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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오는 7월부터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불리는 책무구조도 제도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회사에도 확대 적용된다.

책무구조도는 금융회사가 대표이사와 임원들의 내부통제·위험관리 책임을 명확히 하고 금융사고 발생 시 직접적인 책임을 묻는 제도다. 올해 1월부터 금융지주 및 은행에 우선 시행됐으며 CEO와 임원들에게 중징계를 내릴 수 있어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하지만 책무구조도 시행도 전에 CEO 중징계가 법적 논란이 된 사건이 있다. ‘박정림·정영채’ 사건이다.

최근 법원은 금융위원회가 박정림 전 KB증권 대표와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대표에게 내린 중징계를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금융위는 지난 2023년 “사모펀드 판매 과정에서 내부 통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두 CEO에게 강한 징계를 내렸지만 법원은 “책임을 과하게 물었다”며 제동을 걸었다.

이 사건은 ‘미리 본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이 됐다. 금융당국이 CEO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책임을 부과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CEO 개인에게 금융사고 책임을 어디까지 물릴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남겼다.

박정림 SK증권 사외이사, 정영채 메리츠증권 상임고문.
예상된 법리적 문제?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송각엽 부장판사)는 지난 2월 6일 정영채 전 대표가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문책경고 처분 취소 소송(2023구합87600)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지난해 12월 20일 박정림 전 대표가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낸 직무정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받은데 이어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이 2023년 두 CEO에게 내린 중징계가 모두 1심에서 취소됐다.

금융위의 주장은 쉽게 말해 금융사의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을 CEO에게 묻는 것이다. 증권사가 사모펀드(옵티머스, 라임 펀드) 같은 고위험 상품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팔아 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봤으므로 CEO에게 중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2023년 11월 29일 옵티머스 펀드 판매사인 NH투자증권 당시 정영채 대표에겐 문책경고를, 라임 펀드 판매사인 KB증권 당시 박정림 대표에겐 직무정지 3개월의 중징계를 의결했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해임권고 ▲직무정지 ▲문책경고 ▲주의적 경고 ▲주의 등 5단계로 나뉜다. 문책경고는 3년, 직무정지 4년, 해임권고는 5년간 향후 금융사 임원 취업이 제한돼 문책경고 이상부터는 중징계로 분류된다.

이날의 제재로 두 사람 모두 최소 3년의 취업제한이란 중징계를 받았다. 당시 박 전 대표는 연임이, 정 전 대표는 4연임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박 전 대표와 정 전 대표는 즉시 중징계 처분이 위법하다며 맞섰다. 양측은 회사가 내부통제기준(관리시스템)을 만들었고 법에 정해진 규정을 따랐다는 입장이다.

법리적으로도 논란이 이어졌다. 앞서 증권사의 내부통제 부실 등을 이유로 CEO가 중징계를 받았지만 CEO를 처벌하기 위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대법원에서 결정이 뒤집힌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2022년 12월 15일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으로부터 받은 문책경고의 징계를 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우리은행의 과도한 영업과 내부통제 부실이 DLF의 불완전 판매로 이어졌다고 판단해 손 전 회장을 문책경고 처분했고 손 전 회장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에서 법원은 손 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금감원이 잘못된 법리를 적용했으므로 징계 처분 사유가 아니라는 취지다. 대법원은 이런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 등의 문제가 없다며 손 전 회장의 승소를 확정했다.

반면 금융당국은 손 전 회장 사례와는 다르다며 박 전 대표와 정 전 대표에 대한 중징계를 확정했다. 에컨대 KB증권은 총수익스와프(TRS) 거래를 통해 라임 관련 펀드에 레버리지 자금을 제공하며 펀드의 핵심 투자구조를 형성한 만큼 리스크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그럼에도 KB증권 리스크 관리 부서에서 관련 모니터링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총 14차례에 걸친 안건 검토 소위원회를 통해 제재 적법성을 면밀히 심의했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나 법원은 1심에서 박 전 대표와 정 전 대표 측 손을 들어줬다. 박 전 대표 판결에서 1심 재판부는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 마련 정도에 대해 지엽적이고 세부적인 부분까지 요구하게 되면 처분청에서 제재 범위를 무한정 넓힐 수 있게 된다”며 “실효성 의미를 행정처분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방향으로 확대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상대적으로 더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으로 평가하는 것은 사후적인 평가에 의한 제재에 불과하다”며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을 판단하기 위해선 금융사지배구조법상 법정사항이 실질적으로 흠결이 있는지를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7월 시행 예정인 책무구조도DLF 사태에 이어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에서도 ‘내부통제 책임’ 카드가 수포로 돌아가면서 금융당국이 CEO에게 과중한 책임을 부과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박 전 대표와 정 전 대표는 금융권의 책무구조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에 제재를 받았고 당시 금융회사는 내부통제기준을 명확히 배분해야 할 법적 의무도 없었다는 점에서 부당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회사의 책무구조도는 2025년 7월부터 본격 시행되며 금투사가 적응할 때까지 유예 기간도 존재한다. 이 기간엔 내부통제를 비롯한 관리의무가 완벽하게 수행되지 않더라도 지배구조법에 따른 책임을 묻지 않는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도 그간의 ‘CEO 제재 기준이 애매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게 아니냐”며 “그래서 책무구조도를 통해 책임 기준을 보다 명확히 설정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책무구조도 시행 이후였다면 오히려 더 신중하게 처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명확한 기준 없이 징계를 내렸다는 점에서 상당히 가혹하다”고 덧붙였다.

금융감독원도 지난 2월 10일 발표한 ‘2025 업무계획’에서 개인 신분제재가 기관 대비 과도하지 않도록 양정기준을 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최근 법원 판결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날 이복현 금감원장은 “개인 신분 제재가 기관 대비 과도하지 않도록 양정기준 정비 등 제재 수위의 균형감을 제고하겠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이 사건이 금융사 CEO 징계 기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금융사 CEO에게 얼마나 큰 책임을 물릴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1심에서 두 CEO 모두 금융위 징계를 취소하는 판결을 받았지만 금융위가 박 전 대표 사건에서 1심 판결에 불복해 최근 항소를 결정한 만큼 향후 두 사건 모두 법적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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