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98> 1958년 케네스 마틴 일가 실종사건
당일 산골 여행 떠났다 사라진 부부·세 딸
유일한 생존자 장남은 사건 당일 뉴욕에
실종 위치서 차량·권총 발견됐으나 "무관"
두 딸 시신 발견했지만 나머지는 미확인
66년 만에 물속서 차량 발견...인양 시작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좇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1958년 12월 실종된 마틴 일가족. 케네스(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바버라, 수전, 버지니아, 바비 마틴. 위키피디아 캡처


1958년 12월 7일 일요일, 미국 오리건주(州) 포틀랜드에 살던 케네스 마틴(당시 54세)은 오후 1시쯤 자택 차고에서 포드사의 1954년형 컨트리스퀘어 스테이션왜건을 꺼냈다. 포틀랜드에서 동쪽으로 약 40마일(64㎞) 떨어진 컬럼비아 강변의 작은 마을 '캐스케이드 록스'에 위치한 산골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였다. 전날 동네 이웃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했던 케네스과 아내 바버라(당시 48세)는 세 딸 바비(당시 14세), 버지니아(당시 13세), 수전(당시 11세)과 함께 크리스마스 장식용 나뭇가지들을 모을 참이었다.

케네스는 수년 동안 빨간색 산타 할아버지 옷을 입고 이웃들에게 대형 사탕 지팡이를 나눠 주며 크리스마스를 함께해 왔다. 그 덕분에 이들이 살던 포틀랜드 북동부 로즈웨이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사탕 지팡이 마을'이란 별칭으로 불렸다.

여행길에 들른 주유소·식당 방문이 마지막

1954년형 포드 컨트리스퀘어 스테이션왜건. 케네스 마틴이 실종 당일 끌고 나갔던 차량과 동일한 기종이다. 위키피디아 캡처


그날은 유독 크리스마스 장식용 나뭇가지들을 찾기 좋은 날이었다. 하늘은 흐렸지만 비가 올 기미는 없었다. 기온도 10~15도로 따뜻했다.

이들 가족은 크림색, 빨간색 트리밍이 특징인 차량을 타고 컬럼비아강 협곡을 향해 동쪽으로 이동했다. 오후 4시쯤에는 캐스케이드 록스에 있는 주유소에서 휘발유 5갤런(약 19L)을 구매했다.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캐스케이드 록스에서 동쪽으로 20마일(32㎞) 떨어진 '파라다이스'라는 식당에서 목격됐다. 이것이 마틴 가족의 마지막 흔적이다.

포틀랜드의 한 전기 회사에서 서비스 매니저로 일하던 케네스가 직장으로 출근하지 않자 케네스의 상사가 9일 저녁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같은 날, 경찰은 케네스의 자택 수사에 나섰다. 부엌 건조대에는 전날 가족들이 먹은 접시가 놓여 있었다. 세탁기에는 빨랫감들이 들어 있었다. 케네스가 여행 전날 밤 입은 산타클로스 옷이 펼쳐진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마틴 부부의 은행 계좌에도 상당한 돈이 남아 있었다. 누가 봐도 이들이 고의로 사라졌다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실종 장소 인근서 쉐보레·권총 발견했지만…

마틴 일가족이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자택에서 찍은 가족 사진. 왼쪽 두 번째가 유일한 생존자인 장남 도널드 마틴.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지역방송사 KOIN 뉴스 엑스(X) 캡처


수사 초반부터 단서들이 쏟아졌다. 실종 이튿날인 12월 8일, 하얀색 1951년형 쉐보레가 캐스케이드 록스에서 포착됐다. 쉐보레 근처 덤불에서는 마른 피로 뒤덮인 콜트 38구경 권총도 발견됐다. 같은 날 후드강 카운티 경찰에 로이 라이트라는 한 남성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남성이 쉐보레 절도 혐의로 체포됐다. 마틴 일가가 들렀던 후드강 인근 식당 웨이터는 "마틴 가족이 방문한 같은 시간 이들을 식당 안에서 봤고, 마틴 가족이 자리를 뜨자 두 남자도 동시에 떠났다"고 진술했다. 이들이 유력한 사건 용의자로 꼽힐 만한 대목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훔쳤던 쉐보레는 마틴 일가의 차량과 일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케네스의 장남 도널드가 2년 전 한 백화점에서 훔쳤던 것으로 드러났다. 도널드는 사건 당시 미 해군 복무와 컬럼비아대학원 재학으로 뉴욕에 살고 있었다. 쉽게 풀릴 줄 알았던 사건은 금세 미궁에 빠졌다.

