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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이후 18년 동안 국민연금 개혁이 한 걸음도 못 나간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분명한 건 노인 빈곤 해결과 미래세대에 대한 부담 경감이라는 상호 모순적인 두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방법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와 진보’로, 전문가 집단은 ‘재정 안정론과 소득 보장론’으로 나뉘어 연금 개혁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지만, 평행선을 달릴 뿐이었다. 개혁이 지체되면서 청년세대는 국민연금을 '폰지사기' 즉 다단계 금융사기에 비유하며 불신을 키웠고, 한평생 열심히 일하면서 산업화를 이끈 은퇴 노인들은 빈곤 문제와 함께 손주의 밥그릇을 뺏는 부도덕한 세대처럼 비쳐 자긍심을 잃고 있다. 공동체를 더 끈끈하게 해야 할 공적연금이 오히려 세대 간 엄청난 갈등을 유발하는 괴물 같은 제도처럼 변해가고 있다. 18년 동안 이어진 연금 개혁 실패 속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가 처한 지금의 경제 환경 아래에선 보험료와 소득대체율 조정만으로 절대 연금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게 아닐까 싶다.

■ “국고 GDP 1% 쓰면 모든 세대가 똑같이 내고 100년 넘게 기금 고갈 안 돼”

2023년 국회 연금특위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우창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이른바 국민연금 3115 개혁 방안을 제출해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3115 연금 개혁안이란 국민연금 보험료를 3%p 인상하고, GDP 1% 규모로 국고를 투입하고, 기금운용수익률(현재 목표수익률 4.5%)을 6%로 1.5%p 개선할 경우 모든 세대가 똑같은 보험료를 내고 연기금이 영원히 고갈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연관 기사] “국민연금 100년 이상 끄떡없다”…‘3-1-1.5’ 개혁안, 내용은? [국민연금]③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751360
지난 18년 동안 연금 개혁 논의 과정에서 국고 투입이 해법으로 등장한 적은 없었다. 김우창 교수는 그러나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 공적연금에 국고를 가장 적게 쓰는 나라이고, 국고 투입만이 소득 보장과 재정 안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세계 각국의 노인부양비 지출 규모 / 출처: OECD 연금보고서 2023

지난 21대 국회는 시민 500명이 참여한 공론화위원회(보험료 13%, 소득대체율 50% 권고)까지 거쳐 보험료를 13%로 올리는 데 여야가 의견을 같이했다. 소득대체율만 43~45%로 차이가 났다. 김진표 당시 국회의장은 21대 국회 막판까지 대승적 합의를 촉구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거절했다. 구조개혁이 빠졌다는 이유로 연금 개혁을 22대 국회로 미뤘고, 이후 보건복지부는 연금급여를 사실상 깎는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이 들어간 정부안을 제출하면서 연금 개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또 한번의 실패를 예상됐던 국민연금 개혁이 윤석열 대통령의 권한 정지로 다시 국회 테이블에 올랐다. 그만큼 시급한 입법 과제였다는 뜻이다.

■ 보험료 13%...소득대체율 45% 무난히 달성, 50%도 가능

카이스트 김우창 교수는 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 미래기획을 담당하는 차지호 의원(카이스트 교수 출신)에게 3115 개혁안을 발전시킨 416 개혁 (보험료 4%p 인상, 국고 GDP 1%, 기금운용수익률 6%)개혁 방안을 제출했다. 연금 개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2년 정도 늦어졌지만, 보험료 인상 전제가 3115 개혁안보다 1%p 높은 13%로 했을 때는 재정 안정이 더 쉽게 달성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보험료를 13%로 올릴 경우 소득대체율 45%가 무난히 달성되고, 더 나아가 50%로 올리는 게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국고를 GDP의 1%만 투입하면, 소득 보장과 재정 안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료 13% 소득대체율 45% 목표〉 〈보험료 13% 소득대체율 50% 목표〉 * 2023년 재정추계 기준

