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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집회의 정치학
100여 년 전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기 위해 한마음으로 “대한독립”을 외쳤던 3·1절에 대한민국은 둘로 쪼개졌다. 이날 서울 도심 한복판에선 윤석열 대통령 반탄(탄핵 반대) 집회와 찬탄(탄핵 찬성)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다만 규모는 예상과 달랐다.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열린 반탄 집회엔 12만 명(경찰 추산)이 몰린 데 반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직접 연단에 선 찬탄 집회는 1만8000여명에 그쳤다. 이는 ‘찬성 60 대 반대 35’라는, 최근의 윤 대통령 탄핵 여론과 정반대다. 광장 정치에서 진보 진영에 늘 밀렸던 여권은 한껏 고무된 표정이면서도 중도층 여론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 또한 적지 않다. 반면에 야당 역시 ‘반이재명 정서’로 인해 장외 동력이 떨어지는 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열린 반탄 집회는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광화문 집회와 세이브코리아가 여의도에서 주최한 국가비상 기도회로 나눠 열렸다. 경찰 추산 기준으로 각각 6만4000명과 5만5000명이 모여 반탄 집회 규모는 약 12만 명에 이르렀다.

반탄 집회가 부산역(2월 1일, 1만3000명)→동대구역(2월 8일, 5만2000명)→광주 금남로(2월 15일, 3만 명)→대전 보라매공원(2월 22일, 1만7000명) 등 전국을 누비며 세를 키워 가자 여당 의원도 대거 연단에 올랐다.



세 불린 반탄, 주춤한 찬탄?…“광장만 좇다간 민심 놓친다”
지난 1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은 같은 날 광화문 인근 열린송현녹지광장 일대에서 열린 탄핵 찬성 집회. 김종호 기자, [뉴스1]
여의도 집회에 김기현·추경호·윤재옥·장동혁 의원 등 38명이 ‘개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무대에 오른 의원들은 “탄핵은 절대 안 된다”(김기현 의원), “헌법재판소는 일제 재판관보다 못하다”(장동혁 의원)며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TK(대구·경북)의 한 의원은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올라온 버스만 10대가 넘어 안 갈 수 없었다”고 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광화문 집회에도 나경원·윤상현·박대출 의원 등 13명이 참석했다. 강승규 의원을 제외한 12명은 이날 광화문과 여의도 집회를 모두 찾았다. 광화문 집회 발언은 더 거칠었다. “이재명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간첩 내통세력”(강승규 의원), “공수처와 선관위, 헌재 모두 때려부숴야 한다”(서천호 의원) 등이었다.

이처럼 대규모 대중 동원에 잔뜩 고무된 여권은 헌재를 겨냥한 거친 언사를 쏟아내면서도 정작 지난 1일 국민의힘 공식 코멘트는 “헌재는 국민 통합의 보루”였다.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헌재가 모든 정치적 논란을 배제하고 헌법정신을 지키며 국가 공동체의 통합을 위한 올바른 결정을 내릴 것을 기대한다”고 썼다.

김경진 기자
이는 헌재의 탄핵 인용 가능성에 대비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동안 ‘헌재 때리기’에 앞장섰던 권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 최후진술을 하루 앞둔 지난달 24일부터 “(헌재) 결과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며 한발 물러섰다. 심지어 장외집회 규모가 커질수록 탄핵 인용 후 조기 대선 체제로 돌아가는 것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 관계자는 “탄핵 기각을 희망하지만, 탄핵 인용 시 당이 선회할 명분도 미리 준비해야 탄핵 책임론과 갈등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1일 서울 안국역 부근에선 야 5당 공동주최로 열린 찬탄 집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 대표는 연단에 올라 “아마 지난해 12월 3일 내란의 밤이 계속됐더라면 제가 연평도 가는 그 깊은 바닷속 어딘가쯤에서 ‘꽃게 밥’이 되었을 것”이라며 “여러분이 목숨 걸고 싸워주셔서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순간에도 여전히 주권자 국민을 배반하고 민주공화국의 기본 질서를 부정하며 내란 반동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있다. 이들은 결코 보수일 수 없고 수구조차 못 되는 반동”이라며 여권을 겨냥했다. 이 대표가 장외집회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은 것은 70여 일 만이다.

하지만 이날 찬탄 집회 인원은 경찰 추산 1만8000명으로 광화문·여의도에서 열린 반탄 집회의 6분의 1 수준에 그쳤다. 2일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반탄 집회 참여를 “막가파식 결사옹위”(황정아 대변인)라고 공격하면서도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이 대표가 집회 전날(2월 28일) 페이스북에서 “뜨거운 함성으로 안국역 사거리를 가득 채워 달라”고 썼고, 당일 민주당 현역 의원이 무려 130여 명이나 참석했지만 대중 동원력에선 예상을 밑돌았기 때문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를 필두로 한 총력전에도 기세가 눌린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이처럼 찬탄 집회의 수적 열세가 이어지자 야권에선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야권 관계자는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장외 집회는 물론, 탄핵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지 않았냐”며 “이런 여론이 헌법재판소 판결에도 일부분 영향을 미쳤을 터인데, 이번에는 예상 밖 흐름이라 우리도 안심할 수만은 없다”고 했다.

일각에선 중도층 내 ‘반이재명’ 정서가 찬탄 집회 열기를 끌어올리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여론조사와 판이하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5~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전화면접 방식으로 조사(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한 결과, 탄핵 찬성 응답은 59%, 반대 응답이 35%였다. 특히 중도층의 70%는 탄핵에 찬성했고, 23%는 탄핵에 반대했다. 전직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이 대표가 직접 참석을 독려했음에도 이 정도만 모인 건, 결국 이 대표에 대한 절대적 지지가 높지 않다는 것 아닌가”라며 “현재 야권 지지율 1위 후보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상황이 달랐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 지도부는 현 시점 거리 투쟁 약화는 예상했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을 체포·구속한 이후부터 법적 절차로 넘어가며 광장 열기가 한풀 꺾일 수밖에 없지 않나”라면서 “현재 민주당 지지층으로선 탄핵을 기정사실로 여겨 거리로 나올 유인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국민의힘으로선 광장에서 분출되는 여론을 무작정 따라가다가는 오히려 발목이 잡힐 수 있다”면서 “반대로 민주당은 광장의 경고를 외면했다가는 더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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