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선호 국방부장관 직무대행에게 707특임부대가 휴대한 케이블타이 수갑 관련 질의를 하고 있다. 뉴스1
“밀실에서 대령급 단장을 회유하시면서 진술서까지 받았어요?”(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끝까지 변호사 대주겠다’, 이게 회유가 아니고 뭡니까?”(윤상현 국민의힘 의원)
12·3 비상계엄 이후 불거진 이른바 ‘군 회유 논란’이 20일 국회 국방위원회를 뒤덮었다. 당초 이날 국방위는 법안 심사를 위해 열렸지만, 여당은 야당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을, 야당은 여당이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을 각각 회유했다고 주장하며 언성을 높였다. 급기야 군용 ‘케이블 타이’(묶는 용도로 쓰이는 플라스틱 끈)까지 등장해 난타전이 벌어지자 한때 회의가 정회되기도 했다.
첫 발언자로 나선 4성 장군 출신의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이제는 회유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김 의원 등이 비상계엄 사태 핵심 증인인 곽 전 사령관을 지난해 12월 6일 유튜브 채널에 출연시키면서 “(사전) 리허설을 통해 원하는 답변을 유도했다”는 국민의힘의 주장을 거론한 것이다.
김 의원의 ‘종지부’ 발언에도 불구하고 의원들은 회유 공방을 이어갔다. 바로 다음 발언자로 나선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 소속인 성일종 국방위원장을 향해 “김현태 단장이 ‘유니필(유엔평화유지군·UNIFIL) 등 해외 파병 부대장으로 나가고 싶다’고 인사 청탁을 하지 않았나”라고 물었다. 계엄 직후엔 ‘계엄 해제 의결을 하려는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곽 전 사령관에게 받았단 취지로 주장한 김 단장이 최근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선 ‘그런 명확한 지시는 없었다’는 취지로 발언한 걸 겨냥해 회유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성 위원장이 “전혀 그런 얘기 없었다”고 반박하자 박 의원은 “그러면 녹음본이나 진술서를 보여달라. (성 위원장과 김 단장 사이) 회유의 거래가 있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재차 주장했다. 성 위원장이 “국회의원으로서 품위를 지키라. 한 지휘관을 그렇게 모독하지 말라”고 하자, 박 의원은 “간사 없이 밀실에서 대령급 단장을 회유하며 진술서까지 받았나. 녹음에 해외 파병 부대장 인사 청탁 (내용)은 뺐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 차례엔 곽 전 사령관 회유 의혹이 도마에 올랐다. 윤상현 의원은 “김 의원께서 ‘회유가 없었다. 정쟁 하지 말자’고 하는데 명확한 정황은 회유를 하게끔 행동하셨다”고 운을 뗀 뒤 “12월 6일 김 의원 유튜브에 곽 전 사령관을 부르지 않았나. 12월 10일 국방위 현안질의 할 때 쉬는 시간에 ‘앞으로 끝까지 변호사 대주겠다’(고 했다), 이게 회유가 아니고 뭔가”라고 주장했다.
윤 의원은 그러면서 ”정확한 회유와 가스라이팅 정황이 있다”고 강조했고, 이에 김 의원은 “전혀 회유한 사실이 없다. 면책특권에 숨어서 얘기하지 말고, 기자회견하면 고소·고발하겠다”고 반발했다.
성일종 국회 국방위원장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2회 국회(임시회) 국방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현안질의 중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비상계엄 당시 케이블타이 수갑 관련 발언으로 여야 정쟁이 격화되자 회의를 정회하고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뉴시스
박 의원은 군용장구 관련 법안 심사 반대토론을 하다가 미리 준비해온 케이블 타이를 꺼내 김 단장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케이블 타이를 손으로 직접 묶어 보이면서 “이게 특전사 전용 코브라 케이블 타이다. 이걸로 무슨 문을 잠그나. 이게 빠지냐”며 “헌법재판소를 능멸해? 이게 말이 되냐”라고 언성을 높였다. 김 단장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출석해 ‘계엄 당일 국회 출동 당시 가져간 케이블 타이는 국회 문을 봉쇄하려던 것이지, 대인 용도가 아니다’라고 증언한 걸 겨냥한 것이다.
이에 성 위원장이 “이 법안을 알고 얘기하는 건가. 정치 공세를 하더라도 전혀 관련 없는 걸 가지고 이야기하느냐”고 지적했지만, 박 의원은 멈추지 않았다. 박 의원이 마이크가 꺼진 뒤에도 케이블 타이를 손에 들고 언성을 높이자 성 위원장은 “창의적”이라고 비판하며 정회를 선언했다.
정치권에선 “계엄 이후 국회의 군 망신주기가 일상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 지휘관들의 진술이 엇갈리면서 여야가 각각 입맛에 맞는 진술은 치켜세우고, 그렇지 않은 진술은 ‘회유’로 폄하하는 등 군을 정치화했다는 것이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안보를 지켜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군을 흔들어서 안보 공백이 커질까 우려스럽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