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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재해석 ‘밍글스’ 강민구 셰프
국내 대학 전공 뒤 스스로 식당 일궈
올해 유일한 ‘미쉐린 별 3개’ 수상
“한식 교육 긴 안목으로 늘려야”
‘밍글스’의 주인 겸 요리사인 강민구 셰프. 박미향 기자

지난달 27일 열린 ‘미쉐린 가이드 서울&부산 2025’에서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밍글스’가 최고 등급인 별 3개를 유일하게 받았다. 밍글스의 별 3개 수상은 의미가 있다. 국내 대학에서 외식조리학을 전공한 이가 자력으로 일궈낸 레스토랑이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른 첫 사례다. 2014년에 문 연 밍글스는 장을 비롯해 다채로운 우리 식재료를 활용해 한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 파인다이닝(고급 정찬) 레스토랑이다. 이전에도 별 3개를 받은 국내 레스토랑은 있었다. 가온, 라연, 모수 등이다. 이들은 각각 광주요, 신라호텔, 씨제이제일제당 등 기업이 운영한 레스토랑이었다. 현재 영업을 하는 곳은 라연 한곳이다. 지난 7일 밍글스의 주인이자 요리사인 강민구(41)씨를 만났다.

―별 3개를 획득하고 가장 좋았던 일은?

“물론 많지만, 아이의 얘기에 기뻤다. 초등학교 5학년, 2학년 둘이다. 요리사는 가족과 함께하기 어려운 직업이다. 그들과 함께해야 하는 날이 가장 바쁘다. 일하는 시간도 길다. 발표 난 날 집에 가니 아이들이 생방송 영상을 돌려 보고 또 돌려 보고 있더라. 학교에서 친구들이 ‘너희 아빠는 ‘흑백요리사’에 왜 안 나오느냐, 안 유명하지, 미쉐린 스리 스타도 아니잖아’란 말을 했다는데 ‘우리 아빠 스리 스타야’라고 말할 거라고 했다.(웃음)”

―과거에 견줘 이번 미쉐린 가이드 별 목록에서 한식당이 줄었다는 미식 전문가들의 평이 있다. 전세계가 한식에 주목하는 이때다. 한식당이 더 뻗어나가기 위해선 대학이나 현장에서 이뤄지는 한식 교육이 필수인데 현실은 거리가 멀다. 국내 조리학과 커리큘럼에 아쉬운 점도 많고 2012년에 문 연 국제한식조리학교는 지난해 문을 닫았다.

“외국인을 비롯해 국내 요리사들이 많이 물어본다. ‘한식 배우고 싶은데 어디서 어떻게 배워야 하냐’고 말이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요리사들도 자신의 디엔에이(DNA)를 찾아 새 요리를 선보이고 싶기에 한식을 배우고 싶어 한다. 밍글스 문 연 후 이런 갈증이 있었는데 조희숙 선생님과 정관 스님을 만나면서 해소됐다. 하지만 이분들이 모든 이(요리사)들을 가르칠 수는 없다. 교육 사업은 100년을 내다보고 투자해야 할 사업이다. 단기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기업에선 투자하기 어렵기에 정부나 긴 안목을 갖춘 데가 나서야 한다.”

조희숙 선생은 영국 윌리엄 리드사가 개최하는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아시아 최고 여성 셰프’로 선정된 바 있는 한식 대가로, 국내 특급 호텔 주방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의 집’ 조리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정관 스님은 넷플릭스 시리즈 ‘셰프의 테이블’에 출연해 세계에 한식을 알린 사찰음식 권위자다.

―한식 교육 현장이 적은 이유가 외식업의 현실과 관련 있나?

“한식 전공 학생들이 늘어야 한다. 그러려면 한식이 돋보이고 비즈니스가 돼야 한다. 과거보다 한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지만 사회적으로 더 관심을 받아야 한다. 미식으로 이름난 나라들은 자국 음식에 대한 프라이드(자부심)가 높다. 프랑스, 일본, 중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말이다. (우리는) 한식을 자조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매일 먹어 익숙한 우리 것이기에 쉽게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 일상식으로 먹는 한식에 가치를 부여하고 존중하되, 프리미엄 한식이나 밍글스가 새롭게 도전하는 한식 등 갈래가 다양하게 나뉘면서 발전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수요가 많아지고 한식을 배우려는 이도 늘고, 교육기관이 잘 운영되면서 (외식) 현장과의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될 거다.”