가족이 사라진 지 일주일 후, 서부 8개 주에 실종 전단지가 뿌려졌다. 경찰은 실종 6주 후까지 멀트노마 카운티에만 제보 편지 201건, 추가 보고 207건, 전화 제보 수백 건이 접수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신빙성 있는 제보는 많지 않았다. 한 여성은 "가족들이 토템 폴(북미 원주민들이 집 앞에 세우는 기둥 모양의 나무 조각) 근처 물속에 있는 걸 봤다"고 했고, 한 과수원 주민은 포틀랜드 한 협곡에서 남녀가 나뭇가지를 모으는 것을 목격했다고 보고했다. 경찰은 이에 대해 아무것도 밝히지 못했다.

절벽서 차량과 일치하는 타이어 자국 발견

2022년 6월 미국 오레곤주와 워싱턴주 경계를 따라 흐르는 컬럼비아강 물이 보너빌댐 위에 쏟아지고 있다. AP 연합뉴스


수사는 결국 해를 넘겼다. 수사당국은 포틀랜드 반경 약 80㎞ 이내 숲, 강, 호수, 산악 지대를 샅샅이 뒤진 끝에 이듬해 2월 컬럼비아강 위 절벽에서 타이어 자국을 발견했다. 마틴의 타이어 무늬와 일치했다. 차량 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페인트 조각 역시 미 연방수사국(FBI) 분석 결과, 마틴의 차량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것으로 판명됐다.

두 딸 시신 이틀 연속 발견…"익사" 결론

미국 지역 매체인 세인트루이스 포스트 디스패치의 1959년 5월 4일 자 지면. 3일 마틴 가족의 막내 수전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뉴스페이퍼스 홈페이지 캡처


이윽고 그해 5월 일부 시신들이 발견됐다. 3일 오후, 수전의 시신이 더달레스에서 서쪽으로 약 70마일(110㎞)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고, 이튿날 버지니아의 시신이 더달레스에서 약 46마일(74㎞) 떨어진 보너빌댐 근처에서 나타났다.

마틴 가족의 치과의사였던 어니스트 워터맨 박사는 시신을 조사한 뒤 막내딸 수전이 맞다고 확인했다. "제가 한 치아 수복 치료 흔적이 그대로 있습니다. 같은 위치에 같은 치료 흔적이 있는 치아를 가질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수전의 이모부인 허셸 돌시도 발견된 시신의 옷이 수전의 것과 일치한다고 증언했다. 익사가 두 딸의 사인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제, 경찰은 마틴 가족이 포틀랜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첫 번째 가설은 차량 사고로 인한 컬럼비아강 추락이었다. 그러나 △차량의 잔해가 발견되지 않은 점 △시신으로 발견된 두 딸 외에 케네스 부부와 장녀 바비는 발견되지 않은 점에서 여전히 미심쩍었다.

두 번째 가정은 '범죄 연루'다. △장남 도널드의 절도 이력과 △쉐보레 근처에서 발견된 권총이 도널드의 절도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점 등이 근거였다. 하지만 이들의 실종 당시 도널드가 뉴욕에 있었던 사실로 이 가설 또한 배제됐다. 납치·살해 시나리오도 제기됐으나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 증거는 없었다.

경찰은 헬리콥터를 이용해 물 위에서 추가 수색을 벌였다. 잠수부도 투입됐다. 하지만 수색 중이던 잠수부가 목숨을 잃을 뻔한 사고를 당했다. 조사는 결국 종결됐다.

가족 사망 8년 후 장남이 가족 재산 상속



마틴 일가가 실종된 지 8년이 지난 1966년 12월, 결국 도널드가 가족의 재산을 상속받게 됐다. 또한 1만4,000달러의 생명보험금도 그가 지급받게 됐다. 당시 도널드는 아내, 두 딸과 함께 메릴랜드주 휘튼에 거주하며 해군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이후 하와이로 이주한 그는 퇴역한 뒤 제임스 캠벨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 2004년 10월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민간 잠수부 "15m 깊이 아래서 차량 발견"

