈물하다 시간이 지체됐다.

또 다른 어르신은 ‘머그컵과 개인컵’ 중 한가지를 고르는 단계에서 그만 멈칫하고 말았다. ‘머그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주문을 마치고 나서 “친구 커피도 함께 주문하고 싶었는데 결제가 끝나 버렸다”며 아쉬워했다. 화면 하단의 한귀퉁이에 있던 주문 수량 확인 단계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특강을 진행한 이현주 강사는 “메뉴 카테고리를 타고 화면을 계속 넘겨야 하는데 단계가 많아 어려워들 하신다”며 “한번 듣고서는 잘 잊어버리기 때문에 재수강을 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앞서 4차례나 교육용 앱을 통해 연습을 거듭했지만 실전에서 ‘나홀로 주문’에 성공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와 노인복지관 등에서 진행되는 키오스크 특강이나 스마트폰 강좌는 대체로 조기 마감되기 때문에 대기자가 줄을 잇는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비대면·무인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고령층의 정보 소외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정보통신기술(ICT) 수준은 세계 최고인 반면 세대 간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3년 노인실태조사를 재분석한 결과를 보면, 키오스크를 활용한 주문 및 접수는 65살 이상 노인의 17.9%만이 가능했다. 75살 이상으로 가면 10% 미만, 85살 이상으로 가면 3% 미만으로 떨어진다. 노인들이 디지털 기기에서 보편적으로 활용하는 기능은 ‘메시지 받기’(83.6%)와 ‘메시지 보내기’(74.7%)로 극히 제한적이다.

디지털 리터러시 열공하는 고령층

실제로 고령층은 일상의 많은 것들이 애플리케이션(앱) 기반으로 바뀌면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손만 흔들면 잡히던 택시는 이제 호출 앱을 깔지 않고선 탈 수가 없다. 물건 구매를 취소하려고 해도 온라인으로 접수를 받는 반품 방법을 모르면 할 수가 없다. 키오스크 주문을 하다가 조작 실수로 자칫 카드 결제가 더 많이 될까 봐 마음을 졸인다.

지난 3월24일, 서초 노인복지관에서 한 70대 어르신이 교육용 키오스크 기기를 활용해 햄버거 주문을 연습하고 있다. 황보연 기자

마포구에 사는 이영순(가명·71)씨는 “이러다 그냥 집에 갇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닥치는 대로 스마트폰 강좌를 찾아 듣고 있다”고 했다. 무거운 생수를 배달받으려고 모바일 쇼핑을 배웠고 친구들과의 단체여행비를 송금하려고 은행 앱을 깔았다. 영순씨는 “키오스크 주문을 못 하면 밥도 굶겠다 싶어 그것부터 배웠다. 그래도 아직 화면 터치 속도가 느려서 뒷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으면 당황하게 된다”고 했다. 스마트폰 중급 강좌를 수강 중인 그는 요즘 챗지피티(GPT)를 활용해 가고 싶은 곳의 정보를 찾는 법을 배우고 있다. 지자체 등에선 스마트폰 왕초보부터 초·중급 강좌, 카카오톡 활용 특강, 동영상 제작 등 수준별로 세분화해 디지털 교육 과목을 늘리는 추세다.

맞춤형 학습인 ‘디지털 과외’도 인기다. 서울 서초구립 중앙노인종합복지관은 주 3회씩 ‘일대일 스마트 고민 상담소’를 연다. 기자가 찾은 지난달 24일엔 모두 6명의 어르신이 각기 개별 상담을 받고 있었다. 지도 앱을 통한 길찾기, 앱으로 세금 납부하기 등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스마트 서포터즈’로 일하는 성방현씨는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와이파이 연결을 별도로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며 “무료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도 연결하는 법을 모른 채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다가 요금 폭탄을 맞은 분들도 있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2월 디지털 격차로 노인이 소외되거나 차별받는 문제를 개선하도록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권고한 바 있다. 이 권고의 바탕이 되는 실태조사를 이끈 장안식 케이스탯컨설팅 공공사회정책연구소장은 “노인들이 디지털 소외에 시달리는 가장 큰 원인은 디지털 문해력이 낮기 때문”이라며 “디지털 기기가 있어도 사용이 미숙한 노인들은 다양한 일상적 불편과 사회적 차별을 경험한다”고 지적한다. 대면 서비스의 축소가 분노와 자존감 하락, 고립감을 줘서 노인의 존엄한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경제적 불이익도 겪게 된다. 은행의 비대면 예·적금 이율이 대면 상품보다 높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 3월24일, 서초 노인복지관에서 열린 일대일 스마트 고민상담소에서 한 어르신이 길찾기 사용법을 익히고 있다. 황보연 기자