‘밍글스’ 밥상에 나오는 ‘제철 등 푸른 생선’. 밍글스 제공

그는 “요리를 제대로 배운 첫 직장”으로 23살에 취업한 와인 바를 꼽는다. 전역 뒤 복학해 학교에 다니며 출퇴근한 직장이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주경야독이란 말이 제겐 반대였죠. 주독야경이었어요. 출근 시간이 오후 4시라서 모든 수업을 오후 2시에 끝내는 거로 짰어요. (요리) 기술을 빨리 배워 현장에 가고 싶었지요.(웃음)” 와인 바였지만 좁은 주방에서 유명 요리사 선배와 둘이 만든 메뉴는 파스타 등 이탈리아 음식이었다. 이전 패밀리레스토랑, 호텔 외식사업부 뷔페 등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쌓은 경험과는 비교되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오너 셰프’(주인장 겸 요리사)란 말이 등장하면서 파인다이닝 시장이 열렸다. 2007년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2만달러를 넘었다. 국내 미식 문화가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한 배경이다. “‘리스토란테 에오’ ‘라미띠에’ ‘줄라이’ ‘팔레 드 고몽’ 등이 생겨났고, 윤정진 셰프님과 박찬일 셰프님 등이 활동하셨죠.”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그해 그간 모은 돈으로 미국에 간 그는 ‘뉴 아메리칸 다이닝’을 표방하는 미국 특급호텔 레스토랑에 취업했다. “유럽 파인다이닝 문화를 미국식 ‘컬처’와 섞은 오트 퀴진(고급 외식)이었는데, 요리사가 자국의 음식을 새롭게 창조하는 점에 감동받았죠.” 그가 밍글스를 서양식이 아닌 ‘모던 한식’을 기치로 내세운 레스토랑으로 키우게 된 단초다. 그는 ‘마르틴 베라사테기’ 등 스페인과 덴마크에 있는 유명 레스토랑 무급 견습 요리사로 경험을 쌓고 미국 ‘노부’ 마이애미 지점을 거쳐 2011년 ‘노부’ 바하마 지점 총괄 셰프로 부임한다. ‘노부’는 미국 배우 로버트 드니로와 ‘노부 스타일’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명성이 높은 일본인 요리사 노부유키 마쓰히사가 공동 소유로 뉴욕에 문 연 레스토랑이다. 지점이 미국 여러 지역에 있다. 노부유키는 일식에 서양식을 접목해 세계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강 셰프가 이곳에서 2년 반을 일하면서 노부유키를 만난 횟수는 고작 세번. 기실 이 레스토랑의 알맹이는 강 셰프의 손에서 탄생했다. ‘된장을 쓴 푸아그라’ ‘일본 와규가 들어간 비빔밥’ 등이 그가 만든 메뉴다. 그는 휴가 기간에도 뉴욕 등 미국 대도시에 있는 유명 레스토랑에서 무급 견습 요리사로 일했다.

‘밍글스’ 밥상에 나오는 갖은 재료로 만든 탕. 밍글스 제공

―밍글스 창업 얘기를 해보자.

“2012년에 귀국해 한 외식 브랜드에 입사했다. 레스토랑도 열 거라고 해서 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기대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아내가 직장생활 해서 번 돈과 제가 모은 돈, 대출, 아버지가 빌려주신 돈으로 2014년 밍글스를 열었다. 아버지는 1997년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때 명예퇴직하시고 이 일 저 일 성실하게 하시며 살아오신 분이다. 지금도 그날이 잊히지 않는다. 낮인데, 아버지가 계셨고,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생겼구나’ 하며 어린 마음에 불안감에 휩싸였다. 다시 창업 얘기로 돌아가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열기엔 넉넉하지 않은 자금이라서 결국 지하를 선택했다. 물이 새거나 역류하고 냄새가 많이 났다.”

