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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원의 점복에 대한 가십성 보도들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자신의 계획에 불리한 점괘에 대해서는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했다는 대목이다. 조선 시대 역모 혐의자들은 반역이 실패할 것이라는 점괘를 받으면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몇번이나 점을 치고는 했다. 이는 운명에 대한 순응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들의 욕망에 대한 초자연적인 확신이다.
지난해 12월 경기 안산시 상록구 소재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차린 점집 앞에 제사 용품들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종교학)

12·3 내란사태 이후 나는 예전에 연구했던 조선 시대 역모 사건 기록을 다시 훑어보고 있다. 종교학자가 왜 그런 걸 공부했냐면, 체제를 전복하려는 반역자들의 언어와 행위에서 종교적인 상징체계를 찾으려는 관심 때문이었다. 왜 지금 그것을 다시 보느냐면, 오늘날 내란 혐의자들의 행적에서 느낀 기시감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조선왕조 시기의 역모, 즉 반란 모의 사건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한 자료가 남아 있다. 17세기 이후 수십건의 역모 사건에 대한 고발, 수사, 신문, 재판, 처벌 과정을 담은 추국(推鞫) 문서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고변서(告變書)라고 불린 고발장, 압수된 증거 문서들, 관련자들의 진술서, 판결문에 해당하는 결안(決案)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번 사태 동안 우리가 언론을 통해 매일 접하는 내용과 유사한 성격의 문헌들인 셈이다.

전근대 왕조 국가도 현대 공화정과 마찬가지로 국가 전복을 노리는 반란의 주모자에 대해서는 사형을 포함한 극형에 처했다. 다만 조선의 경우에는 반란 모의 단계에서 적발되더라도 그것을 실행한 것에 준하는 강력한 처벌을 했다는 차이가 있다. 반란 가담자는 미수에 그치더라도 엄히 처벌했다는 점은 오늘날과 비슷하다. 반역자들의 음모가 성취되면 그들 자신이 권력을 잡아버린다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성공한 반란은 처벌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밝혀진 내란 참여자 가운데 조선 시대 모델에 가장 가까운 인물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다. 그는 부하 군인을 성추행하여 불명예 제대한 뒤 사주를 전문으로 하는 역술인으로 활동하며 군내 사조직을 통해 내란 모의 과정에 깊이 개입하였다. 특히 경찰이 입수한 그의 수첩에는 정치인, 언론인, 방송인 등을 반국가세력으로 지목해 ‘수거’하여 숙청하겠다거나, 북한의 공격을 유도하겠다거나, 대통령이 장기 집권 후 후계자를 지목할 것이라거나 하는 초현실적인 계획들이 담겨 있었다. 조선 시대 기록에서 ‘괴서’ 또는 ‘흉서’라고 언급되는 이런 문서들에는 반역자들의 모의 내용이나 세계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곤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가 전근대의 반역자들과 닮은 또 다른 측면은 점복 등 술수에 심취했다는 점이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사주팔자와 관상을 근거로 조언했다”고 진술했다는 보도도 있다. 그와 자주 ‘나랏일’을 상담했던 무당 ‘비단아씨’의 증언에 의하면 노상원은 내란 관련자들의 얼굴과 생년월일로 신점을 치며 계엄 계획을 세웠다. 이 모든 것은 조선 시대 역모 사건에서 흔하게 일어난 일이다. 17세기의 몇몇 사건 기록을 살펴보면, 이 시대의 반란 모의자들은 스스로 반역의 길흉에 대한 점을 치거나, 유명한 점쟁이를 초빙해 목욕재계를 하고 점사를 받거나, 왕으로 추대할 인물의 사주를 풀어보거나, 국운을 점쳐서 거사일을 고르거나, 서로의 관상을 보면서 자신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 확인하곤 하였다.

노상원의 점복에 대한 가십성 보도들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자신의 계획에 불리한 점괘에 대해서는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했다는 대목이다. 조선 시대 사례에도 역모 혐의자들은 반역이 실패할 것이라는 점괘를 받으면 다른 술사를 찾아가 다시 묻거나,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몇번이나 점을 치고는 했다. 점복을 다루는 이런 태도는 운명에 대한 순응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들의 욕망에 대한 초자연적인 확신이다.

‘억압받는 민초들의 저항’이라는 널리 알려진 이미지와는 달리 조선 시대 역모 참여자의 다수는 중앙 정치에서 밀려난 엘리트들이었다. 그들은 좌절된 권력 획득의 욕망을 비현실적인 반란 계획과 비밀스러운 점복 행위로 표출하였고, 전근대 국가는 그것만으로도 그들을 철저히 처단하였다. 이번 내란의 위험성은 그런 과거의 반역자들과 유사한 세계 인식을 지닌 인물들이 행정부와 군을 장악하고 입법부와 사법부를 실제로 무력화하려 한 데 있다.

민주공화정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한 21세기의 반역자들이 무능하고 저열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악용한 권력을 박탈한 뒤의 조치들이다. 내란 참여자들이 믿은 바와는 달리, 국운은 점복으로 예측하거나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것이 아니다. 몇 사람의 저열한 찬탈자가 아닌 주권자인 시민의 집단적인 의지가 온전하게 구현되는 제도를 만들어 나간다면 이 국가의 운명은 길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만약 민주주의를 배신한 반역자들의 처단에 실패한다면 흉한 미래가 기다릴 것이다. 점괘를 뽑아보니 그렇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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