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지검 사태 한달…‘극우 카톡방’ 5곳 잠입 취재
“부정선거 증거 3개 이상 10분 내 답변 못하면 프락치”
‘이재명 구속’ ‘문재인 특검’ 닉네임은 사상검증 패스
방마다 100~300명 활동…허위정보, 행동 유도 온상
“부정선거 증거 3개 이상 10분 내 답변 못하면 프락치”
‘이재명 구속’ ‘문재인 특검’ 닉네임은 사상검증 패스
방마다 100~300명 활동…허위정보, 행동 유도 온상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가 열렸던 지난달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달 20일 한 ‘탄핵 반대 MZ 우파 모임’ 카카오톡 오픈 채팅 대화방. ‘참여하기’를 누르자, 채팅창이 열렸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 하는 여러분 반갑습니다”로 시작하는 메시지가 떴다. ‘좌파의 내로남불 사례’ ‘계엄령에 대한 의견’ ‘부정선거의 증거 3개 이상’을 “입장 10분 내로 답변하지 않으면 프락치로 간주해 강퇴한다”는 문구가 이어졌다. 입장 3분 뒤, 한 이용자가 기자에게 “질문에 답하라”고 으름장을 놨다.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채팅방에서 쫓겨났다. 입장 5분 만이었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19일부터 18일까지 약 한 달간 극우 성향 카카오톡 오픈채팅 대화방 5곳에 들어가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관찰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은 친구 추가를 하지 않은 이들이 공통의 관심사에 따라 가명으로 소통할 수 있는 채팅방이다. 각 대화방은 ‘청년 우파’를 자처하거나, 극우로 분류되는 정치인에 대한 지지 모임 등을 내걸고 있었다. 채팅방마다 100~300명씩 총 약 1000명 정도의 이용자가 대화에 참여하고 있었다. ‘사상 검증’을 거쳐 일원이 된 대화방 참여자들은 유튜브상 허위 정보를 공유하며 신념을 강화했다. 직접행동까지 이어질 조짐도 곳곳에서 보였다.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등 불법행위를 일으킨 혐의를 받는 56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던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 외벽에 불법행위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준헌 기자
‘사상 검증’ 뚫으면, “멸공 없이 못 살아”가 반겼다
오픈채팅방 입장의 관문은 방마다 다양했다. “최소한의 사상 검증”을 하겠다며 “프리 홍콩·위구르를 지지합니다” 등을 따라말하길 요구했다. 다른 방에서는 “한 명씩 실명으로 닉네임을 변경하라고 연락하기 시작하겠다”며 “국민의힘 당원이거나, 방장이 초대해 신분을 보장하는 분, 도저히 좌파일 수가 없는 닉네임”은 예외였다. 이들이 예시로 든 닉네임은 ‘이재명 구속’ ‘문재인 특검’ 등이었다.
관문을 넘으면 다양한 닉네임의 이용자들이 반겼다. “다윗의 장막” “이 목사” “정 선교사” 등 기독교 색채가 뚜렷한 유형, “계엄은정당했다” “윤카절대지켜” 등 ‘윤석열 지지’ 유형, “멸공 없이 못 살아” “멸공시대” 등 ‘반공주의 유형’ 등의 갈래가 있었다. 서울의 한 기초의회 국민의힘 소속 구의원을 자칭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극우 카톡방은 허위 정보·혐오 발언의 저수지
기자가 한 달간 관찰한 대화방에서는 ‘사실 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가짜뉴스가 난무했다. 지난달 20일 서울서부지법 난입·폭력 사태 직후에는 “명찰이 없는 경찰은 중국인”이라는 내용의 허위 정보가 떠돌았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71.2%로 급등했다는 유튜브 영상이 참가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근거는 달리지 않았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이자 미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은 일론 머스크가 X(구 트위터) “부패한 판사는 탄핵해야 한다”고 올린 글을 보고 “전한길(역사 강사)의 영상을 본 것 같다”는 글도 올라왔다. 머스크가 올린 글은 폴 엥겔마이어 미국 지방법원 판사를 비난하는 것으로, 국내 상황과 무관했다.
지난 9일 한 극우 성향의 오픈채팅방에는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이자 미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은 일론 머스크가 X(구 트위터)에 “부패한 판사는 탄핵해야 한다”고 올린 글을 보고 “전한길(역사 강사)의 영상을 본 것 같다”는 허위 정보가 올라왔다. 채팅방 갈무리
중국인과 중국을 향한 혐오 발언도 끊이지 않았다. 한 MZ 우파 대화방에서는 ‘대전 초등생 피살 사건’을 두고도 음모론이 확산했다. 이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미국정치갤러리(미정갤)에 올라온 게시글을 공유하며 유가족이 “딸이 죽을 것을 알고 있지 않았으면 ‘하늘이법’과 같은 주장을 할 수 없다”고 비방하거나, 유족이 ‘하늘양이 장원영(K팝 그룹 아이브 멤버)을 좋아한다’고 발언한 사실을 두고 “화교 아니냐”고 비웃었다.
