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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비·비자 등 외국인 유학생 지원 올스톱
킹달러에 생활고도···2차 탈출 러시 우려

[서울경제]

최근 미국 뉴저지주의 한 주립대학교 연구실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은 1년차 박사생 A(30대 초반)씨는 며칠 전 돌연 채용 취소를 통보 받고 패닉 상태에 빠졌다.

연구실에 정식 배정되기에 앞서 9주간 출근까지 한 상황이었는데 연구실에서 ‘모든 펀딩 절차가 동결(Freezing) 상태’라며 새로운 박사생을 받을 수 없게 됐다고 번복한 것이다. A씨는 “자국민은 몰라도 유학생들은 대부분 교수 펀딩(정부 연구 지원금 등)에만 의존하는데, 그 경로가 아예 막혀서 그쪽에서도 월급을 줄 수 없게 된 것”이라며 “제때 졸업하려면 얼른 다른 연구실에 재지원해야 한다. 연구실을 찾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학업 중단”이라며 좌절감을 토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기 행정부가 출범한 뒤 ‘반(反)이민 광풍’이 몰아치며 한인 유학생 사회에 ‘폭탄’이 떨어졌다. 트럼프 정부가 강력한 반이민 정책 기조를 펼치는 동시에 대대적인 연구 예산 삭감에 나섰기 때문이다. 박사(PhD) 과정에 필수적인 연구비·생활비 지원이 대폭 줄어든 것은 물론 현지 빅테크에서 일하려는 석사생들에 대한 취업 문턱까지 높아지며 미국에서 한국 학생들이 설 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이다. 여기에 외국인 혐오 정서 악화, ‘킹달러’발 생활비 부담까지 겹치며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이어 ‘2차 미국 탈출 러시’가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16일 서울경제신문이 미국 전역의 석·박사생과 학부생, 국내 유학 준비생 및 유학원 관계자 등 20여명과 진행한 인터뷰를 종합하면 최근 미국 현지에서는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각종 장학금·채용 지원 제도가 줄줄이 ‘올 스톱’ 되는 분위기다.

미국 워싱턴대 대학원 석사생인 김 모(28)씨는 “트럼프 취임 후 취직이 어려워졌음을 크게 체감한다”면서 “주변 박사 지인들 중에 연구비가 잘리거나 풀펀딩(6년) 대신 3~4년밖에 펀딩을 못 받아서 한국으로 돌아간 경우가 여럿”이라고 전했다.

구직 중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석사생 이모(27)씨도 최근 1차 서류부터 탈락하는 경우가 늘고 있음을 느낀다. 이씨는 “가장 큰 마이너스 요인이 ‘비자 스폰서십’ 요건 같다”면서 “이력서를 제출할 때마다 꼭 ‘비자 스폰이 필요하냐’고 묻는데, yes라고 하면 감점이 되는 듯하다”며 “한번은 필요하다고 체크하자마자 곧바로 ‘최소 기준 충족이 안 된다’며 탈락했다"고 전했다.

비자 스폰서십은 미국 기업이 외국인을 채용할 때 노동부 및 이민국에 비자 신청서를 제출하는 과정을 지원하는 제도다. 기업의 재정·행정적 부담이 가중되기에 우수 전문 인력을 데려오려는 빅테크 위주로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씨는 “가뜩이나 비자 스폰서십을 해주는 기업이 적은데, 정치적으로 불확실하다보니 그 곳들마저 지원 규모를 줄이는 것 같다”며 초조한 마음을 털어놨다.

현지 학부생들조차 외국인에 대한 채용문이 좁아졌음을 체감한다. 애리조나대 회계학 전공 김지원(21)씨는 “매년 학교에서 열리는 직업박람회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면서 “재작년에는 국제학생들을 지원해주고 뽑는 기업이 많았지만, 올해 행사에서는 대부분 선호하지 않더라. 시민권이 있는 친구들이 서류를 낸 9곳 중 절반 이상으로부터 합격한 반면 나는 딱 1곳에서만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14일(현지 시간) 컬럼비아 대학교 앞에서 시민들이 팔레스타인 출신 대학원생의 학생비자·영주권을 박탈한 트럼프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열고 있다. 앞서 미 연방정부 이민 당국은 지난 해 봄에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반이스라엘 시위를 주도했던 대학원생을 체포하며 반대 시위를 촉발했다. AFP·연합뉴스


이처럼 한국인 유학생들의 입지를 흔들고 있는 제도적 변화는 크게 세 가지다.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폐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 미국국립보건원(NIH)·국립과학재단(NSF)를 필두로 한 주요 연구기관 예산 삭감, 시시때때로 변화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민·비자 관련 정책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예술·과학계를 중심으로 각종 연구사업에 대한 정부 지원금이 뚝 끊긴 것은 물론, 연쇄적으로 민간 기업의 외국인 대상 장학금 및 채용 지원 제도도 쪼그라드는 상황이다.

최근 뉴욕에서 생명공학 분야 석사 과정을 마친 A(26)씨는 “일하던 연구실에서 NIH 삭감으로 큰 타격을 입어서 교수님께서 ‘앞으로는 비용보전(reimbursement)가 되지 않으니 지급받을 돈이 있으면 빨리 신청하라고 했다”면서 “예산 삭감 발표 직후 여러 연구실에서 박사생이나 박사생연구원(포닥)들을 해고했는데, 동양인의 비율이 높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캘리포니아 예술대학 졸업 후 대학원 지원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이소라(30)씨도 “트럼프 2기 정부는 DEI를 촉진하는 비영리단체 펀딩까지 중단했다”면서 “다양성이 기본인 아트 커뮤니티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이야기다. 결국 예술·과학 분야 전문가들이 주로 이용하는 O-1 비자 발급까지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걱정했다.

불안감이 확산하며 국내 유학원 업계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취재진이 찾은 서울 소재 유학원 5곳은 입을 모아 “고환율과 비자 문제로 유학 상담 문의가 눈에 띄게 줄었음을 체감한다”고 전했다. 목동의 한 유학원 원장 B 씨는 “코로나19 시기보다 유학 수요가 더 줄었다. 트럼프 리스크가 있는 데다 정착·수업비가 만만찮으니 일부 학생들은 다른 영어권 국가를 대안으로 찾는 추세”라고 밝혔고 강남 소재 유학원 원장 C 씨는 “예전이었으면 충분히 붙었을 사람도 학생 비자를 거절당하는 경우가 지난해 말부터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밖에 외국인에 대한 차별·혐오 정서가 확산하며 느끼는 심리적 압박, 치솟은 환율에 따른 재정적 부담까지 더해지며 미국 유학생 수가 코로나 19에 이어 재차 하락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코로나 이전 5만 명을 훌쩍 넘겼던 한국 유학생 수는 2020~21년 3만 9491명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 4만 3149명까지 회복한 상태다.

최근 기술 패권을 두고 각국이 과학·기술·공학·수학(STEM)뿐 아니라 인재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가운데 급성장하는 기술 산업을 제일 쉽게 접할 수 있는 미국 유학생이 줄어들게 되면 한국의 경쟁력도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DEI 정책
=다양성(Diversity)·형평성(Equity)·포용성(Inclusion)의 약자로, 인종·성 등의 소수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부여해 포용적인 환경을 갖춰가자는 정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월 취임 후 바이든 정부의 DEI 정책을 종료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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