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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해 준 업체 돌아가며 취업
“인력난 호소해 자녀 소개” 주장
산업은행. 연합뉴스

지난 6일 감사원은 국책금융기관 한국산업은행의 한 지점장이 대출 브로커의 부탁을 받아 대출이 어려운 회사 7곳에 286억원을 대출해줬다가 152억원의 손실을 발생시키는 등 그와 관련한 여러 문제가 적발됐다고 발표했다.

그가 지점장으로 재직한 2016년부터 최근까지 그의 딸과 아들은 7번이나 취업에 성공했다. 이들이 취업한 곳은 모두 ‘아빠’가 대출을 일으켜준 회사들이었다. 감사원보고서에는 이들의 취업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보고서를 보면 한국산업은행 지점장은 대출을 취급한 7개 회사의 대표이사 또는 인사담당자에게 자신의 딸과 아들을 소개해 채용을 청탁했다.

딸은 그중 한 회사인 ㄱ사에 2018년 취업해 다니다가 2019년 1월12일 퇴사했다. 딸은 일주일 뒤인 1월21일 또다른 대출 업체인 ㄴ사에 입사했다가 3주도 안 된 2월28일 퇴사했다. 이어 같은 해 9월16일 또 다른 업체 ㄷ사에 입사했다가 석달여 만인 12월24일 퇴사했다. 퇴사한 당일 그는 ㄹ사에 입사했다. 이 딸이 2016년~2019년 다닌 5개의 회사 중 4곳은 아버지가 거래해 준 업체였다.

아들도 비슷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거래한 ㅁ사에 2016년 12월13일~2019년 3월1일까지 다녔다. 아들은 퇴사 3일 뒤인 같은 해 3월4일엔 ㅂ사에 입사해 지금까지 근무 중이다. 아들이 입사하고 두 달 뒤인 2019년 5월3일 지점장은 ㅂ사에 65억원을 신규로 대출해줬다.

지점장의 자녀는 이렇게 부친 관련 업체들에서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며 총 3억2311만원의 급여를 수령했다는 게 감사원의 조사 결과다.

대출 과정에도 문제가 많았다. 자녀들이 취업한 회사를 비롯해 여러 회사들에 지점장이 승인해준 대출 중에 다수는 부실로 이어졌다. 지점장은 대출 과정에서 부하 직원이 난색을 표하자 “왜 이렇게 질질 끄느냐”며 재촉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점장은 대출 심사 중인 한 회사에 대해 “회사에 대해 (내가) 잘 알고 있다. 이 회사 경영정상화를 지원할 것이고 회사가 살아날 것 같다”고 하면서 직원에게 무리한 대출을 지시했다. 이 과정에 ‘대출 브로커’가 껴 있었고, 이 브로커는 수수료를 챙긴 것도 감사결과 드러났다.

지점장은 취업 청탁 문제가 불거지자 “거래업체에 자녀가 취업한 것은 대출 실행 등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는 취지의 소명 자료를 제출했다. 지점장은 “해당 업체들이 인력난을 호소해서 당시 미취업 상태이던 자녀들을 소개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자녀들이 아빠의 직무 관련 업체에서만 입사·퇴사를 반복한 것이 이례적이고, 취업과 대출 시차가 6개월 이내에 불과한 점 등을 들어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감사원 청사. 김혜윤 기자 [email protected]

감사원은 “감사가 착수되자 관련 업체들에게 ‘대출 브로커가 아닌 다른 연결로 대출받은 것처럼 말을 맞춰달라’고 부탁하는 등 지점장은 은폐를 하려 했다”고 밝혔다. 또 “지점장의 강압적 지시로 대출가능액을 만들어내기 위해 ‘여신지침’을 위반할 수밖에 없었다”는 부하직원의 진술을 확보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감사원은 산업은행 회장에게 “대출모집인의 알선을 받아 부실징후가 있던 업체에 부당하게 대출하여 한국산업은행에 손실을 초래하고 자녀들을 직무 관련 업체에 수차례 취업시킨 지점장을 징계처분하라”고 통보했다.

송경화 기자 [email protected]

산업은행 홍보물. 산업은행 누리집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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