김우창 교수는 올해 국회가 보험료 인상에 합의해 내년부터 보험료와 국고 투입을 단계적으로 늘려, 2030년부터 오롯이 보험료 13%와 국고 GDP 1%씩을 연금에 쓰기 시작하면, 소득대체율을 45%로 정해도 100년보다 훨씬 오래 연기금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려도 2101년까지 기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기금이 70년 동안 유지되면 재정 안정 상태로 보는데, 416 개혁을 할 경우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려도 75년 동안 기금이 유지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위 그림)

참고로 416 개혁안의 데이터는 2023년에 시행한 국민연금 재정추계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연기금은 약 950조 원 수준, 이후 미국 주식시장의 호조로 기금운용수익률이 크게 올랐고 24년 11월 말 기준 연기금 적립금은 1,185조 원으로 늘었다. 연평균 기금운용 누적수익률도 이미 6.5%(지난해 말 기준)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416 개혁을 적립금 1,185조 원을 바탕으로 계산할 경우 소득대체율을 47~8% 수준으로 올려도 100년 넘게 연기금이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대체율을 45%로 해도 적립금은 GDP의 200%가 넘게 계속 올라가고, 소득대체율을 50%로 잡아도 90년 동안 기금이 유지된다. (아래 그림)

〈보험료 13% 소득대체율 45% 목표〉 〈보험료 13% 소득대체율 50% 목표〉 * 24년 11월 말 적립금 기준

특히 위 왼쪽 그래프처럼 기금이 꾸준히 상승하는 상황이 연출되면 초저출산에 따른 인구 절벽도 연금 부문에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 세대가 소득대체율을 적정하게 유지하면서도 미래세대는 엄청난 규모의 기금 적립금을 물려받게 되는 모양이다. 따라서 미래 어느 시점에는 오히려 보험료를 내리거나 국고 투입 비율을 다시 낮출 수도 있다. 미래 세대에게 국민연금이 재앙이 아니라 축복으로 바뀌는 셈이다.

■ 공적연금에 가장 돈 안 쓰는 한국 정부...OECD "국고 투입 여력 있어"

OECD는 매년 회원국들의 연금 실태를 파악해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OECD 거의 모든 국가는 상당한 국고를 공적연금에 투입하고 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단일 항목 예산 가운데 가장 큰 예산 지출을 공적연금에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은 그러나 노인부양비 지출에 GDP 3.4%를 써 OECD 평균(7.7%)의 절반에도 못 미칠 정도로 작다. OECD는 한국 정부가 연금에 보다 적극적인 재정을 쓸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연관 기사] 공무원연금에는 국고 5조 원 투입…국민연금엔? [국민연금]④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757050

특히 지난 2022년 한국 정부가 요청한 국민연금에 대한 분석을 마친 OECD는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낸 바 있다.

3.6.6. 소득재분배적 급여 부분에 대한 조세 재원 분담 증대 (OECD 보고서 97쪽)
다른 OECD 국가들과 다르게, 한국 국민연금 재정에서 일반회계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다. (중략) 연금 시스템의 소득재분배적 급여 부분(A값)은 보험료와 일반조세 중 어떤 것도 재원으로 할 수 있다. 국민연금 급여는 이 부분에 대한 재원 부담을 전적으로 현재 또는 과거의 연금보험료로 조성된 국민연금기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보험료 외의 수입을 국민연금에 투입시킬 상당한 여유가 있다.

김우창 교수는 국고를 투입한다고 한국처럼 모든 나라가 연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416 같은 개혁안은 한국을 포함해 몇 개 나라 정도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미 연기금이 바닥난 유럽 선진국들은 국고를 곧바로 은퇴 세대의 연금 급여에 쓰기도 버거운 상황이다. 국민연금은 현재 1,185조 원(24년 11월 말 기준)이나 갖고 있어 매년 수십조 원의 기금 수익금을 연금 재정으로 줄 수 있는 구조다. 정부는 이 기금 적립금이 바닥 나지 않도록 조금씩 보충만 해주면 된다. 조금 일찍 이 같은 개혁을 시작하면 국민연금이 전 세계에서 내는 돈 대비 가장 가성비가 좋은 공적연금이 될 수 있다. 인구층이 가장 두터운 베이비부머 세대가 모두 은퇴하기 전에 연금 개혁을 완수해야만 이런 꿈같은 일이 가능하다. 지금이 마지막 골든 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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