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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딧불' 부른 가수 황가람 인터뷰
'나는 반딧불'을 부른 가수 황가람이 1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류기찬 인턴기자


‘나는 반딧불’로 별이 되기까지 황가람은 작은 개똥벌레에 지나지 않았다. 반짝반짝 빛을 냈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만 알아볼 뿐이었다. ‘개똥벌레 가수’ 인생은 고교생 시절부터 시작했다. 고향 경남 마산을 떠나 무작정 서울 홍대 앞으로 향했다. 무명 가수 중에서도 초짜인 그는 아무데서나 노래할 수도 없었다. 공원 벤치에서 시작해 5개월 가량 이어진 노숙 생활을 마친 그는 집으로 돌아간 뒤 이듬해 다시 서울로 올라와 거리 공연을 재개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패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황가람은 패기뿐만 아니라 뚝심도 있었다. 무엇보다 노래에 대한 진심을 잃지 않았다. 노래가 좋아 음악을 떠나지 않고 지냈던 20여 년의 무명 생활 끝에 그는 '나는 반딧불'로 대낮에도 빛나는 별이 됐다. 지난 1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를 찾은 그와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부모님 걱정할까봐 노숙 이야기 안해...오히려 즐거웠던 시기"



-147일간 노숙을 했다고 들었다.

“사실은 더 오래 했다. 워낙 독특한 사람이다 보니 퇴학을 당하긴 싫고 서태지처럼 자퇴를 하고 싶었는데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전국 대학 정보를 살펴 봐도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는 전공이 없더라. 2000년대 초였던 당시엔 대학에 실용음악과가 있는 줄도 몰랐다. 부모님과는 친구처럼 지내는데 두 분에게 허락을 받은 상태였다. 그래서 교육청에 가서 알아 보니 사립고교일 경우 결석 일수가 148이 넘지 않으면 퇴학을 시킬 수 없다고 하더라. 퇴학 당하기는 싫어서 서울에 와서 147일을 지냈고 다시 돌아간 다음, 이듬해 다시 서울로 올라와 노숙을 하다 작업실을 구했다.”

가수 황가람. 류기찬 인턴기자


-노숙하는 걸 부모님은 몰랐나. 친척이나 지인이 도와줄 수도 있었을 텐데.

“부모님이 걱정하실 것 같아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일단 올라와서 열심히 하면 누군가 도와줄 줄 알았다. 마산에서 알던 밴드 형들이 올라와서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멤버들이 모두 한 방에서 지내다 보니 여의치 않았다. 이모네 가족도 그때는 단칸방에서 살았으니 신세를 질 수 없었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하룻밤씩 잤기 때문에 147일 내내 노숙한 건 아니었다. 교회에서 잔 적도 많다. 당시에 교회에서 건반을 치던 누나가 있었는데 내게 가디건을 사준 적도 있었다. 그 옷을 20년 동안 간직하다 너무 헤져서 2년 전에 버렸는데 얼마 전에 그 누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때 이야기를 하며 많이 울었다.”

-다시 서울에 와서도 노숙을 했나.

“다시 와서는 모아 놓은 돈으로 작업실로 쓸 창고를 구해 지냈다. 창고를 구하기 전까지는 노숙도 하고 교회 같은 데서 자기도 했다. 미성년이던 때라 영등포에서 식당을 하시던 이모가 도와주셨다. 나이를 속이고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쫓겨나기도 했는데 처음 노숙 할 때도 그렇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호떡 장사도 했고, 신약 임상실험 아르바이트도 했다. 노숙을 하던 때는 제게 슬픈 시절이 아니었다. 솔직히는 해병대 캠프 같은 걸 하는 느낌이랄까. ‘나 서울에서 가수 될 거야’ 하면서 사서 고생하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은 오히려 즐거웠고 그 이후가 더 힘들었다. 그땐 내가 뭔가 멋있는 것 같았다. 이런 서사가 있어야 특별한 사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병에 걸려 있었다. 어릴 때였으니까 1, 2년 뒤면 잘 될 줄 알던 시절이었다.”

"노래를 너무 못해 충격...일찍 가수 못 될 것 알고 있었다"



-홍대 앞에서 거리 공연은 어떻게 했나.

“그때는 버스킹이라는 단어도 몰랐다. 버스킹 가수 중에서도 신참이어서 공원 울타리 밖에서 해야 했다. 기타를 메고 멀뚱멀뚱 서 있다가 눈치 보면서 조용해지면 부르곤 했는데 호응도 별로 없었다.”

-원래는 노래를 잘 못했다고 하던데.

