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석학 유발 하라리가 AI 혁명을 분석한 『넥서스』를 냈다. 이번 방한에선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대담 등 일정을 소화한다. [사진 김영사]
“지난해 12월 3일 밤, 한 친구가 저에게 ‘한국에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드디어 북한에 쿠데타가 일어났구나’ 생각했는데, 남한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크게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글로벌 베스트셀러 『사피엔스』를 쓴 이스라엘 출신 역사가 유발 하라리(49·예루살렘히브리대학교 교수)는 20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계엄 사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다. AI 혁명을 다룬 신간 『넥서스』 출간을 기념해 방한한 그는 이날 ‘AI와의 공존’을 주제로 삼았다.
이어 그는 “현 권력층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친위 쿠데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독재자를 꿈꾸는 많은 지도자는 매뉴얼을 지니고 있다. 일단 언론과 사법부를 장악하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며 “북한이나 러시아도 선거를 하지만, 자유 언론과 독립적 사법부가 없다면 선거는 무의미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국내 출판된 신간 『넥서스』는 그의 ‘인류 3부작’으로 불리는 『사피엔스』(2015), 『호모데우스』(2017),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2018)에 이어 6년 만에 나온 신작이다. 그는 이 책에서 AI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그는 “인간이 과거 자신의 발명품을 통제했듯 AI도 통제하고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완벽한 오류”라며 “AI는 고도의 지능을 갖춘 자율적 존재(agent)”라고 말했다.
하라리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향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기업가들은 AI의 위험성을 우려하면서도 경쟁에서 지는 것이 두려워 AI를 개발하고 있다”며 “같은 인간은 못 믿으면서, 외계인 같은 AI, 예측 불가능한 AI는 믿고 있다”면서다.
그가 그리는 ‘AI 디스토피아’는 AI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의약품과 무기를 제조하는 세상이다. “AI가 약, 무기, 종교를 만든다면 어떨지 상상해보라”는 것이 그의 경고.
이어 그는 “정보기술은 고도화됐으나 대화는 더 어려워졌다”며 “SNS에서 챗봇이 가짜뉴스를 퍼뜨리면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챗봇이 인간 행세를 할 수 없도록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가 내놓은 해결책이다.
“위조 화폐를 처벌하듯 위조 인간도 처벌해야 합니다. 특히 AI가 인간 행세를 하면서 증오와 공포를 담은 콘텐트를 퍼뜨리는 걸 막아야 합니다. 일단 그 콘텐트를 인간이 아닌 AI가 만들었다는 점을 밝히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첫 번째 단추입니다.”
하라리의 제언은 “AI 혁명을 안전하고 책임감 있게 가져갈 수 있도록 인간 사이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 그는 “안전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투자 없이 지금 같은 속도의 AI 개발이 이어진다면 인류의 멸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례로 “19세기 산업혁명을 먼저 시작한 국가들이 다른 국가를 정복하고 착취했던 현상이 AI 선도 국가와 후발 국가 사이에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하라리가 건넨 마지막 제언은 “정보 다이어트”를 하라는 것이다. 그는 “과식이 몸에 안 좋은 것처럼 너무 많은 정보도 정신 건강을 해친다”며 “음식을 먹을 때 원산지와 칼로리를 따지듯, 정보도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