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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단군 이래 처음으로 경제력을 가진 ‘노인’이 등장했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들은 ‘가난하고, 자식에 의존하는’ 기존 노인을 거부하는 첫 세대다. 그 어느 때보다도 부유한 노인들이지만 은퇴 이후 어떤 집에서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한 고민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부족하다. ‘건강한 노인’ ‘취미 부자인 노인’ ‘돌봄이 필요한 노인’까지 이들의 다양성을 반영한 ‘노인의 집’에 대한 고민을 3회에 걸쳐 담아봤다.

‘인지저하’ 노인들이 지역사회 내 계속거주가 가능한 모델을 만들기 위해 서울시가 지난 2015년 리모델링을 시도한 서울 영등포구 신길4동 삼성래미안 아파트 2단지 내 ‘기억키움마을’ 아파트 입구 모습. 노인들이 동을 찾지 못할 것에 대비해 별모형을 달고, 출입구에는 경사로를 설치했다. 또 운전자의 주의를 위해 안전구역을 표시한 것이 특징이다. 서울시 인지건강디자인 종합 가이드라인


전미자 복지환경디자인연구소 이사장(64·반포 느티나무쉼터 소장)에게 집은 40대 후반이 될 때까지는 ‘잠깐 머무는 공간’이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집은 ‘자고 일어나면 씻고 나가기 바쁜 곳’이었다.

2003년 강원도 영월에 사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졌다. 급히 서울로 옮겼지만 손쓸 틈조차 없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전 이사장은 어머니를 자신의 집으로 모셨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이 가까운 곳에 전문의료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가 30년 넘게 살아온 서울은 달랐다. 15분 거리에 갈 수 있는 종합병원이 곳곳에 있었다. 건강이 악화된 70대의 어머니도 딸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전 이사장과 어머니는 함께 살기 시작했다.

전 소장에게 집은 ‘어머니를 보호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창살 없는 감옥’일 수 있다는 생각을 그때는 미처 하지 못했다.

서울생활을 시작한 어머니는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복지관 활동을 권유해도 어머니는 “집에 있는 게 더 좋다”라고 했다. 전 이사장은 “딸이 없는 시간 동안 어머니는 늘 혼자였다”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평생 살아온 영월 집은 달랐다. 수 십년간 교류한 이웃이 있었고, 단골 가게도 있었다. 전 이사장은 “어머니를 잃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에 어머니를 이웃들과 생이별시킨 것은 아닐까”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늘 영월 이웃들을 그리워했다.

어머니의 그리움은 그가 AIP(Aging In Place·지역사회 계속 거주)라는 개념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이미 노인·장애인 복지를 포함한 유니버설 디자인(UD) 분야의 권위자였지만 어머니를 통해 비로소 AIP를 상실한 노인의 삶을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전 이사장은 “평생 주부로 살아온 어머니에게 집은 자기자신이고, 인간관계의 베이스캠프였다”며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과 가정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사람이 집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너무 다르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고 했다.

서울살이가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어머니는 집 근처 대형마트를 가지 않았다. 대신 매주 토요일 아파트 단지 안에서 열리는 토요장터를 교회가듯 매주 다녔다. 생선장수가 “어머니 또 오셨네요”라며 반갑게 맞아주면 생선 몇 마리를 사면서 대화를 나누고, 군고구마, 순대 등을 사며 장터 상인들과 안부를 묻는 것들이 일과가 됐다. 토요장터가 어머니에게는 하나의 ‘지역사회’가 된 것이다.

어머니의 마지막 집은 ‘요양병원’이었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병세가 악화된 어머니를 집으로 모실 수는 없었다. 전 이사장은 “그 때도 어머니에게는 거주지에 대한 선택지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지난 2020년 9월 91세의 나이로 숨지기 전 꼬박 5개월을 전 이사장과 함께 요양병원에서 보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탓에 전 이사장도 요양병원 밖을 벗어나지 않고 병실에서 마지막을 함께 했다. 대신 어머니가 계시던 요양병원 창문은 그들이 함께 살았던 아파트쪽을 향해 있었다.

