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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앱은 ‘코로나 보릿고개’보다 더 무서웠다. 국민연금까지 광고비로 털어 넣던 박천옥씨는 결국 모텔을 내놓았다. 그는 “숙박앱만 없었어도 더 버틸 수 있었을 것”이라며 가슴을 쳤다.
“오장육부 다 빼놓고 하는데도 더는 못 버티겠어요.”

박천옥(70·여)씨의 얼굴에는 웃음기 한 점 없었다. 22년 차 숙박업자인 그는 최근 모텔을 매물로 내놓았다. 매출 급락이 엎친 그를 고정비용 급등이 덮쳤다. 주적은 숙박앱 광고비였다. 박씨는 ‘야놀자’와 ‘여기어때’에 각각 384만원과 242만원의 광고비를 낸다. 매출의 10%인 수수료까지 더하면 월 매출(5000만원)의 22.5%(1126만원)가 빠진다.

그는 ‘공격적 광고’로 상위에 노출된 경쟁업소가 손님을 빼앗아 가자 광고비를 대폭 늘렸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급등한 공과금·세탁비·대출이자 등을 내고 직원 월급까지 챙겨주면 허탕치는 달이 허다했다. 그는 국민연금(월 75만원)까지 광고비로 썼지만, 비상계엄 탓에 연말 특수까지 실종되자 결국 ‘항복 선언’을 했다. “숙박앱만 떠올리면 욕이 나와요. 매출의 5분의 1을 가져가는 게 말이 됩니까? 이대로면 공멸할 거예요.”

플랫폼에 대한 자영업자의 원성이 갈수록 커진다.

방값 10%에 광고비 이중과금…‘현대판 소작인’ 된 숙박업주들
모텔을 운영하는 함장수씨. 플랫폼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달 수백만원씩을 광고비로 지출한다.
플랫폼에 구조적으로 종속되면서 매달 매출액의 수십%를 바치는, ‘현대판 소작상(商)’으로 전락해서다.

충남 천안의 함장수(57)씨는 지난해 1~10월 ‘여기어때’를 통해 월평균 7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 금액의 41%(광고비 220만원, 수수료 70만원)가 매달 그 업체에 건네진다. 비싼 광고를 하는 건 고액광고 업주에게만 제공되는 ‘할인쿠폰’ 때문이다. 220만원짜리 광고 시 75만원 이내 범위에서 할인쿠폰이 지급된다. 당연히 고객은 할인쿠폰이 붙은 업소를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쿠폰을 숙박앱이 마음대로 발행한다는 점. 그의 ‘쿠폰 캘린더’를 확인해 보니 요일별로 발행되는 쿠폰 수와 액수(3000~1만원)가 천차만별이었다. “쿠폰은 업소가 발행하고 붙여야지, 왜 플랫폼이 마음대로 합니까. 쿠폰을 없애야 합니다. 생태계를 왜곡시키고 숙박업소의 목줄을 쥐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어요.”

모텔을 운영하는 김진한씨. 플랫폼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달 수백만원씩을 광고비로 지출한다.
서울 창천동의 김진한(42)씨는 연일 신종 광고 출시를 통해 광고 경쟁을 부추기는 숙박앱의 행태를 비판했다. “신종 광고가 하도 많아서 월 700만원 쓰는 건 어렵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월 1000만원도 쓸 수 있어요.”

김씨가 이용하는 ‘울트라’ 상품 광고비만 월 600만원. 특정 단어 검색 광고도 있다. 일주일에 21만원을 내면 고객이 ‘신촌’이란 단어를 검색했을 때 상위에 노출된다는 식이다. ‘신촌역’ ‘서울신촌’ ‘신촌모텔’ ‘신촌호텔’(이상 주 2만8000원) 등 유사 단어까지 더하니 월 163만원이 추가됐다. 도합 763만원이다.

