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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집에서 병치레를 하다가 가족들의 돌봄을 받기 어려운 순간이 오면 요양병원에 들어가기.’

한국 노인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전형적인 경로다. 실버타운에 미리 입소한다 해도 대부분 시설이 건강한 노인만 입소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고 있어 ‘주거지 단절’은 불가피하다.

최근 노년기의 주거지 단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지속 돌봄 은퇴자복합단지(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가 주목받고 있다. 은퇴자복합단지의 가장 큰 특징은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독립주거시설부터 식사 등이 제공되는 생활지원주거시설, 요양병원, 호스피스까지 각 단계별 돌봄 시설이 한 자리에 모여있다는 점이다. 건강할 때부터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한 곳에서 거주할 수 있는 ‘지역사회 지속거주(AIP·Aging in Place)’ 개념을 실현할 수 있는 셈이다.

미국 최대의 은퇴자 복합단지인 ‘선시티’ 애리조나 전경. 선시티 홈페이지 갈무리


은퇴자복합단지는 미국에서 먼저 보편화됐다. 고령자 돌봄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민간 건설사들이 주도했다. 현재는 미국 전역에서 2000개 이상의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대표적인 시설이 미국 건설사 델웹이 운영하는 ‘선시티’다. 애리조나주 피닉스 근교에 세워진 선시티는 서울 여의도 13배 면적인 약 38㎢(약 1150만평) 대지에 4만명 이상이 살고 있다. 입주민들은 단독주택이나 빌라에 살면서 골프장, 원형극장, 수영장 등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을 이용하다가 건강이 악화되면 단지 내에 있는 최고 수준의 대학병원과 요양병원 등으로 이동해 돌봄을 받을 수 있다.

미국에선 대학이 운영하는 은퇴자복합단지도 활성화돼있다. 오크해먹은 미국에서 네 번쨰로 큰 공립대학인 플로리다 대학교와 연계한 고령친화적 주거지로, 2004년 조성이 완료됐다. 대학에서 직접 운영하는 의료·교육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도심 외곽 지역에 있음에도 1000명이 넘는 입주자들이 생활하고 있다.

미국의 은퇴자 복합단지가 민간 주도로 조성된 반면, 일본은 공공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저출생 고령화에 대응하는 ‘지방창생정책’의 하나로 은퇴자복합단지 건설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2014년 ‘마을·사람·일 창생법’을 제정하고, 2015년부터 ‘생애활력마을’이라는 이름의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2021년 기준 151개 지자체가 참여할 정도로 사업이 빠르게 활성화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은퇴자 복합단지 건설에 나선 이유는 도쿄 등 대도시의 고령 인구를 소멸 위기인 지방으로 이주시키려는 목적이 크다. 지역 내 빈집을 활용해 고령자 친화적인 주택을 공급하고, 지역주민과의 교류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저출생 고령화에 따른 지역 소멸 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한국 정부도 비슷한 정책을 검토 중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2020년 발간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는 “대도시(수도권) 베이비부머가 이주해서 지역의 다양한 세대와 교류하고,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는” 한국판 은퇴자복합단지 조성이 과제 중 하나로 포함됐다.

문제는 은퇴자복합단지로 고령화와 지방 소멸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이 실현가능하냐는 점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노년기에 접어든 베이비부머 세대는 의료시설과 편의시설이 밀집한 수도권을 떠나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며 “아직까지 은퇴자 복합단지가 구상 단계에 머물러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토지주택연구원이 2022년 수도권 베이비부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른, 은퇴 후 또는 가까운 미래에 거주하고 싶은 곳으로 수도권 대도시를 꼽은 이들이 절반(54.8%)을 넘었다. 수도권 중소도시(21.3%)까지 합치면 75% 이상이 수도권 거주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의료시설 등 인프라가 갖춰질 경우 비수도권으로 이주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베이비부머도 62.7%로 높은 편이었다.

서울시니어스타워가 운영 중인 고창웰파크시티 전경. 고창웰파크시티 홈페이지 갈무리


성공 사례도 있다. 국내 최대 실버타운 운영사 서울시니어스타워는 전북 고창군 40만평 부지에 ‘고창 웰파크시티’를 조성했다. 입주자 60% 이상이 수도권에서 고창으로 이주한 은퇴자다. 관광 매력도가 높은 대형 온천을 중심으로 석정웰파크병원(2015년)과 석정웰파크요양병원(2023년) 등을 차례로 개원하면서 인프라를 다져나간 것이 비결이다.

다만 2009년 기공식 이후 16년이 넘도록 아직도 흑자전환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고창 웰파크시티 관계자는 “수도권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인프라를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입소문을 타면서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면서도 “초반에 발생한 미분양 물량으로 수익 회수가 되지 않은데다 임대료는 크게 올리기 어려운 상황이다보니 수익구조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긴 호흡의 정책 집행과 과감한 재정 지원이 동반돼야 은퇴자복합단지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책 <실버타운 사용설명서>를 쓴 이한세 박사(스파이어 리서치&컨설팅 대표)도 “실버타운 운영 노하우가 있는 회사도 500가구 규모의 분양 물량을 소진하는데 10년이 넘게 걸렸다”며 “단순히 지방에 의료시설 한 두개를 갖춰놓는 것만으로 수도권 은퇴자들을 끌어당기긴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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