지난해 민간 잠수부 아처 메이오가 컬럼비아강에서 발견한 뒤 촬영한 차량. 미국 뉴욕타임스(NYT) 홈페이지 캡처


영원히 숨어 있을 것만 같았던 결정적 단서, 즉 마틴 가족이 타고 나선 차량이 사건 발생 66년 만에야 수면 위로 부상했다. 마틴 가족 실종 사건에 호기심을 갖고 2022년부터 캐스케이드 록스 지역을 수색해온 민간 잠수부 아처 메이오(56)가 2024년 마틴 가족 것으로 추측되는 차량을 컬럼비아강에서 발견한 것. 워싱턴주 화이트새먼에서 온 메이오는 시계나 반지 등 강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사업을 운영하며 익사 사고 희생자 수습 작업도 해왔다.

메이오는 올해 2월 후드강 카운티 경찰서에 마틴 차량 발견 사실을 알렸다. 그는 "수면 아래 50피트(15m) 깊이에서 뒤집힌 채 가라앉은 차량을 발견했다. 차량은 진흙, 연어 내장, 홍합 껍데기 등으로 덮여 있었다"고 말했다. 당국도 차량 번호판을 근거로 마틴 가족이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찾기 위해 타고 나섰던 바로 그 차량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크레인을 이용한 차량 인양 작업은 이달 6일 시작됐다. 성탄절 때마다 이웃들에게 '사탕 지팡이'를 선물했던 로즈웨이 마을의 산타클로스가 1958년 크리스마스 파티에 오지 못한 이유가 이제야 밝혀질 수 있을까.

한국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 »»»»» 크리스마스 트리 구하러 나갔다 돌아오지 못한 일가족…차량은 어디에 있을까 [세계의 콜드케이스] 랭크뉴스 2025.03.21
46852 극언, 협박 이어 투척까지... 정치권이 부추기는 극단의 분열 랭크뉴스 2025.03.21
46851 [속보] 트럼프 “우크라와 희토류 등 광물협정 서명 임박” 랭크뉴스 2025.03.21
46850 월급 309만원 직장인, 5400만원 더 내고 2200만원 더 받는다[Pick코노미] 랭크뉴스 2025.03.21
46849 [단독] 정유라, 7억빚 안갚아 檢송치…담보가 '최순실 태블릿'이었다 랭크뉴스 2025.03.21
46848 '尹체포 저지' 김성훈 경호차장 구속 갈림길…오늘 영장심사 랭크뉴스 2025.03.21
46847 [단독]“의리하면 나잖아”···현역 장성 조종한 민간인 노상원의 ‘가스라이팅’ 랭크뉴스 2025.03.21
46846 [속보] 트럼프 "우크라와 희토류 등 광물협정 서명 임박" 랭크뉴스 2025.03.21
46845 [단독] 尹측, 막판 헌재 흔들기... '탄핵 반대' 법학자들 토론자료 169쪽도 제출 랭크뉴스 2025.03.21
46844 부동산PF 열심이더니…"새마을금고 243개로 확 줄여야” [S머니-플러스] 랭크뉴스 2025.03.21
46843 "좌파 매불쇼를 모델로"…'尹탄핵 인용' 플랜B 짜는 아스팔트 우파 랭크뉴스 2025.03.21
46842 저축銀 M&A 허들 낮춰…구조조정 빨라지나 [S머니-플러스] 랭크뉴스 2025.03.21
46841 [단독] 김건희 "V가 영장 걱정" 김성훈 "압수 체포 다 막겠다" 랭크뉴스 2025.03.21
46840 IOC 첫 여성·아프리카 수장 코번트리 "다양성의 강력한 메시지" 랭크뉴스 2025.03.21
46839 한덕수 탄핵 선고 결정문 보면, 尹 탄핵 여부도 보인다 랭크뉴스 2025.03.21
46838 HLB 간암신약, 미 FDA 승인 재차 불발…"보완요구서 받아"(종합) 랭크뉴스 2025.03.21
46837 백악관, 연일 韓기업 현지투자 거론하며 트럼프 관세 성과 홍보 랭크뉴스 2025.03.21
46836 "혼자 사시는데…수돗물 왜 이렇게 많이 썼지?" 독거노인 생명 구한 검침원 랭크뉴스 2025.03.21
46835 “인간 행세하는 AI, 법 만들어 막아야” 랭크뉴스 2025.03.21
46834 현대차·포스코·엔솔, 관세장벽·불황 넘을 ‘해법’ 내놨다 랭크뉴스 2025.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