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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소확행을 찾는 것보다 보통의 하루를 보내는 게 더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대학 졸업 후 지난해 취업 전선에 뛰어든 박소영(23)씨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이른바 ‘소확행’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박씨는 이전엔 쇼핑이나 지인들과 어울리는 것으로 여가시간을 즐겼지만 요즘엔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인스타그램보다는 온라인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인 블로그를 애용한다. 박씨처럼 일상 속 작은 행복을 좇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바로 ‘아주 보통의 하루’를 뜻하는 ‘아보하’다. 특별한 무언가가 없더라도, 그저 그런 하루를 보냈더라도,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아보하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의 하루'에서 행복을 찾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습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이 일부 제품 가격을 인상한 다음 날인 지난 4일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에 시민들이 매장 오픈을 기다리고 있다.뉴시스

아보하 트렌드를 이해하려면 우선 소확행의 인기가 사그라든 이유부터 살펴봐야 한다. 2010년대 말부터 유행한 소확행 트렌드는 퇴근 후 산책을 즐기거나 동네 빵집에서 갓 구운 빵을 사는 등 바쁜 일상에서 잠깐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제 나름의 행복을 찾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2020년대에 들어서자 소확행의 의미는 퇴색되기 시작했다. SNS에 소확행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일상에 지친 자신을 위해 한정판 신발을 샀다’ ‘반복되는 나날에서 탈출해 고급 호텔에서 시간을 보냈다’ 등 얼마간 과시욕이 느껴지는 소확행 콘텐츠의 빈도가 점점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보하는 소확행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대학생 김다빈(24)씨는 “소확행은 원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알고 있는데, 요즘은 ‘소비해서 확실하게 만드는 행복’이 돼버렸다”며 “뭔가를 소비하고, SNS에 이를 올려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나에겐 이 정도가 소확행이야’라는 뉘앙스의 게시물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아보하는 지난해 9월 발간된 ‘트렌드 코리아 2025’에 등장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인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난해 10월 유튜브 ‘트렌드 코리아’ 채널을 통해 “아보하는 소확행을 뛰어넘는 새로운 키워드”라며 “아보하는 과시로부터 물러나 ‘보통의 오늘’을 잘 보내고 일상을 회복하는 의미로 쓰일 것”라고 설명했다.

다이어리·블로그·홈술…기업들도 ‘아보하’한다
29cm 제공

아보하가 유행하면서 소비 트렌드도 이에 맞게 변하고 있다. 기업들은 ‘보통의 일상’을 보내는 청년을 겨냥한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선보이는 분위기다. 가장 대표적인 게 ‘일기’다. 취업 준비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다는 박소영씨의 사례가 그런 경우다. 박씨는 “취업준비생의 입장에서 늘 불안하고 성취감을 느낄 곳이 없었는데, 블로그에 솔직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적으면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블로그나 다이어리를 통해 소소한 일상을 담아내는 사람은 늘어나는 추세다. 네이버가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2024 네이버 블로그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신설된 블로그 수는 전년보다 약 70% 늘었다. 해당 기간 블로그 이용자들이 이곳에 소비한 총 시간은 7억 시간이나 된다.

다이어리도 인기다. 유명 온라인 편집숍 29cm가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해당 사이트에서 한 달간 다이어리, 노트 등 문구류 카테고리 거래액은 전년 대비 74% 이상 증가했다.

주류업계도 아보하 트렌드를 좇고 있다. 아늑한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 맞게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홈술’ 콘셉트의 상품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무탈한 하루에도 감사하는 청년들을 위해

소확행에 이어 아보하라는 키워드가 주목을 끄는 것은 한국인들이 아무 일 없는 보통의 하루에도 감사하게 될 정도로 지쳤다는 것을 방증한다. 특히 피로감을 호소하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박세영(21)씨는 “요즘은 소소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으려 하고, 그런 특별함만이 알려지는 세상이라 오히려 ‘보통’으로 지내는 게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용어가 꾸준히 유행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아보하같은 단어가 유행하는 것은 지나친 경쟁과 불경기 때문일 것”이라며 “특히 젊은 세대들은 SNS를 통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현재 위치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이 다른 세대보다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아보하의 유행이 현실을 회피하는 분위기를 부채질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보하같은 문화가 굳어지면) 현실 참여를 등한시하는 ‘세대 심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아보하같은 개인주의 세태는 사회 공동체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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