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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원자력과 핵무기, 핵물질 등을 담당하는 에너지부 청사. 워싱턴/UPI 연합뉴스

미국이 원자력과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협력이 제한될 수 있는 ‘민감국가’ 명단에 동맹국인 한국을 추가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정치·외교, 기술 협력 등에서 상당한 후폭풍이 우려된다.

미국 에너지부는 14일(현지시각) 연합뉴스의 확인 요청에 “에너지부는 광범위한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SCL)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전 정부(바이든 행정부)가 2025년 1월 초 한국을 에스씨엘 내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 국가’(Other Designated Country)에 추가했다”고 밝혔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에는 정보방첩국이라는 정보기구가 별도로 있는데 정부 내 17개 정보기관, 국가핵안보청(NNSA)과 협업해 민감국가를 지정하고 관리한다. 민감국가는 단계에 따라 ‘기타 지정국가’ ‘위험국가(중국·러시아 등)’ ‘테러지원 국가’(북한, 시리아, 이란 등)로 구분된다. 민감국가 명단은 정식으로 공개되지는 않고 매년 수정되는데, 미국의 동맹인 한국이 여기에 포함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왜? 한국 핵무장론이 도화선

미국 에너지부는 바이든 행정부 말기에 어떤 이유로 한국을 리스트에 추가했는지는 이번에도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 핵무장론에 대한 미국의 경계감이 이유라고 지적한다. 2023년 1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대한민국이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이후 미국 정부에서는 한국 핵무장론을 계속 주시해왔다. 게다가 2024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한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할 것’이라며 보수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핵무장론, 핵자강론 목소리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이와 함께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바이든 행정부는 윤 대통령의 비상 계엄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핵무장 여론을 고조시키고 이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불확실하다고 판단한 에너지부 산하 정보기구의 판단,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대한 실망감과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금 국제적으로 한국은 핵확산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로 지목되고 있고, 그런 상황을 고려해 에너지부 산하 정보기구를 비롯한 여러 기구들이 핵확산 우려 때문에 한국을 리스트에 추가했을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미국 행정부와 다른 점이 있더라도 핵확산을 허용할 것이라는 한국 일부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바이든 정부가 지정 조치를 취했다면 그것은 한국의 핵무기 능력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지원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차원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자력 분야 전문가인 이춘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초빙전문위원도 “이번에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이유는 한국에서 확산되는 핵무장론에 대한 미국 당국의 경고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국 핵무장론을 정조준했다기보다는 한국 원전 수출을 둘러싼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갈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식으로도 설명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에너지부의 정보기구의 결정에 기업의 이해관계가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되돌릴 수 있나, 기술 협력에 어떤 영향 미칠까?

일정대로 오는 4월15일부터 한국을 ‘민감국가’로 추가한 명단이 시행되면 한미간 원자력과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협력에 제한이 생기고, 한미 동맹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너지부 대변인은 이번 답변에서 “목록에 포함됐다고 해서 반드시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정국 가운데는 에너지, 과학, 기술, 테러방지, 비확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기적으로 협력하는 국가들도 포함돼 있다”며 한국의 우려를 달래려 했다. 하지만 에너지부 규정에 따르면 민감국가 연구자들은 에너지부 소속 연구소 등 시설이나 프로그램, 정보에 접근하려면 특별 승인을 받아야 하고 “방문과 협력은 사전에 내부 검토를 거친다”고 되어 있다. 내부 검토를 거쳐 제한을 가할 수 있다는 의미여서, 한국과 미국의 과학기술 협력이 제한되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명단은 미국이 ‘한국의 핵확산 우려가 있다’는 분류를 한 것이기 때문에 약한 단계의 제약이 시작된 것도 심각한 문제다. 동맹을 명단에 넣었다는 것 자체가 한국에는 큰 여파를 미칠 것”이라고 짚었다. 위 의원은 “미국 당국자들에 확인해 보니, 이 민감국가 명단은 미국 정보당국이 수개월 동안 검토해서 취한 조치이고 되돌리기 어렵다고 한다”며 “에너지부가 ‘낮은 단계이고 문제가 크지 않다’고 강조하면서도 이에 대한 협의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 명단에서 한국을 빼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 의원은 1년에 미국 에너지부 산하에 방문하는 한국 과학자가 2천~3천명 정도인데, 4월15일 이후에는 일일히 사전에 서류를 제출해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게 되고, 승인이 거부될 수 있으며, 최첨단 기술이나 민감 기술에 대해서는 접근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이미 명단은 연구 현장에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미국 국립연구소의 한 연구자는 “4월15일에 한국이 민감국가로 지정된 명단이 효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현재 확정된 상태이고, 국립연구소들 외에 협업하는 대학 연구자들에게도 이미 공유되었다”며 “여름에 한국을 방문해야 할 연구자의 방문 절차가 까다로워져서 그에 따른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뒤늦게 파악, 한미동맹 영향은

한국이 민감국가로 지정된 명단이 다음달 15일부터 그대로 시행되면 한미간 원자력·첨단기술 협력에 제약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한미동맹의 신뢰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등급에서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에너지부 ‘민감국가’ 명단에 테러지원국이자 불법 핵무기 개발 국가인 북한과 한국이 유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핵보유국)로 반복적으로 지칭하는 가운데, 미국이 한국과의 원자력 협력을 제약하는 모습이 연출될 경우 안보적 차원에서도 북한에 부정적인 시그널을 줄 수 있다.

정부가 두 달 가까이 관련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1월 초 바이든 정부가 이런 조치를 취했는데도 정부는 최근까지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답변에서 최근에 비공식 경로로 관련 동향을 알게 됐으며 미국 측에 문제를 제기한 뒤 에너지부가 내부에서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소통이 없었고, 정부도 자체적으로 이런 동향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 장관이 국회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하지 않은 어떤 요인 때문에 생기는 일회성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도 말했는데, 상황을 과소평가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정부가 4월15일까지 명단을 되돌릴 수 있다고 강조해온 만큼 그 말에 책임을 지고, 외교 역량을 발휘해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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