이른바 ‘객실형 상품’도 불만의 대상이다. 광고비 대신 그날의 첫 객실 판매 대금을 플랫폼이 가져간 뒤 업소에 할인쿠폰이나 포인트를 지급하는 형태다. 하지만 포인트는 유효기간이 1년인 데다가 플랫폼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한 숙박업주는 “객실형 상품은 플랫폼 이탈 방지 또는 고액광고 유도용 미끼상품”이라며 “플랫폼은 입점업체를 파트너라고 하지만, 숙박업주 중에서 플랫폼을 파트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밝혔다.

모텔 업주 김영숙(71·여)씨는 “광고비 외에도 꼬박꼬박 매출의 10%를 수수료로 가져가면서 해주는 건 하나도 없다. 광고비와 수수료 중 하나는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호소했다.

박경민 기자
“숙박앱은 고용을 창출한다고 하지만, 숙박업 종사자가 훨씬 더 많습니다. 사회의 관심과 정부의 개입이 절실합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가 숙박앱과 관련해 제재 절차에 착수한 건 쿠폰 부여 방식 하나뿐이다. 신종·변종 광고상품에 대해서는 지켜보고만 있다. 이주한(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광고가 워낙 다양한 데다 계속 변하는 바람에 업주들은 자신이 계약한 광고상품의 내용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며 “그러다가 노출 순위가 떨어지면 더 비싼 광고상품에 끌려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숙박앱이 정보의 불완전성을 이용해 불공정거래를 일삼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놀자’ 측은 “수수료율이 최고 6.5%로, 업계 최저 수준”이라며 “광고도 자율 선택이며 쿠폰 결합형 상품은 판매가 종료됐다”고 밝혔다. ‘여기어때’ 측은 “한시적 거래 수수료 인하 등 상생 노력을 지속하고 있으며 업계와 동반 성장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과점 탓 자율규제 한계…EU·일본은 ‘온플법’ 도입 윤석열 정부의 플랫폼 ‘자율규제’ 입장에 대한 전문가들의 비판 목소리가 높다. 이미 소수 업체가 시장지배력을 갖는 독과점 형태로 자리 잡고 있어서다. 김윤정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독과점적 시장 형성으로 수수료 등 담합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플랫폼의 선의에 기초한 자율규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온라인플랫폼거래공정화법(이하 온플법) 제정 등을 통한 강제 규제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온플법 제정안은 ▶자영업자 등에 대한 단체협상권 부여, ▶수수료 상한제 및 영세 업체 우대 수수료율 적용, ▶판매대금 일부의 신탁 또는 보증보험 가입 의무화, ▶표준계약서 및 분쟁조정협의회 도입, ▶불공정거래행위 유형 구체화 및 손해배상책임 부과 등 조항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플랫폼 기업들은 “미국 빅테크 등 해외 플랫폼과 경쟁하고 있는 국내 플랫폼 기업에 역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 비상임위원인 신영수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플랫폼 시장 특성상 한번 패권이 생기면 시정하기가 어렵다”며 “플랫폼 규제를 적절히 하지 않으면 오히려 국내 플랫폼 생태계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도 “규제 도입은 지속적인 경쟁을 유지하는 동시에 빅테크의 급속한 확장을 막는 안전장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독일·영국·일본 등은 이미 온라인 플랫폼 규제법을 만들어 시행 중이다. EU는 2019년 ‘EU 온라인 투명성·공정성 규칙’을 제정해 불공정거래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모든 플랫폼의 기본 준수사항을 계약약관에 반드시 기재하도록 규정했다. 일본도 2020년 특정디지털플랫폼법을 도입해 대규모 플랫폼이 입점업체와 소비자에 이용 조건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했다.

EU는 플랫폼 독과점 규제와 관련해서도 2022년 디지털시장법(DMA)을 만들었다. 대규모 플랫폼을 사전 지정해 금지행위 위반 사건이 발생하면 입증책임을 플랫폼에 묻는 게 핵심이다. 독일의 경쟁제한방지법, 영국의 디지털시장의경쟁과소비자법(DMCCA)도 이와 비슷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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