―시설보다 맛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막상 한식을 하려니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걸 절감했다. 한식을 프로페셔널(전문적)하게 선보이는 데 한계를 느꼈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 식당 가이드 ‘블루리본 서베이’ 김은조 편집장님이 한식 강습을 하고 계셨던 조희숙 선생님을 소개해줬다. 조 선생님 수업을 듣고 놀랐다. 이후 선생님께 부탁해 요리사들 수업 모임을 꾸렸다. 백양사 천진암에 1년 반 매주 가 정관 스님의 가르침도 받았다. 열악한 환경인데도 예약이 점점 쏟아졌다. 너무 바빴다. 레네 레제피(덴마크 유명 셰프) 등 세계적인 요리사들도 다녀가고 많은 분이 응원해줬다.”


―‘흑백요리사’ 흥행으로 파인다이닝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하지만 파인다이닝이라고 해서 국내 외식업계 현실에 비켜갈 순 없다. 수익은 나는가?


“2015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집에 들어가면서 신혼집 전세금을 보태 지상 임대 건물로 옮겼다. 한번 더 이사하긴 했는데, 지금까지 밍글스는 외부 투자를 받은 적이 없다. 오너 셰프로서 빠르게 결정하고 판단·추진해 변화를 끌어내는 게 밍글스의 장점이다. 지금 밍글스는 요리사 22명, 서빙 인력과 홀 매니저, 소믈리에를 합쳐 11명, 사무 직원 2명 등 총 35명이다. 유지할 수 있는 구조는 만들었지만, 엄밀히 밍글스만 따지면 적자다. 손님을 25~27명 받기에 일하는 이가 더 많다. 좋은 식재료에 가장 좋은 부분만 쓰니까 구매 재료의 한 30%만 쓰는 셈이다. 다행히 지금 건물주는 임대료를 거의 올리지 않았다. 밍글스의 재정을 지원하는 일들이 있기에 유지할 수 있다.”

집중해 음식을 만들고 있는 강민구 셰프. 밍글스 제공

그는 ‘흑백요리사’에 출연했던 송하슬람 셰프와 연 ‘마마리마켓’(반찬가게), ‘마마리다이닝’(캐주얼 식당)과 “한식을 홍콩에 제대로 알릴 목적”으로 연 홍콩 ‘한식구’(한식+식구), 파리의 ‘세토파’(SETOPA, Seoul to Paris) 등을 운영한다.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그의 고집 때문에 밍글스는 매년 성장했다. 2016년 이후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 꾸준히 이름이 올라갔고, 2017년 한국에 첫발을 디딘 ‘미쉐린 가이드’에서도 매년 별을 수상했다. 지난해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국내 레스토랑으로는 가장 높은 순위인 44위에 올랐다. 명성이 생기자 해외 유명 셰프들과 협업 행사가 줄 잇고 그를 찾는 데도 많아졌다.

―안성재 셰프의 ‘모수 서울’이 오는 22일 문 연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다. 파인다이닝 시장은 파이가 작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쉐린 가이드’ 별 3개 레스토랑인 ‘베누’에서 형(안성재)을 만났다. 15년 전 일이다. 무급 견습생으로 일할 때다. 형에게 많이 배웠다. 같은 길을 가는 동료 셰프라고 생각한다. 한국 셰프들의 장점은 파이가 작아도 서로 돕고 지원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업계에서 평판이 좋다고 알고 있다. 경쟁 심한 데선 쉽지 않은 일이다.


“나를 모든 이가 좋아할 순 없다. 내가 주도적으로 하는 일에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거기서 갈등이 생겨 과도한 에너지를 쏟는 것은 매우 싫어한다. 뭔가 조율해야 한다면 갈등보다는 잘 맞추고 내가 더 잘하는 쪽에 신경 쓰는 타입이다. 내 실력만으로 이 자리에 온 게 아니다. 1980년대 중반 한국이 발전하는 시기에 태어났고, 부모님 세대와 선배 요리사들이 길을 잘 닦은 덕을 보고 있다.”


―직원들과 관계도 이런 관점인가?