같은 노인이라도 지역·소득 간 격차

같은 노년기를 맞고 있더라도 디지털 활용 수준에 따른 격차는 크다. 카페 주문도 쩔쩔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인공지능(AI)으로 운동 처방을 받고 창작 활동으로 여가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같은 날 서초 노인복지관에서 만난 최세남(77)씨는 에이아이 체형분석기(Bodydot Fitness)로 신체 측정을 받는 중이었다. 별도의 환복 없이 자동으로 신체 부위를 인식하고 분석 결과를 제공받는다. 그는 라운드숄더 각도(어깨가 앞으로 말려 있는 정도)와 골반경사 각도가 정상 범위에서 조금씩 벗어나 있었다. 세남씨는 “지난해부터 유사한 방식으로 운동 처방을 받은 뒤 말린 어깨와 등을 펴는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했다. 앱으로 처방받은 운동법을 익히고 자신의 활동을 기록한다. 이후 다시 체형분석기로 어느 정도 개선됐는지를 측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복지관에서는 에이아이 기술을 활용한 그림 동화책이나 창작 음악 만들기도 인기 프로그램이다. 이성희 서초 노인복지관장은 “갈수록 에이아이를 접목한 프로그램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자신이 직접 쓴 스토리에 에이아이가 그린 그림을 붙이거나 노래 가사를 쓰고 난 뒤 작곡은 에이아이에 의뢰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앱 설치나 활용이 자유자재로 가능해야 한다. 김영선 경희대 노인학과 교수는 “지난해 60살 이상 시니어 특성별로 분석을 해봤더니 남성일수록, 가족과 함께 거주할수록, 소득이 높을수록 디지털 문해력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지난 3월24일, 최세남씨가 에이아이(AI) 체형측정 분석기를 통해 신체 부위를 측정한 결과를 받아보고 있다. 황보연 기자

공적 서비스엔 대면 창구 선택권 줘야

지난해 9월 국회에선 노인이 키오스크와 모바일 앱 등을 다른 연령대와 동등하게 이용하도록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의 노인복지법 조항이 신설됐다. 해당 법안은 오는 10월 시행될 예정인데, 이를 앞두고 정부가 구체 방안을 마련하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고령자 눈높이에 맞는 디지털 기기의 개발과 보급을 우선 과제로 꼽는다. 홍경순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연구원은 “키오스크의 경우, 글자 크기를 일정 수준 이상 키우거나 확대해서 볼 수 있어야 한다”며 “너무 복잡한 단계를 단순하게 줄이고 음성 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고령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신기술에 대한 수용성이 높은 이들만 염두에 둬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국외에서도 이런 흐름이 강화되는 추세다. 노르웨이의 한 정보기술업체(No Isolation)는 디지털 기기 사용을 어려워하는 노인을 위해 하나의 버튼으로 가족과 손쉽게 영상 통화 등을 할 수 있는 ‘원 버튼 컴퓨터’(Komp)를 개발했다. 미국에서 출시된 노년층을 위한 태블릿 ‘그랜드패드’(Grandpad)에는 나이가 들어 건조해진 피부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터치스크린이 탑재됐다.

김영선 교수는 “정부와 지역사회, 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고령자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도록 하는 ‘디지털 조력자’가 많아져야 한다”며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의 경우, 고령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금융 노년학자를 창구에 배치해 전용 상담을 제공하기도 한다”고 했다.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최소한 공적 서비스가 제공되는 공간에서는 아날로그 방식의 서비스가 공존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디지털 기기를 아무리 고령 친화적으로 설계한다고 하더라도 접근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키오스크를 사용하지 않을 권리도 줘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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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연의 초고령사회의 질문들은? 지난 연말 우리는 65살 이상 노인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로 들어섰습니다. 한때 폭발적 인구 증가가 걱정거리였던 나라가 지금은 빠르게, 그것도 전속력으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인구 국가비상사태’의 본질은 인구 감소보다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동에 있습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초고령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 사회에 던져진 질문을 격주로 하나씩 톺아봅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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