‘인지저하’ 노인들이 지역사회 내 계속거주가 가능한 모델을 만들기 위해 서울시가 지난 2015년 리모델링을 시도한 서울 영등포구 신길4동 삼성래미안 아파트 2단지 내 ‘기억마당’의 모습. 아파트 뒤편에 방치돼 있던 배드민턴장을 노인들이 신체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서울시 인지건강디자인 종합 가이드라인


“‘베이비부머’는 특징은 다양성”

61년생인 전 이사장은 ‘베이비부머’세대다. 그를 비롯한 대부분의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는 대부분 노인이 됐다. 베이비부머의 부모세대인 ‘노인’과 이제 노인이 된 베이비붐 세대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부모보다 더 나은 고등교육을 받았고, 부모세대와 달리 젊은 시절 최고 경제 번영기를 보낸 이들은 노년기에 들어선 현재도 자식세대보다 풍부한 재력과 구매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노인이라는 말보다 ‘신중년’이라는 수식어를 더 선호한다.

윤진희 건축공간연구원 고령친화정책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16일 “베이비부머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핵심은 ‘다양성’에 있다”고 말했다. 베이비부머의 부모세대와 달리 경제, 교육, 사회적 지위 등 스펙트럼이 다양해 획일적 기준으로 분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요양원’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강한데 이는 그들의 부모세대에서 겪은 요양시설에 대한 부정적 경험이 반영됐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베이비부머는 독립적 공간에 대한 욕구도 크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노인이 된 현재도 대부분의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노후 거주지에 대한 고민을 크게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베이비부머는 경제활동에서는 은퇴했어도 사회생활에서는 여전히 ‘현역’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건축공간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베이비부머 세대의 지역사회 지속거주 인식과 주거지원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이부머의 84.8%는 아직 자신이 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노인이 되는 나이는 평균 69.9세라고 답했다. 해당 조사는 전국 7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60~68세 베이비부머 1344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전 이사장은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에 나 혼자 평생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시설이 아닌 집에서 노후의 대부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 이사장은 자신이 노인이 되면 그 보살핌을 타인으로부터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고 했다.

전 이사장은 “많은 민간기업들이 ‘시니어주택’ 사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AIP를 넘어 베이비붐 세대의 특징 등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을 한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다”면서 “베이비부머들도 내가 노인이 됐더라도 당장 죽는 것이 아닌 이상 향후 30~40년까지도 예상하며 주거비용 등을 고민해 노후주택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면 그는 어떤 노후의 집을 그리고 있을까. 전 이사장은 “내가 바라는 노후의 집은 ‘여러 사람이 같이 사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독립된 생활이 보장되고, 사회활동을 통해 알아온 분들과 계속교류가 가능한 지역 내에서 거주하고 싶은 것이 내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전미자 반포느티나무쉼터 소장이 지난달 22일 서울 서초구 반포느티나무쉼터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전미자 복지환경디자인연구소 이사장
건국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 및 의료공간디자인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1999년 복지환경디자인연구소를 설립해 한국에서는 생소했던 ‘유니버설 디자인(UD)’ 분야를 알린 전문가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각종 시설,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에 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보편적 디자인’ ‘범용 디자인’ 일체를 말한다. 횡단보도와 도로 경계석 사이의 비탈에서부터 시각장애인 유도블록, 저상버스, 지하철이나 버스의 높낮이가 다른 손잡이 등도 모두 유니버설 디자인에 해당한다. 전 이사장은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 2021년 5월 서울 성동구 시립동부노인요양센터의 비대면 이동실 면회실 ‘가족의 거실’ 설치 자문을 맡기도 했다. ‘가족의 거실’은 1년 가까이 얼굴을 보지 못했던 요양시설 입소자 가족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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