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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환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대령)이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권혁철 | 통일외교팀장

2017년 11월13일 오후 3시15분 판문점, 군용 차량을 몰고 내려온 북한군 1명이 차에서 내려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뛰었다. 그를 쫓아온 북한군 4명이 권총과 소총을 쏘기 시작했다. 총을 맞고도 달리던 북한군은 군사분계선 이남인 자유의 집 서쪽 담장 아래 쓰러졌다.

오후 3시31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는 군사분계선 남쪽 50m 지점에서 꼼짝 않는 북한군 1명을 발견했다. 오후 3시55분 권영환 경비대대장(중령)은 중사 2명과 함께 낮은 포복으로 북한군에게 접근했다. 당시 부사관 2명은 다친 북한군을 구출하고 권영환 대대장은 이들과 12m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작전을 지휘하고 엄호했다. 부사관 2명이 북한군을 권 대대장이 있는 곳까지 포복을 하여 데리고 온 뒤 대대장과 함께 북한군을 차량에 태웠다.

당시 북한군 구출 상황을 군사분계선 이북 북한군 초소에서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무척 위험했다. 권 대대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군을 구하기 위해 부하를 보내지 않고 왜 직접 들어갔냐”는 질문에 “차마 아이들(병사들)을 보낼 수는 없었다”고 대답했다. 북한군 총탄이 언제 다시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의무 복무하는 병사 대신 직업군인인 대대장과 부사관 2명이 구출 작전에 나섰다는 것이다. 당시 유엔사령부는 “권 대대장이 굉장한 용기를 보여줬고 현장 대처도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권 대대장은 7년이 지난 뒤 다시 용기를 내야 했다. 그는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4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대령으로 진급한 그는 지난해 12·3 내란사태 때 합동참모본부(합참) 계엄과장이었다. 권영환 과장은 이날 청문회에서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용기를 내서 말씀드리겠다”고 밝힌 뒤 증언을 이어 나갔다.

권 과장은 지난해 12월4일 새벽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 계엄사령관이었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실무편람을 펼쳐 “계엄법에 따라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박안수 계엄사령관이 “일(계엄)이 되도록 해야 하는데 일머리가 없다”고 면박을 줬다.

당시 ‘일’이 안 된 것은 계엄과장이 일머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을 주도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까지 육군참모총장에게 육군 군령권(군사작전지휘권)이 있어,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이 맡았다. 그때는 계엄 담당 부서도 육군본부 민사심리전참모부 계엄과였다.

1991년 국군조직법이 개정되면서 합동참모의장(합참의장)이 군령권을 쥐고 국군 전체 작전지휘관이 됐다. 이후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게 됐다. 계엄 담당 부서인 계엄과도 육군본부에서 합참으로 소속을 옮겼다. 합참 계엄과는 ‘전시’에 대비한 계엄 훈련을 하는 부서다. 합참은 전시에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령관(합참의장)을 보좌하는 훈련을 매년 한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대통령이 느닷없이 평시에 계엄을 선포하고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에 임명하는 바람에 보좌할 일손이 없어 계엄이 해제될 때까지도 계엄상황실을 꾸리지 못했다. 계엄이 실패한 데에는 윤 대통령이 1990년대 이후 바뀐 계엄 관련 제도에 무지했던 탓이 크다. 권 과장은 “합참 계엄과장으로서 지원 임무에 들어갔지만, 대통령 서명이 들어간 계엄 포고령 1호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포고령을 작성하려면 대통령 서명이 들어가야 한다. 진짜 일머리가 없었던 것은 계엄과장이 아니라 대통령이었다.

청문회에서 권 과장은 “군인복무기본법 22조 ‘정직의 의무'에 따라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겠다”며 계엄 당시 상황을 당당하게 밝혔다. 그는 육군사관학교(육사) 54기(1994년 입학)다. 구속된 육사 출신 장군들은 국회와 헌법재판소 등에서 변명과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7년 전 북한군한테서 부하를 지켰고, 지금은 육사 선배들이 허문 군인의 명예를 붙들고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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