“직원들마다 평가가 다를 것이다. 개업 초기부터 오랫동안 일한 이가 많다. 7년 이상, 3~5년 일한 이들이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레스토랑 일은 힘들다. 일도 오래 하고, 몸도 힘들고, 머리도 많이 써야 하는 직업이 파인다이닝 셰프다. 여기에 감정 컨트롤도 잘해야 한다. 손님들과 직접 만나기 때문이다. 호스피탤리티(hospitality, 환대) 능력도 중요하다. 같은 목표로 오래 일한 직원에겐 감사함을 표현한다. (월급을 올려주는 건가?) 급여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이 공간에서 성장할 수 있느냐, 그걸 따져 오는 데가 파인다이닝이다. 해외 경험을 쌓도록 한다.”


―한국 식문화를 리드하는 이들 중 한명이 됐다. 요리사로서 사회적 책무를 생각한 적 있나?


“이젠 요리사가 기술·기능 직군을 넘어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됐다. 한식 학교에 대한 의견을 내거나 (식재료) 생산자에 대한 존중, 식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 무엇인지 등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우리가 만든 한국 고급 문화를 해외에 진출하게 하는 데 셰프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만큼 사회적인 책임감도 커진 거다. 내 아이가 10년 후, 20년 후 이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데 어떤 환경이 주어져야 하는지,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쳐야 할지 고민이 있다.”


―이제 음식 얘기를 해보자. ‘장 트리오’(서양식 디저트에 우리 장을 접목한 음식) 등 히트 친 메뉴가 많다.


“처음엔 외국에서 배운 요리에 한국 식재료를 토핑처럼 얹는 느낌이었다. 외국에서 일했으니 외국 요리가 70~80%였다. 한식을 배우면서 비중이 바뀌었다. 한동안 사찰음식에 꽂혀 유제품도 안 썼다. 채소 메뉴가 많았다. 학동사거리에 밍글스가 있을 때다. ‘학동사 밍글 스님’이라 불릴 정도였다. 그러다 너무 내 취향을 강요하는 듯해 지금의 스타일로 바꿨다.”

‘밍글스’ 밥상에 나오는 ‘우리 전통 다과’. 밍글스 제공

밍글스에선 식사 전 각종 식재료들을 먼저 보여준다. 갖은 채소·과일과 말린 해산물 등이다. 감자 인절미와 당근 수프 등으로 시작된 미식 행렬은 매실고추장으로 맛을 낸 장어와 한우 육회, 감태에 곱게 싼 금태, 들깨와 참기름이 스민 보리새우와 ‘증편 타르트’ 등으로 이어진다. 전복, 해삼, 표고버섯, 연근, 한우 도가니 등이 들어간 시그니처 메뉴 ‘밍글링 팟’엔 3가지 만두와 도토리 소면이 있다. 인삼 완자, 치자튀밥, 생선보푸라기 죽, 청송사과 소르베 등 맛의 향연이 펼쳐진다. 지난해 11월 밍글스의 밥상이다. 한껏 멋 부린 테크닉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재료의 맛을 얼마나 잘 살려 극대화할 것인가를 추구한다”며 “한식의 근원과 기술은 존중하되, 오늘날 기술과 감성을 더해 밍글스만의 한식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한식의 ‘솔’(영혼)은?


“장이다. 장만 있으면 해외 어디서든 한식을 만들 수 있다. 지난해 3월 미국에서 출간한 ‘장: 더 솔 오브 코리안 쿠킹’을 만들면서 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지난 10일 이 책 한글판이 국내 출간됐다. 책 첫 장엔 여성 4명의 이름이 올라 있다. 이순배, 이영애, 조희숙, 정관 스님. 이순배는 모친이고, 이영애는 장모다. 강 셰프는 이들을 ‘스승’이라고 부른다. 두 어머니가 “제철 재료로 담백하게 빚은 순수 집밥”이 기실 지금의 그를 만든 근원이 아닐까. 강 셰프가 지은 ‘밍글스’(mingles)란 상호는 ‘서로 다른 것의 조화’란 뜻. 그가 향후 더 이룰 ‘조화’가 궁금해진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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