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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 잘사]
<1> 생의 마지막 날들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편집자주

잘사는 것만큼이나 잘 죽는 것이 과제인 시대입니다. 행복하게 살다가 품위 있게 늙고 평온한 죽음을 맞으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최문선 논설위원과 함께 해법을 찾아보시죠.

호스피스 병원인 천주교수원교구 동백성루카병원 1층엔 이 곳에서 생을 마감한 말기 암 환자들의 이름판이 붙이 있다. 그들의 서사와 실존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이름을 읽어내려가는 김호성 진료과장. 용인=홍인기 기자


2021년 개원한 경기 용인시 천주교수원교구 동백성루카병원은 독립형 호스피스 병원이다. 독립형은 대형 병원에 속해 있지 않은 완화의료 전문 병원이라는 뜻.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말기 암 환자가 하루하루를 ‘일상’처럼 평온하게 보내도록 하는 것에 건물 설계부터 운영 방식까지 모든 것이 맞춰져 있다. 병원은 빛과 온기로 가득하다. 죽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공간이기도 하다. 있음직한 것들이 없고 없을 것 같은 것들이 있다.

◇벽시계와 달력이 없다


호스피스 병원에서 선형적 시간은 별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오래 살기’는 이곳에서 목표일 수 없다. 생명을 연장하는 것보다 찰나의 순간일지언정 삶의 질을 올리는 게 중요한 가치다. 환자들은 단 하루를 살아도 평안하게 지내기를 소망한다.

◇신발 신은 사람이 없다


들어가려면 입구에서 신발부터 벗어야 한다. 치료를 포기하고 호스피스 병원 행을 택하는 과정에서 환자와 보호자는 극도로 지쳐 있다. 신발 벗기는 그들이 집 같은 편안함을 느끼도록 하는 배려다.

◇커피 향기가 있다


병원 설계 과정에서 1층 정중앙에 카페를 배치했다. ‘죽음의 공간’이 아닌 ‘삶과 쉼의 공간’임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소독약 냄새가 아닌 커피 향기가 병원을 채운다. 누군가에겐 사랑하는 이와 나눈 마지막 향기로 기억될 것이다.

◇(이따금) 술이 있다


술을 그리워하는 말기 환자도 있다. 욕구와 취향이 있는 살아 있는 존재라서다. 의학적으로 명백한 해가 되지 않으면 소량의 음주를 허용하기도 한다. 병원장 신부는 병원 정원에서 와인 파티도 연다. 환자와 보호자의 일상이 계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숲, 햇빛, 바람이 있다


1층 로비와 연결되는 정원은 산과 하늘을 향해 탁 트여 있다. 자연을 감각하면 환자의 우울감, 분노, 섬망 조절에 도움이 된다. 환자가 정원에서 임종을 맞고 싶어 하면 직원들이 고생하더라도 최대한 배려해 준다.

천주교수원교구 동백 성루카 호스피스 병원의 목욕실. 일반병원과 달리 이곳에서 '씻기'는 인간다움을 지켜 주는 중요한 의례다. 용인=홍인기 기자


◇쾌적한 목욕실이 있다


목욕은 위생뿐 아니라 인간다움의 문제다. 특별교육을 받은 목욕 자원봉사자들이 환자를 한 명씩 세심하게 씻긴다. 봉사자들은 세례 받는 수준의 충만함을 느낀다고 한다. 환자는 모르는 이들에게 기꺼이 몸을 맡긴다. 목욕실은 환대의 공간이다.

◇사진과 이름들이 있다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이들의 이름과 사진이 벽 곳곳에 붙어 있다. 떠난 사람의 실존과 서사를 기억하고 죽음이 삶의 지척에 있음을 되새기자는 의미다. 죽음을 '사망자 숫자'만으로 기록하는 건 반생명적이다. 이름, 사진을 남기는 건 보호자들이 사별을 받아들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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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21915470001509)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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