“노래를 잘하는 재능을 발견해서 가수를 하겠다고 한 게 아니었다. 뭘 해도 기본 정도는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알고 보니 노래를 너무 못한다는 걸 알고 충격 받았다. 부상을 당해서 그만두기까지 태권도 선수였는데 태권도는 재미가 없었다. 노래는 너무 재미있어서 시작했다. 내가 못했기 때문에 잘하는 게 부러웠고 연습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기 때문에 하고 싶었다. 그저 나중에 잘하게 되면 행복하겠다는 마음이었기에 일찍 가수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가수 황가람. 류기찬 인턴기자


-데뷔는 어떻게 했나

“열여덟에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설명을 하기 어려울 만큼 열심히 연습했다. 공부를 그렇게 했다면 서울대 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스물한 살에 한번 실력이 크게 뛰었다. 부천의 한 교회에서 만난 누나가 저를 인정해주며 선생님이 되어줬다. 여행스케치 멤버(이선아)였다는 것도 그땐 몰랐다. 누나는 내가 얼마나 노래를 못했는지 몰랐다. 고교생 때 노래방에서 녹음한 테이프를 들려주고 나서야 알게 됐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도 내가 음치였다는 걸 믿지 않아 유튜브에 그 테이프를 트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데뷔는 2011년 이선아 누나와 혼성듀오 나디브로 음반을 내면서다.”

-이후에도 무명 생활이 이어졌다.

“가수를 할 수는 없더라도 곡을 쓰고 음악을 하는 일은 하고 싶었다. 처음 서울 올라왔을 때 알게 된 친구들이 있는데 모두 노래를 잘한다. 나를 포함한 7명이 작곡, 프로듀싱, 믹싱, 영상 촬영∙편집, 사진 촬영 등을 하는 팀을 만들었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번 돈을 십시일반 모아 녹음실도 만들었다. 회사 이름은 CH1496인데 CH는 채널, 1496은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를 의미한다. 그러다가 전문가가 됐다. 좋은 평가도 많이 받았다. 유튜브 조회수가 많이 나온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음악과 영상을 잘 이해하는 친구들이었으니까. 나를 영상 PD로 아는 사람도 있었다. 고객 가수분들에게 우리도 모두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애들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지금 소속된 기획사 소속 가수의 커버를 만들어 불렀는데 대표님이 그걸 듣고 내가 노래를 하는 아이인줄 알게 됐고 그렇게 해서 회사와 계약하게 됐다.”

"피노키오 보컬 됐는데 코로나19로 활동 중단...가장 힘들었던 시기"



-무명 시기에 가장 힘든 때는 언제였나.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그룹 피노키오의 멤버가 됐을 때는 진짜 꿈을 많이 꿨다. 그런데 바로 팬데믹이 터져서 활동을 전혀 할 수 없었다. 온 세상이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데 나만 못 알아 듣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JTBC ‘싱어게인’도 나가려고 했는데 밴드로는 안 되고 혼자만 나오라고 해서 포기했다. 그렇게 몇 년 있다가 2023년에 ‘이제 내년이면 마흔이네’ 하면서 MBN ‘오빠시대’에 나가게 됐다. 지금도 나는 피노키오의 멤버다. 선배들이 솔로 활동 많이 하라며 배려해준다.”

가수 황가람. 류기찬 인턴기자


-‘나는 반딧불’은 어떻게 부르게 됐나.

“’오빠시대’에 나가서 처음으로 큰 사랑을 받아봤다. 그때 원래 알던 사이였던 인디밴드 중식이의 리더 정중식 형과 많이 친해졌다. 형과 나는 준결승에서 함께 떨어졌다. 그때 형이 나를 포함한 상위권 참가자들에게 (2020년 중식이 밴드가 먼저 발표한) ‘나는 반딧불’을 커버해달라고 했다. 다들 20~30초 정도만 부르고 말았는데 난 그 노래를 워낙 좋아했던지라 처음부터 끝까지 불렀다. 그걸 촬영해서 올린 영상이 화제가 됐다. 형이 고맙다며 내 노래 중에 뭘 해줄까 물어보기에 내가 작사, 작곡만 하고 다른 가수(신민경)가 부른 ‘얼마쯤에 내 꿈이 포기가 될까’를 말했다. 그렇게 서로의 노래를 리메이크하게 됐다. 내가 목이 안 좋거나 몸이 안 좋으면 중식이 형이 ‘네가 노래를 해야 내가 돈을 버는데’라고 농담을 한다. 우리는 서로 ‘이건 네 노래다’ ‘이건 형 노래다’라고 말한다. 중식이 형과는 매일 연인처럼 연락하는 사이다. 요즘 정말 너무 행복하고 너무너무 감사하다.”

-정규 앨범이 아직 없다.

“아직 없다. OST로 40여 곡을 불렀다. 직접 써놓은 곡은 100곡 정도 된다. 난 특별히 좋은 사람도 아니고 착한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엄청 걱정도 되고 좋은 사람이 안 되면 큰일 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여러가지 일을 겪고 이 노래를 부를 수 있게끔 시간이 지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많이 생각하게 됐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어떻게 노래를 부를까 하는 질문으로 연결이 되는 것 같다. 위로와 꿈, 어떤 힘이 되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 이제부터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노래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더라. 메시지로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 힘들 때 내 노래를 듣고 싶어진다면 좋을 것 같다. 무조건 될 만한 것만 꿈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냥 그 자체로 행복한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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