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에서 형제이용원을 운영하는 이발사 이좌수(68)씨와 그의 동생(67)은 지난달 13일 8년 넘게 모은 1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김성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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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100만원씩, 8년 7개월 모아
“우리 형제는 돈이 없으니까. 싸울 일이 없어요.”
지난 10일 세종시 종촌동에 있는 ‘형제이용원’에서 만난 이발사 이좌수(68)씨가 손님 머리를 다듬고 있는 동생(67)을 바라보며 한 말이다. 둘 다 회색 테이프로 앞 코를 막은 낡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들어가지 않도록 직접 손 본 신발이라고 한다. 형 이씨는 “청바지는 대전 중앙시장 구제숍에서 5000원을 주고 샀어요. 남방은 3000원, 조끼는 1만원입니다. 그럭저럭 입을 만 합니다”라고 했다. 동생도 같은 차림이었다.
언뜻 구두쇠로 보이는 이 형제는 지난달 13일 사랑의 열매 세종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부했다. 이 단체에 1억원 이상 기부한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에 37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2016년 5월 세종시에 이발소 문을 열며 “10년 이내에 1억원을 기부하겠다”고 다짐한 지 8년 8개월 만이다. 1억원을 모은 시점은 지난해 12월 13일이다. 형제는 이 약속을 지키려고 매월 번 돈의 100만원을 저축해 기부금을 마련했다.
형제이용원은 아파트 상가에 있는 42.9㎡(13평) 규모의 남성 전용 커트 이발소다. 이발 비용은 1만2000원, 염색은 1만8000원이다. 같이 할 경우 2000원을 할인한 2만8000원만 받는다. 이씨는 최근 가게 외벽과 거울 앞에 ‘일억원 기부-고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쓴 A4 용지를 붙였다. 그는 “손님들 덕에 약속한 1억원을 기부할 수 있었다”며 “가게를 지나가거나, 오시는 손님들이 기부문화에 동참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메시지를 적었다”고 말했다.
이좌수(68)씨가 형제이용원에서 손님 머리를 다듬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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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살 넘어 이발사 도전 “기부문화 확산하길”
이들 형제는 늦깎이 이발사다. 직장생활과 자영업 등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형 이씨가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53세가 되던 2010년 서울 양천구에 이발소를 차렸다. 이씨는 “이발소 문을 열기 전 3개월 전에 동생도 이발사 자격증을 따 동업하게 됐다”며 “첫 가게는 3개월 만에 폐업했지만, 금천구로 옮기고 나서는 단골도 생기고 먹고 살 만큼 매출이 나왔다”고 했다.
서울 생활을 청산한 건 “조용한 도시에서 일하며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형제의 뜻이 통했기 때문이다. 둘은 세종시 대평동에 있는 82.5㎡(25평)짜리 아파트를 각각 구한 뒤 2016년 종촌동에 가게를 열었다. 기부금 마련은 1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영향이 컸다. 이씨는 “명동성당을 다니시던 어머니는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이웃과 학생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시고 봉사활동도 꾸준히 하셨다”며 “돌아가시기 전 대학병원에 시신과 장기를 기증하셨다. ‘이웃을 돕고 살라’는 어머니 말씀을 따르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부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형제이용원 벽에는 각종 기부 관련 기사가 붙어있었다. ‘67억 기부천사 된 남대문 볼펜장수’ ‘2만원 시계 차던 면세점 대부…10조 기부하고 떠났다(찰스 척 피니)’ ‘이름도 안 밝히고…고려대에 630억 기부’ ‘연세대에 200억대 기부한 할머니’ 등 기사다. 이씨는 “익명으로 수억 원씩 기부한 사람도 많은데 1억원 기부는 자랑할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이 있지 않냐. 생활비를 아껴가면서 기부금을 모았다”고 했다.
세종시에서 형제이용원을 운영하는 이발사 이좌수(68)와 그의 동생(67)은 지난달 13일 8년 넘게 모은 1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김성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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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원 짜리 청바지…출퇴근길 쓰레기 줍기도
형제는 주로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이씨는 “가끔 외식하면 1만 원짜리 순댓국이나 뼈다귀해장국으로 끼니를 때운다”며 “운동화는 대개 4~5만 원짜리를 산다. 자동차는 10년 된 스포티지를 탄다”고 했다. 이씨 형제는 시간이 날 때마다 대평동에서 종촌동까지 5.3㎞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한다. 큰 비닐봉지를 들고 1시간~1시간 20분 정도 걸어가면서 쓰레기를 줍는다. 주말에는 세종시 비학산에 올라 빗자루를 들고 등산로를 청소한다.
이들 형제는 3~4년 뒤에 세종충남대병원에도 기부할 계획이다. 지역 주민이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으려면 거점병원이 잘돼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들 형제는 한 대학병원에 시신 기증을 약속한 상태다. 이씨는 “기부든, 쓰레기 줍기든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일은 아니다”라며 “우리 형제의 작은 행동이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