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2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10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윤석열 대통령 지시에 따라 ‘체포조 명단’을 작성했다고 밝힌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20일 “명단이 존재했던 건 사실”이라며 기존 진술을 재확인했다. 윤 대통령 측은 홍 전 차장의 증언과 메모의 신빙성을 놓고 계속 공격했지만, 홍 전 차장은 “당시 국군방첩사가 체포하려 했던 최소한의 명단과 인원을 기억해야겠다는 차원에서 남긴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날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10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나온 홍 전 차장은 “방첩사가 왜 이들을 체포하려 했는지 궁금해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가치 있는 증거가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홍 전 차장은 앞서 5차 변론기일에도 증인으로 출석했는데, 윤 대통령 측이 다시 증인신문을 요청했다.
홍 전 차장은 지난해 12월 3일 계엄 당일 윤 대통령으로부터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이라”는 지시를 받고, 여인형 당시 국군방첩사령관으로부터 이재명·우원식·한동훈 등의 체포조 명단을 통화로 듣고 받아 적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윤 대통령 측은 메모의 종류가 여러개인 점, 메모에 기재된 인원 수가 12명, 14명, 16명 등으로 바뀐다는 점 등을 들어 신빙성을 문제 삼았다.
이날 실물 메모를 직접 가지고 온 홍 전 차장은 “계엄 당일 첫 메모를 적자 마자 보좌관에서 정서(글씨를 바로 씀)를 시켜 두 번째 메모가 만들어졌고, 이튿날인 12월 4일 오후 4시쯤 다시 복기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헌재가 증거로 채택한 메모에서 파란 글자는 보좌관이, 검정 글자는 자신이 적었다고도 만들어진 경위를 설명했다. 숫자가 14, 16 등 여러개가 적힌 것에 대해서는 “처음 들을 때 12명의 명단을 정확히 기억했고, 2명은 들었는데 잘 기억은 못했다. 한두명이 더 있었던 것 같아서 16명으로 적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측은 8차 변론기일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조태용 국정원장의 진술과 홍 전 차장의 진술이 배치된다고도 주장했다. 조 원장은 “홍 전 차장은 당초 3일 밤 11시 6분 여 전 사령관과 통화하며 국정원장 공관 앞에서 메모를 썼다고 했다. 그런데 CC(폐쇄회로)TV를 확인해보니 당시 홍 전 차장은 국정원 청사의 본인 사무실에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 전 차장은 “원장 관저는 사무실에서 3분 거리에 떨어져 있다”며 “어차피 통화 내역으로 시간은 확인되고, 사무실에서 관저까지 그 짧은 거리에서 통화가 이뤄졌다면 장소가 어디였더라도 크게 논란이 안되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당시 보좌관에서 정서를 시킨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혼자만 쓰고 가지고 있었다면 누가 믿어줬겠나”라고 덧붙였다.
홍 전 차장은 메모에 적힌 ‘방첩사 구금시설’ 표현에 대해서도 “여 전 사령관에게 들은 대로 메모한 것으로, 저는 방첩사에 구금시설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른다”고 재차 설명했다. 앞서 윤 대통령 측은 실제 방첩사에 구금시설이 없다는 점을 들어 메모의 신빙성을 깎아내렸다. 여 전 사령관도 “상식적으로 이상하다”며 이런 주장에 동조했다.
그러나 김대우 방첩수사단장 진술조서 등을 보면 여 전 사령관은 처음에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돼 홍 전 차장의 일관된 진술에 무게가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