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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대기자
8년 만의 두 번째 현직 대통령 추락이다. 모두의 비극이다. 계엄이 촉발시킨 헌법재판소의 파면을 떠나서라도 윤석열 전 대통령은 애초 5169만 명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가기엔 준비도, 자질도, 덕성도 부족했다. 탄핵심판 국면에서 평생을 나라에 헌신해 온 군인 등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위증을 압박하는 듯한 모습은 가장 실망스러운 장면이기도 했다. 검증되지 않은 국가 지도자가 어떤 결말을 낳는지 깨닫는 데 다시 2년11개월이 허비됐다. 늘 기계적 중립·공정에 대한 강박으로 지도자를 제대로 검증해내지 못한 언론도 이 같은 파국의 공동 책임을 피해가긴 어렵겠다.

윤석열의 자업자득 귀결이지만
여야 모두가 정치적 비극의 공범
동시에 87년 헌법도 수명을 다해
‘제왕 권력 분산’의 제7공화국으로

윤석열 정권 1060일은 무엇보다 대화·타협·협치·포용·통합 등 민주주의 공화국의 작동 요건과 원리에 대한 이해와 체득이 부족한 평생 검사 출신 리더의 한계를 절감한 시간이었다. 헌재는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과 국민 기본 인권을 침해한 국가긴급권 남용으로 헌법 수호의 책무를 저버렸다”고 꾸짖었다. 자신이 그 위에 서 있다고 착각했던 헌법과 민주주의에 의해 결국 그는 단죄됐다. 주범은 그였다. 그러나 여야 정치권은 모두 이 참극의 공범이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돼 어떻게든 타개해야만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이를 국회의 권력남용, 국정마비 초래라고 판단한 것은 정치적으로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계엄 선포의 요건은 아니지만 ‘거대 야당의 횡포’라는 데 동의한 경고였다. 스스로의 반성과 국민에 대한 사죄가 반드시 필요한 근거다.

보수 대통령 두 명의 잇따른 낙마라는 재앙을 맞은 국민의힘은 정치 초년병 대통령보다 더 큰 ‘역사의 죄인’이란 낙인을 피해가기 힘들다. 용산 눈치보기와 제자리·기득권 지키기로 날을 새워 온 자신들의 소탐대실 때문이다. 지난 2년 반 헌법(정치적 중립, 법 적용의 평등), 민주주의(대화와 협치, 삼권분립) 원칙을 거스른 윤 대통령의 적잖은 일탈들이 이어졌다. 여당 전당대회의 허수아비 당 대표 강압, 공천 개입, 이준석·한동훈 여당 대표 쳐내기, 숱한 김건희 여사 리스크의 외면, 무리한 의대 증원 강행, 야당과의 대화 거부, 고교·대학·검찰 인연의 후견주의 정실 공직 인사….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돼야 할 책무를 위반했다”고 헌재는 심판했다. 그런데 그 위헌·위법의 경계 순간마다 한마디 쓴소리 없이 방기해 온 이들이 누구였나. 대통령이 ‘제왕놀음’을 즐기도록 붕 띄워 결국 극단의 ‘계엄’에 이르게까지 한 책임은 늘 양지(陽地)와 낙점(落點)만을 좇아 온 그들 내의 영혼 없는 정치였다. 무엇보다 김건희·채 상병 사건 처리에서 각인시킨 정권과 여당의 ‘불공정’ ‘불평등’은 중도·젊은 층에의 확장을 스스로 차단했다. 보수 전체의 궤멸을 맞게 한 역사적 과오다. 과연 보수 세력의 대표를 자칭할 자격조차 있는가. 그러니 여야 모두 두 달 뒤 표 구걸에 앞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최소한의 염치이자 도리다.

1987년 헌법은 “5년 단임을 보장해 국정의 안정과 지속성을 꾀한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번 파면 사태로 이 헌법은 더 이상 안정적이지도, 지속적일 수도 없음이 입증됐다. 11년 만에 세 차례나 대통령이 탄핵 소추되고, 그중 두 번 파면의 참상을 낳은 이 제왕 대통령 체제로 민주공화국을 기대할 수는 없다. 최근 7년 동안 줄 탄핵으로 6명의 대통령이 등장한 페루는 과연 먼 나라 얘기인가.

제왕 대통령을 가능케 한 87년 헌법 체제는 이젠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하기 힘든 ‘식물 대통령’의 위기를 맞고 있다. 너무 강한 승자독식 대통령의 파워는 야당엔 늘 모든 것을 상실할 거라는 공포감을 안겼다. 여기에 검증되지 않은 대통령의 오만과 권위주의 태도, 최순실·김건희 등 각종 스캔들이 터지며 다수의 분노·불신은 모두 제왕 대통령을 향해 분출되는 구조가 고착됐다. 진영 간의 끝모를 대치, 의회 내에 거대한 장벽을 세운 여소야대, 고소고발이 대체한 정치의 사법화가 무한 반복이다.

그러니 대통령 독재 국가냐, 아니면 식물 대통령과 거대 야당 독재 국가냐의 진자가 반복될 처지인 나라다. 그 귀결이 군사 계엄이었듯이 87년 헌법은 이제 ‘타락(墮落)의 철칙’으로만 작동할 악법이 됐다. 단 하나의 행운은 자신이 허용한 제왕 대통령을 스스로 파면시키며 역으로 자기 수명이 다했음을 알린 ‘87 헌법의 부고장’뿐이다.

무소불위 대통령의 힘을 분산시켜 행정부와 의회, 여와 야, 서울과 지방, 정부와 시민사회 간의 협치와 조정이 가능토록 공동체의 새 계약서를 쓰지 못하면 더 이상 공화국은 없다. 거대 야당의 전횡에 대한 제도적 견제 역시 충분히 도입돼야 할 터다. 어제 우원식 국회의장이 여야 개헌 특위와 대선 때 개헌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반갑다. 누구보다 우리 후대가 자랑스러울 통합과 도약의 제7공화국을 물려줘야 할 역사적 책무와 결단의 시간이다. 때마침 미국에서도 들려오는 시민들의 분노가 있다. “왕은 없다(No Kings in Americ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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