지난 17일부터는 이진 전 헌법재판소 공보관이 ‘중국인’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들은 헌법재판소 자유게시판에도 “중국인 공보관은 뭐냐”는 등 글을 남겼다. 하지만 헌법연구관 중 중국인은 없었다.
지난 17일부터 극우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이진 전 헌법재판소 공보관이 ‘중국인’이라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이 내용은 허위였다. 채팅방 갈무리
유튜브로 번지는 ‘대안사실’···“메신저로 퍼져 부작용 더 커”
오픈채팅방은 유튜브에 만연한 허위정보의 재확산 통로로 기능했다. 황교안TV(구독자 28만명), 전옥현 안보정론TV(구독자 99만명), 성창경TV(구독자 112만명), 이봉규TV(구독자 97만명) 등에서 생산한 영상이 극우 카톡방을 타고 퍼졌다.
대화는 주로 유튜브 영상 링크에 참가자가 한 마디를 덧붙이는 식으로 시작됐다. 18일 한 이용자는 “대통령 탄핵 재판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헌재 TF팀에 중국인이 있고, 그들이 써준 시나리오 대본대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대한민국의 입법·사법·행정까지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다”며 ‘교차검증’이라는 유튜브 채널의 영상을 공유했다.
주요 사건이 발생하면 곧장 허위 정보가 퍼지며 ‘대안사실’이 구축됐다. 지난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비화폰 확보 등을 위해 대통령실·관저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부정선거 증거를 없애려는 것”이라는 주장이 호응을 받았다.
대법원이 지난 1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왼쪽 목을 흉기로 찌른 김모씨(68)에 대해 징역 15년을 확정하자 대화방에서는 “이재명의 자작극 아니었냐” “자작극이니 입막음을 해야 해서 중형이 나온 것”이라는 대화가 오갔다.
‘레거시 미디어’로 통칭되는 신문사·방송사 기사가 공유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조중동 가짜 뉴스에 속지 말자”는 말이 자주 나왔다. 이들의 ‘주요 매체’는 스카이데일리, 파이낸스투데이 등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나 극우적 주장을 되풀이하는 매체였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지난 12일 스카이데일리를 제재하며 “핵심 주장에 대한 객관적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지원 단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대화방이 단순한 소통의 공간이 아니라 정보를 전파하기 위한 ‘제자’들을 길러내는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며 “참여자가 극우 정체성을 확립하며 믿음 체계를 더 공고히 하고, 이런 메시지를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전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지난 13일 지난해 1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왼쪽 목을 흉기로 찌른 김모씨(68)에 대해 징역 15년을 확정하자 대화방에서는 “이재명의 자작극 아니었냐” “자작극이니 입막음을 해야 해서 중형이 나온 것이다”는 대화가 오가기도 했다. 채팅방 갈무리
체제 부정 주장·행동 유도까지
이들에게 부정선거론은 공기와 같았다. ‘국회 해체’ 주장도 공공연히 나왔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증인으로 나왔던 지난달 23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제4차 변론기일에서 ‘비상입법기구 설치’를 시인하자 “부정선거로 선출된 국회를 해체하길 원한 것이라 비상입법 기구 창설이 국회 권능 무력화 증거가 아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들의 대화는 현실의 행동으로 이어질 조짐이 다분했다. 한 이용자가 “탄핵 인용되면 나는 못 참는다, 국가가 반국가세력에 넘어가기 직전에는 죽어서라도 막을 예정”이라는 글을 남기자 ‘좋아요’ 수백개가 순식간에 쌓였다. 집회 현장 참석을 독려하고, 같이 집회에 갔다는 ‘인증샷’도 올라왔다.
‘악법반대, 선법 찬성’을 표방하는 ‘VFORKOREA’라는 홈페이지도 매일 공유됐다. 국회 법안에 대해 “악법의 경우 1만개면 반영이 된다”며 “법안 클릭 후 악법은 반대, 선법은 찬성 의견을 남겨달라”는 식이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통령과 국민의힘 의원 일부 등 제도권 정치가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힘을 실으며 극우 세력의 확산에 기여한 바 크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말이 안 되는 주장이라고 해서 방치하면 안 되는 현상”이라며 “참여자가 많은 카카오톡 채팅방의 경우 공익적 성격을 고려해 혐오 표현 규제 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