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중국 산둥성 지난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광주FC와 산둥 타이산 경기에서 중국 일부 팬이 전두환씨 사진을 들고 있다. 바이두 갈무리
중국 프로축구팀 산둥 타이산이 지난 19일 울산에서 예정됐던 울산 에이치디(HD)와의 축구 경기를 몇 시간 앞두고 돌연 기권했다. 산둥은 부상 등 내부 사정을 이유로 들었지만, 배경에는 추가적인 정치·외교적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산둥이 경기를 기권한 것은 지난 19일 오후 5시께로, 경기 시작 약 두 시간 전이다. 당시 산둥은 “다수의 선수가 건강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다”며 정상적인 경기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20~30명의 선수를 보유한 축구팀이 경기 수 시간 전에 기권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몇몇 주전 선수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더라도 다른 선수로 대체할 수 있다.
해당 경기는 아시아 상위권 축구팀들이 참여하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경기로, 산둥은 16강 진출이 유력했었다. 산둥은 이 경기를 포기하면서 16강 진출이 무산됐고 벌금 납부와 리그 퇴출까지 당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베이징 외교계에서는 산둥이 큰 부담을 안으면서 이례적으로 경기를 포기한 배경에 선수들의 건강 이상 외에 더 크고 중요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거론된다.
우선 울산 경기에서 반중적인 메시지가 나올 가능성이다. 지난 11일 산둥성 지난에서 열린 광주 에프시(FC)와 산둥과의 경기에서 산둥 일부 팬이 전두환 사진과 북한 지도자 김일성, 김정은 사진을 내걸었다. 광주민주화항쟁을 겪은 광주를 본거지로 한 광주 에프시와의 경기에서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의 사진을 꺼내든 것은 축구를 넘어 광주와 한국에 대한 정치·역사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다.
광주 에프시가 산둥과 아시아축구연맹에 항의하고, 산둥 쪽도 해당 관객을 제재하고 사과하는 등 빠르게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여드레 뒤인 19일 한국 울산에서 열리는 산둥과 울산과의 경기에서 한국 팬들이 중국에 대한 보복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하하는 사진을 내걸거나 중국이 껄끄러워하는 대만 관련 문구 등을 내걸 수 있다는 우려였다. 중국 당국은 울산 경기를 앞두고 한국 쪽 움직임을 확인하는 등 신경을 곤두세웠다. 중국에서도 관심이 많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축구 경기에서 시 주석 비하 사진 등이 중계방송이나 축구 기사 사진 등에 나오는 것은 중국 당국으로서는 큰 부담이다.
또다른 이유로 외교적인 고려가 꼽힌다. 최근 중국 당국은 한국과의 갈등을 키우기보다 관리하고 조정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웬만한 문제를 갖고는 한국과 갈등하지 않으려는 기조이다. 이번 경기에서 자칫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를 사전에 막으려 했을 수 있다.
중국은 최근 한국에서 나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반중 메시지나 탄핵 반대 집회에서 중국 기자에 대한 공격 등에 대한 대응이나 보도를 자제하고 있다. 지난 14일 한국에서 발생한 주한 중국대사관 난입 사건에 대해서도 중국 대사관 차원에서 대응했고, 중국 매체 등은 이를 일반화하거나 크게 보도하지 않았다. 중국은 최근 우원식 국회의장의 중국 방문 때도 시 주석이 우 의장과 40분 넘게 독대하는 등 한국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은 트럼프 미 행정부의 출범으로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한국의 정권 교체 가능성이 큰 국면에서,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