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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50개주 전역서 동시다발 시위
영하 날씨에도 전국서 수천 명 참여
"독재 행정·권력 남용 멈춰야" 외쳐
1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시내에서 시민 수백 명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항의하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정부효율부 수장에서 해임할 것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오클랜드=이서희 특파원


"빵빵, 빵빵."

17일 낮 12시(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샌프란시스코 인접 도시인 오클랜드 시내. 차량 경적 소리가 연신 시끄럽게 울렸다. 짧게 한두 번 울려 대는 식이었다. 시위대가 거리에서 행진하거나 피켓을 들고 있을 때, 지나가는 운전자들이 지지와 연대를 표하기 위해 내는 소리다.

미국 '대통령의 날'(2월 셋째 주 월요일)인 이날, 오클랜드 시내에서는 대규모 '반(反)트럼프·반머스크' 시위가 열렸다. 시내 중심가의 초대형 인공 호수 '레이크 메리트'를 빙 둘러싸고 오전 11시~오후 1시, 약 2시간에 걸쳐 행진이 이어졌다. 시위 참여자는 500명(주최 측 추산)을 웃돌았다.

1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시내에서 한 남성이 '트럼프-머스크 쿠데타를 멈춰라'라는 문구를 적은 팻말을 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부효율부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미국 정부를 장악하려는 시도를 저지하자는 의미다. 오클랜드=이서희 특파원


"증오는 '위대한 미국' 만들지 않아"



"미국에는 왕이 없다!(No Kings in America!)", "머스크를 축출하라!(Deport Musk!)"

시위대는 반복적으로 복창했다. 손에는 '법 위에 군림하는 자는 없다', '아무도 머스크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등 문구를 적은 피켓이 들려 있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부효율부(DOGE)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에 대한 비판이었다. '증오는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적이 없다(Hate never made America great)' 같은 문구도 여럿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이었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를 반박하는 의미로 진보 진영에서 쓰는 말이다.

이날 시위는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전국 50개 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집회 이름은 '대통령의 날에 왕은 없다(No Kings on Presidents Day)'로 지어졌다. 대통령을 넘어 왕의 독재 권력을 탐하는 자는 역대 모든 미국 대통령을 기리는 날인 '대통령의 날'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겼다. 사실상 트럼프를 저격한 것이다.

AP통신·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미 전역에서 '트럼프·머스크 반대'를 외친 시민은 수천 명에 달했다. 수도 워싱턴의 백악관 및 의사당 앞에서 수백 명이 항의 시위를 했고,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선 체감 온도 영하 10도 이하의 맹추위에도 1,000여 명이 팻말을 들고 나섰다. 미국 진보 정치의 중심인 캘리포니아주의 주도 새크라멘토에서는 약 1,500명(경찰 추산)이나 모였다. 이들을 거리로 불러낸 건 트럼프와 머스크를 향한 분노였다. 요구는 명확했다. "독재적 행정과 권력 남용을 멈추라"는 얘기였다.

17일 미국 뉴욕에서 '대통령의 날, 왕은 없다' 집회에 참석한 시위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를 비판하는 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여론 악화에 기름 부은 머스크 전횡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반트럼프 시위'의 존재감은 별로 없었다. 8년 전 트럼프가 집권 1기를 시작했을 땐 그의 취임식 당일(2017년 1월 20일) 전국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가 열렸으나, 지난달 20일 집권 2기 취임식은 별다른 소란 없이 치러졌다. 총득표수에선 뒤졌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 앞서며 아슬아슬하게 이긴 2016년 대선과는 달리, 미국민 과반의 지지를 받고 승리한 작년 11월 대선 결과가 취임식 당일 분위기에도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그러나 불과 한 달 새, 기류는 확연히 달라졌다. 트럼프가 취임 첫날부터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프로그램 폐기 △불법 이민자 강제 추방 △성소수자 권리 축소 등 강경 정책을 쏟아내자, 이에 분노하는 '반트럼프' 여론이 들불처럼 확산했다. 특히 연방정부 축소 작업을 주도하는 머스크의 전횡이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이해충돌 가능성이 큰 데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게다가 의회 승인도 없이 정부 조직을 마구 해체하고 공무원 수천 명을 해고해 버린 탓이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고, 급기야 전국적인 항의 시위로 이어진 것이다.

미국인 엘레나 모레티가 17일 미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시내에서 '머스크가 불법 점거 중이다. 지금 당장 제거하라'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민주당 지지자인 모레티는 "누구도 머스크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며 "머스크는 당장 정치 개입 시도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클랜드=이서희 특파원


트럼프 '직진' 시사... 시위 확산할 듯



당장 머스크를 해임하고 우향우 정책 폭주를 멈추라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을 태세다. 지난 15일에는 "나라를 구하는 자는 어떤 법도 어기지 않는다"는 프랑스제국 초대 황제 나폴레옹의 발언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게시하기도 했다. '초헌법적 통치 행위'라는 비판에 귀를 닫은 것으로 해석됐다. '반트럼프' 시위 물결이 계속 확산될 것으로 점쳐지는 이유다.

이날 오클랜드에서 10대 딸, 아들과 손잡고 행진하던 앤서니 나바로는 "두려운 마음에 나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4년간 망가진 시스템은 40년이 걸려도 복구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 미국의 역사에 '가장 심각한 위기'로 남게 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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